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불가리아의 행정구역)] ||||<#87CEEB><:>{{{#gold {{{+3 바르나 [br] Варна }}}}}}|| ||<-3><:> [include(틀:지도, 장소=Varna, Bulgaria)] || [목차] * [[불가리아어]]:Варна == 개요 == 바르나는 [[불가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흑해]] 연안의 해변 휴양지이기도 하며, 불가리아의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2011년]] 통계 기준 도시 거주인구 중 [[불가리아인]]은 284,738명 (93.8%), [[터키인]]은 10,028명 (3.6%), [[집시|로마니]]는 3,162명(1.0%)이라고 한다. == 역사 == [[청동기 시대]]에 [[트라키아인]]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며 기원전 9~8세기 무렵부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들과 교역이 활발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오늘날의 바르나에 해당하는 지역을 오데소스(Ὀδυσσοῦ)라고 불렀는데, 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해안 도시 [[오데사]]의 어원이기도 하다.[* [[흑해]]를 수복한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제국]]이 [[고대 그리스]] 및 [[동로마 제국]]을 계승했다는 [[프로파간다]]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남부에 새로 건설한 해안 도시들의 이름을 [[그리스어]] 지명에서 가져와 붙였다. [[헤르손]]도 케르소네소스(Χερσόνησος)에서 유래한 지명이나 정작 케르소네소스는 현재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 있었다.] 이후 [[마케도니아 제국]]의 영토에서 [[고대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로마 제국]] 시대 이후 [[불가르족]]이 침공해오면서 [[불가리아 제1제국]]의 도시가 되었다. [[1444년]]에는 오스만 술탄국과 유럽 십자군간의 [[바르나 전투]]가 일어났고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6~[[17세기]] 사이에 바르나는 오스만 제국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기능하였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바르나를 두고 여러 차례 공방전을 벌였다. [[19세기]] 말 불가리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바르나는 [[불가리아 왕국]]의 주요 항구도시로 기능하게 되었다. [[1949년]] [[12월 20일]]부터 [[1956년]] [[10월 20일]]에는 도시 이름이 잠시 '''[[스탈린]]'''으로 개명되기도 했다. == 관광 == [[냉전]] 시대 바르나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독일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이다. 바르나 시 북부 해변은 따로 '''황금 모래'''(Златни пясъци)라고 해서 해변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해변 관광지 외에도 고대 고고학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 및 중세 [[수도원]] 유적지도 인기 목적지 중 하나이다. 시 외곽에는 바르나 전투 당시 전사한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의 영묘당[* 다만 브와디스와프 3세의 유해는 찾지 못했기 때문에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장식이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바벨 대성당]]에도 브와디스와프 3세의 세노타프가 있지만 역시 장식.]과 바르나 전투를 설명하는 박물관이 있다. 서쪽으로 좀 더 가면 포비티 카마니(Побити камъни)라는 이름의 [[사막]]이 있다. [[분류:불가리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