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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마가의 다락방 원로목사[br]{{{+1 박보영}}}}}}'''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arkboyoung.jpg|width=100%]]}}} || || {{{#FFF,#000 '''출생'''}}} ||[[1952년]] (71세)|| || {{{#FFF,#000 '''소속교단'''}}}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 {{{#FFF,#000 '''학력'''}}} ||[[중앙대학교]] {{{-2 (의학 / 학사)}}}[br][[협성대학교]] {{{-2 (신학 / 석사)}}} || || {{{#FFF,#000 '''약력'''}}} ||[[마가의 다락방]] 원로목사[br]인천방주교회 원로목사[br]전 안산 시온성교회 담임목사 || || {{{#FFF,#000 '''가족'''}}} ||아버지 박장원(전 인천방주교회 담임)[br]할아버지 박용익(전 종교교회 담임) || || {{{#FFF,#000 '''좌우명'''}}}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br]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br]변명하지 말고 가장 천한 곳에서 섬기라|| || {{{#FFF,#000 '''별명'''}}} ||고아들의 아버지[br]깡패들의 아버지||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개신교]] [[목회자]]이다. 인천광역시 [[마가의 다락방]]과 [[인천방주교회]] 원로목사이다. 잘나가던 피부과 의사로 살다가, 39세의 나이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간증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설교 시리즈는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고전 설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소 [[회개]], [[복음]], [[십자가]], [[순종]]을 주제로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걷는 성도의 삶을 강조한다. == 생애 == === 어린 시절 === [[박보영]] 목사는 목회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는 [[일제강점기]] [[감리교]]의 성자로 불리며, [[방배동]] 등지에서 조용하게 길거리 전도를 하는 인생을 살았다. 특히 분쟁이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자주 부임했는데, 그 때마다 [[가마니]]를 들여놓고 생명을 건 [[금식]]을 해서 성도들이 결국 화해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버지 박장원 목사는 인천에서 목회를 했는데 그 교회도 분쟁이 있는 교회였다. 박보영 목사는 어린 나이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성도들이 저렇게 싸울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 회심 === 박 목사는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로 세속의 달콤함에 살면서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부인과 헤어졌고,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끝내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켜 입원했다. 1년 여의 투병생활을 하던 [[1990년]] 어느 겨울날 [[마가의 다락방]]에 방문한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자신에게서 일어난 놀라운 체험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치료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후 심장은 멀쩡해졌고,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후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1991년]], 곧바로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그의 전재산은 [[교회]]와 [[신학교]]에 기증했다. 그리고 용산역 앞 작은 쪽방에서 신학생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신학교]] 졸업 후 아무도 불러주는 곳이 없자, [[조치원]] 산 속에 상여 보관소 옆 작은 판잣집에 들어가 2년 동안 기도와 성경을 읽게 된다. 그때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회개]]하는 날들을 보냈다. === 안성 시온성교회 === 그리고 [[안성]]의 우범지역에 시온성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를 개척했지만 1년여 동안 교인 없이 목회를 하던 중, 어느 전도사님의 배려로 11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빌려 쓰게 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자는 날이 많았지 별로 아파트에 들어가 지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를 우연히 방문했다. 빈집에 들어 온 10대 후반의 3명의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아이들과 [[예배]]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아파트 문을 잠그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자, 당시 아이들은 [[본드]]와 [[환각제]]로 취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칼을 꺼내 박 목사를 찌르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박 목사는 자신을 위협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너희는 용서 받을 죄인인데 예수 믿고 용서받자”며 복음을 전했다. 아이들을 밤새 붙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말해주었다. 다음날 박 목사는 아이들과 헤어져 [[교회]]로 돌아왔는데 수요예배 시간에 [[교회]] 문이 열리더니 바로 그 강도였던 3명의 아이들이 친구들 15명을 데리고 왔다. 그 일을 계기로 박 목사는 그때부터 길에 버려진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강도였던 아이들, 노숙자들과 교회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을 암기시키고 새벽기도를 드리도록 해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 때 아이들 붙들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박 목사의 헌신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도둑질을 계속했고 도둑질 한 돈으로 창녀촌과 지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돈이 떨어지면 교회로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박 목사는 도둑질 한 아이들을 앞세워 일일이 피해를 입힌 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고 때로는 술에 취한 주인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다. 그런데 사과를 하고 나오는데 아이들은 심각하지 않은 듯 자기들 끼리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도 여전히 아이들의 도둑질에 대해 사과하고 돌아오던 박 목사는 교회에서 한 아이를 세워놓고 파이프 막대기로 힘껏 때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들려주며 “너희들이 나를 10대씩 때려라. 대신 9대 때렸다가 마지막 1대라도 살살 때리면 다시 때리게 할 테니 힘껏 때려라” 고 말했다. 두 아이에게 20대를 맞았는데 박 목사는 너무 아파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너무 아파요 더 못 맞겠어요.” 박 목사는 세 번째 아이가 죄송하다며 때린 매에 허리 밑 꼬리뼈를 맞고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정신을 잃게 됐다. 그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매를 맞았고 그렇게 80대를 맞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인지 나중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박 목사는 그 일 때무에 거의 한달 동안을 누워서만 지내야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안 좋아 박 목사의 의자에는 항상 뜨거운 팩이 놓여있다. 그런데 파이프 사건 이후로 아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둑질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왜 나를 때리고 나서 너희들이 변화되었냐”고 물으니 “세상이 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뒹구는 목사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목사는 항상 적게는 서너명, 많게는 열다섯명 정도의 ‘버림받은 이들’과 살았다. 라면 하나에 한솥가득 물을 끓여 국물만 먹기 일쑤였다. 가난하고 추운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다시 도둑질하고 [[교도소]]로 갔다. 박 목사는 새벽에 아이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면회]]가는 게 하루 일과였다. 교회는 간혹 피투성이가 됐다. [[형사]]들이 들이닥쳐 때로는 난투극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설교할 때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힙합 바지 언제 사줄거야?" 하며 예배 시간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가 박 목사의 와이셔츠와 신발을 훔쳐가는 통에 속옷만 입고 예배를 인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목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박보영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목사님의 관점에서 아이들과 지낸 시각으로 들을 수 있지만 유튜브에 정택윤 선교사님 간증을 듣게 되면 아이들의 관점에서 목사님의 모습을 들을 수 있다. === 인천 방주교회 === [[박보영]] 목사는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로 알려진 [[유기성]] 목사의 사모와 사촌지간이다. 유 목사는 안성에서 목회하고 있는 박 목사를 목사들만 모인 집회의 강사로 초청했고, 그 자리에서 박 목사는 고아와 깡패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박 목사의 간증을 듣고 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박 목사는 [[선교]]와 [[노숙자]] [[구제]]에 힘쓰며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권면하고 훈련하고 있다. 그의 제자 목사들은 [[인천방주교회]], [[필그림교회]], [[필그림선교교회]], [[길튼교회]], [[인천기쁨의교회]] 등 형제교회에서 박 목사의 가르침을 따라 [[회개]]와 [[복음]]을 강조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 설교 정리 == === 개요 === 박보영 목사의 설교는 성경 본문 말씀을 강해하는 설교보다는 자신이 성경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설교를 한다. 그래서 듣다 보면 부담 없이 교회 다니는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으로 들을 수 있다. 삶으로 살아낸 모습을 이야기 해주기 때문에 설교 말씀을 들으면 도전이 많이 된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에서는 산상수훈(마태복음5,6,7장)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 2015.09.28 마가의다락방교회 (추석집회)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8kKopnlvfTs)]}}} || 박목사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인 자신의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와 자신의 멘토를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소개하며 이것이 자신의 목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언급했다. 1)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라 2)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해라 3) 변명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라 4) 버려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두 번째, 자신이 멘토라고 부르는 사람이며 그도 박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1) 성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2) 겸손하게 낮아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 3) 다 나눠주며 살아가야 한다. 박보영 목사는 그에게 진짜로 사는 삶을 배웠다 말했다. === 2015.10.18 만모스은혜교회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oBO2JlkPjYY)]}}} || 박목사는 자신이 안성에 있을 때 자신의 생일 때 노숙자,깡패,함께 사는 아이들이 목사님의 깜짝 생일파티를 했다며 밝혔다. 이 때 그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인 내영혼이 은총 입어를 불러 주고 가장 좋아하는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주었다고 하며 좋아했다. === 2021.12.15 마가의다락방교회 성탄예배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mJFDn_xt90c)]}}} || 성탄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탄절은 우리가 기뻐하고 선물을 주고 받고 트리를 만들고 술먹고 타락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설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성탄절은 주님 앞에 내 더러운 죄들을 다 토해내고,내 삶을 바꾸는 결단을 하고. 내가 당연히 가지 못했던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임을 밝혔다. === 2022.11.20 필그림선교교회 주일예배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9GosWlwtHSU)]}}}|| 위에서 언급한 박목사의 멘토가 이야기해준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 나온다.[* 멘토님은 이것을 비단주머니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것은 어려운일이 생길 때 감사와 기도로 새끼줄을 꼬아 하늘로 닿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어려운 일이 감사의 조건으로 바뀌게 된다며 언급했다. [[분류:대한민국의 목사]] [[분류:1952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