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독일의 역사]][[분류:라인 동맹 구성국]][[분류:독일 연방 구성국]][[분류: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분류:대공국]][[분류:1918년 멸망]] [include(틀:독일의 역사)] [include(틀: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 [include(틀:라인 동맹 구성국)] ||<-3><#FFDD00> {{{#FF0000 {{{+1 '''바덴 대공국''' [br] '''Großherzogtum Baden'''}}}}}} || ||<-2> [[파일:바덴 대공국 국기.svg|width=100%]] || [[파일:바덴 대공국 국장.svg|width=50%]] || ||<-2><#FF0000> {{{#FFDD00 '''국기'''}}} ||<#FF0000> {{{#FFDD00 '''국장'''}}} || ||<-3><#FFDD00> {{{#FF0000 '''지도'''}}} || ||<-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German_Empire_-_Baden_%281871%29.svg.png|width=300]] || ||<-3><#FF0000> {{{#FFDD00 '''1806년 ~ 1918년'''}}} || ||<-3><#FF0000> {{{#FFDD00 '''지리'''}}} || ||<#FFDD00> {{{#FF0000 '''위치'''}}} ||<-2>[[바덴뷔르템베르크]](독일 남서부) || ||<#FFDD00> {{{#FF0000 '''수도'''}}} ||<-2>[[카를스루에]] || ||<-3><#FF0000> {{{#FFDD00 '''인문환경'''}}} || ||<#FFDD00> {{{#FF0000 '''언어'''}}} ||<-2>[[알레만어]], [[독일어]] || ||<#FFDD00> {{{#FF0000 '''종교'''}}} ||<-2>[[가톨릭]], [[개신교]] || ||<#FFDD00> {{{#FF0000 '''민족'''}}} ||<-2>[[독일인]] || ||<-3><#FF0000> {{{#FFDD00 '''정치'''}}} || ||<#FFDD00> {{{#FF0000 '''정치체제'''}}} ||<-2>[[군주제]] || ||<#FFDD00> {{{#FF0000 '''국가원수'''}}} ||<-2>[[대공]] || ||<-3><#FF0000> {{{#FFDD00 '''경제'''}}} || ||<#FFDD00> {{{#FF0000 '''통화'''}}} ||<-2>파피어마르크 || ||<#FFDD00> {{{#FF0000 '''성립 이전'''}}} ||<-2>바덴 선제후국 || ||<#FFDD00> {{{#FF0000 '''멸망 이후'''}}} ||<-2>[[바이마르 공화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대공국(Großherzogtum)]]이었으며 수도는 [[카를스루에]](Karlsruhe)였다. 그 외 주요 도시로는 [[바덴바덴]], [[프라이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등이 있었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15,082 km², 인구 200만 가량이었다. == 약사 == 체링겐(Zähringen) 가문이 다스렸고 오늘날 [[바덴뷔르템베르크]] 서부 지역에 위치한다. 원래 바덴지역의 북부만 다스렸으나 [[나폴레옹]]에게 [[라인강]] 서안 영토를 바친 대가로 라인강 우안의 8배의 달하는 거대한 땅을 보상으로 받았다. 할양받은 이 지역은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라 불리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월경지]]였다.[*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 시절부터 [[스위스]]에서 영향력을 잃으면서 오스트리아 본토와 월경지 간의 연결이 끊어졌는데, [[알자스]] 지역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에게 뺏겼고 [[레오폴트 1세]]부터는 오스트리아 본토 서쪽의 월경지들은 현재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인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거의 버리다시피 했다.] 1815년 [[빈 회의]]에서 모든 나라들 기존 나폴레옹의 동맹국들 조차 영토 기득권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바덴 대공국 역시 이 영토들의 점유를 그대로 인정받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 월경지들을 포기하는 대가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탈리아 반도 북부를 병합]]했다. 원래 바덴 변경백국 시절에는 바덴두를라흐(Markgrafschaft Baden-Durlach)와 바덴바덴(Markgrafschaft Baden-Baden) 변경백국으로 나눠졌었는데 바덴두를라흐계는 [[종교개혁]]으로 [[루터파]] [[프로테스탄트]]가 되었고, 바덴바덴은 계속 [[가톨릭]]을 믿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에 바덴바덴의 대가 끊어지면서 바덴두를라흐계로 통합되었고, 과거 [[칼뱅파]]를 믿었던 [[팔츠 선제후국]]의 수도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다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던 외지오스트리아까지 얻으면서 정통 루터파 신도 외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외지오스트리아의 인구가 많았다보니 프로테스탄트는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했으나 대공가가 프로테스탄트다보니 1856년 종교 관용령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프로테스탄트가 많은 특혜를 가져갔다. [[1848년 혁명]]때는 청년 [[카를 마르크스|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엥겔스]]가 바덴 혁명에 참여했다. 특히 군필자였던 엥겔스는 혁명지도자 [[아우구스트 빌리히]][*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 귀족 출신 혁명가. 1848년 혁명이 실패하고 [[런던]]으로 망명했을 때 마르크스가 근시일 내에 세계혁명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고 결론내리자 마르크스가 우경화(...)했다고 판단하고 마르크스를 암살하려 했다. 바덴 혁명 실패로 세력이 궤멸되었던 [[공산주의자동맹]]은 마르크스파와 빌리히파의 대립으로 인해 재건에 실패하고 마르크스는 이후 혁명활동 일선에서 물러나 연구와 저술에 침잠하게 된다. 한편 빌리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남북전쟁]]에서 독일계 의용병을 모집해 북군에 참여해 장군 계급까지 달았으며, 그 뒤에는 [[보불전쟁]] 때 [[프로이센군]]에 참여하겠다고 입영을 신청했으나 고령과 좌익성향을 이유로 거부당하는 이색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마르크스는 죽을 때까지 빌리히를 미친 놈이라고 까는 뒤끝을 시전했다.]의 부관으로서 직접 총을 들고 싸웠다(!). 바덴 정부에서는 진압을 위해 프로이센에 군대 파병을 요구함으로써 당시 프로이센군 사령관이었던 [[빌헬름 1세|빌헬름 왕세제]]가 18개월간 머물렀고 프리드리히 공자와 빌헬름 1세의 딸을 혼인시키면서 사돈관계도 맺었다. 그래서 남독일 국가 중 친프로이센 국가였다. 그러나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선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 편을 들었다. 다만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이 [[소독일주의]] 계열이었고 [[프랑스 제2제국|프랑스]]를 조지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국가들에게는 관대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벌어지자 [[북독일 연방]]과 맺은 비밀군사동맹에 따라 프로이센편으로 참전했다. 1871년 북독일 연방이 확대 개편된 [[독일 제국]]에 가입하였다. 독일 제국의 대공국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후국이었으며 옆나라인 [[뷔르템베르크 왕국]]과 인구가 거의 비슷했다. 1871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있었던 [[빌헬름 1세]]의 독일 제국 선포식에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구상에 따라 황제의 사위였던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가 총대를 메고 추대 역할을 맡았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바덴 대공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포함된 바덴 공화국(Republik Baden)으로 바뀌었고,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북부 지역(미국령)이 뷔르템베르크바덴으로 통합되고, 남부 지역(프랑스령)이 바덴 주가 되어 1951년까지 존속했다가, 1952년에 뷔르템베르크와 완전히 통합하여[* 둘을 구분하는 인식은 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가 되었다. 여담으로 세계 최초의 [[운전면허]]를 발급한 나라이다.[* 운전면허가 의무화 된건 1903년 영국.] 발급자는 바덴 대공이었고, 발급받은 사람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설립자중 하나인 [[카를 벤츠]]. == 군사 == [include(틀:역대 독일의 군사조직)] 바덴 대공국군(Badishe Armee)이 존재했다. 바덴 변경백의 군대를 기반으로 1806년 창설되었다. 보병 전력으로 1개 척탄병 연대, 5개 보병연대를, 기병 전력으로 1개 근위기병연대와 2개 기병연대를, 포병 전력으로 2개 포병연대를 보유했다. 총 1만명 규모였으며 연방집행 또는 연방전쟁이 선포되면 [[독일 연방]]군의 일원으로 가담했다. 1871년 독일 제국이 건국되자 편제상 [[프로이센 왕국군]]에 예속되어 [[독일 제국군]] 제14군단으로 편입되었다. 바덴군은 크기로만 따지면 뷔르템베르크군과도 맞먹었으나, 바덴의 전쟁성은 폐지되었기에 그들과 달리 평시 자율권은 없었다. 바덴군은 프로이센군에 완전히 예속된 영방국 군대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 왕사(王史) == [include(틀:역대 바덴 대공)] 대공국 승격 이후 * [[카를 프리드리히(바덴)|카를 프리드리히]] (1806-1811) * [[카를(바덴)|카를]] (1811-1818) * [[루트비히 1세(바덴)|루트비히 1세]] (1818-1830) * [[레오폴트(바덴)|레오폴트]] (1830-1852) * [[루트비히 2세(바덴)|루트비히 2세]] (1824-1858) * [[프리드리히 1세(바덴)|프리드리히 1세]] (1858-1907)[* [[빌헬름 1세]]의 딸 [[루이제 마리 엘리자베트|프로이센의 루이제]]와 결혼했다. 빌헬름 1세는 딸 루이제를 무려 [[늦둥이|4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얻어서 그런지]] 딸바보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빌헬름 1세는 아들이자 루이제의 오빠인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도 34살이라는 꽤 늦은 나이에 얻었다.][* 프리드리히 1세와 루이제의 딸이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5세]]의 왕비 바덴의 빅토리아다.] * [[프리드리히 2세(바덴)|프리드리히 2세]] (1907-1918)[* 빌헬름 2세의 외사촌 형이다.] === 대공위 요구자[* 바덴 대공가의 수장은 대공국 멸망 이후로 바덴 변경백을 칭하고 있다.] === * [[프리드리히 2세(바덴)]] (1918-1928) * [[막시밀리안 폰 바덴]] (1928-1929) 독일 제국 최후의 재상인 막스 폰 바덴 맞다. 자녀가 없던 사촌형 프리드리히 2세의 명목상 대공위를 승계받았으나, 나이가 (당시 기준) 많아 15개월 만에 사망. 부인은 [[하노버 왕국]]의 마리 루이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와 [[덴마크의 티라]]의 장녀.]. * 베르톨드 (1929-1963). 1906~1963. [[그리스와 덴마크의 테오도라]][*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의 차녀이자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의 둘째 누나.]와 결혼했다. 슬하 2남 1녀 * 막시밀리안 ~~2세~~ (1963-2022). 1933~2022. 이종사촌인 호엔로에랑엔부르크의 베아트릭스[* 큰이모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르가리타]]의 장녀이다.]와 약혼하였지만 깨지고, 오스트리아 여대공 발레리[* 토스카나 대공가 출신, [[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 대공 레오폴도 2세의 차남인 카를 잘바토어 대공(이탈리아어로는 카를로 살바토레)의 증손녀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막내딸 [[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마리 발레리 여대공]]의 손녀이기도 하다.]와 결혼하였다. [[찰스 3세]]의 고종사촌. 슬하 3남 1녀. 2022년 12월 29일 서거.[[https://www.n-tv.de/regionales/baden-wuerttemberg/Ende-einer-Ara-Max-Markgraf-von-Baden-ist-tot-article23812263.html|#]] * 베른하르트 (2022-). 1970~.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자녀가 있다. 평민과 결혼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승인받아서인지 그의 세 아들들은 계승권이 있다. * 레오폴트(2002년생) 포함 슬하 3남 == 관련항목 == * [[바덴 요리]]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바덴, version=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