[목차] == 개요 == 閔曦 생몰년 미상으로, 고려의 무신이며, 본관은 여흥[* 시조 7세. 이후 조선 말 [[명성황후]]가 속한 그 여흥 민씨 맞다.]. == 생애 == 1231년 제1차 여몽전쟁 때, 북계분대어사로서 적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적진에 갔다. 그 뒤 송국첨과 함께 또 몽고군 진영에 다녀왔다. 그 해 12월 몽고군이 개성을 포위하고 흥왕사를 불태우자, 몽고군 진영에 다시 가서 화친을 청하고 몽고 사신 2인과 함께 돌아왔다. 1232년 최임수와 함께 감찰어사로서 왕명을 받고 몽고에 항전을 지속하던 귀주성의 [[박서]], [[김경손]] 등을 권유해 몽고에 항복하게 하였다. 그 해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한 뒤 서경순무사로서 사록 최자온과 함께 [[다루가치]] 살해를 모의하나, 이를 안 서경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최자온은 옥에 갇히고, 최임수를 비롯한 다른 관료들은 저도로 도주한다.][* 고려사에서는 살해 모의만이 나와 있으나, 《원사》에서는 다루가치 72인이 모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는 민희와 최자온이 다루가치를 모살하다가 서경 주민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았을 때, 다루가치들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루가치들의 대부분이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1233년 3월에는 [[필현보]]와 [[홍복원]]이 서경에서 [[정의(고려)|정의]]와 박록전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그 해 12월 북계병마사로서 [[최우]]의 가병 3천 명을 이끌고 난을 진압한다.[* 필현보는 요참형을 당하고, 홍복원은 몽골로 도주했다. 이 때 서경 주민들을 섬으로 모두 이주시켜 서경은 한때 폐허가 되었다.] 이후 지추밀원사가 되었으나, [[최항]]이 집권한 시기 유배된다. 유배에서 돌아온 뒤 추밀원사가 되었고, 1258년 처자에게 은 1근과 쌀 3석이 하사된다. == 가족관계 == [include(틀:고려 재상지종)] * 아버지: 민인철 * 어머니: 미상 * 형: 민부 * 본인: '''민희''' * 아내: 미상 * 아들: 민영창 * 딸: 민씨 * 사위: 최현성 * 딸: 민씨 * 사위: 이윤 * 외손녀: 이씨 * 외손서: 윤순[* [[정희왕후]]의 5대조이다.] 상서공 [[민식(고려)|민식]]의 손자이다. 남계 후손은 전해지지 않으나, 여계 후손으로는 대표적으로 [[정희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가 있다. == 대중매체에서 == * 드라마 [[무신(드라마)|무신]]에서는 배우 정규수가 역할을 맡았다. *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실제 역사와 같다. 1차 여몽전쟁 이후 서경순무사로 있던 중 최자온과 함께 다루가치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장교들로 구성된 특공대를 조직하여 다루가치들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다루가치들을 주살하라는 최우의 밀지를 받고[* 본래는 [[이공주(고려)|이공주]]가 별초들을 이끌고 다루가치들을 하나하나 주살하려고 했지만 최우가 이를 만류했다.] 행동을 서둘러 특공대를 이끌고 다루가치들의 대부분을 살해한다.[* 샤다 혼자만이 몽골로 도주했다.] 그러나 이 소문을 뒤듣게 들은 서경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최자온은 억류되고 최임수는 저도로 도주한다. 이후의 행적은 실제 역사와 동일하다. [[분류:고려의 군인]][[분류:몰년 미상]][[분류:여흥 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