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파일:goguryeo_seong.jpg|width=100%]]|| ||[[고구려]] 지도와 박작성의 위치|| 박작성(泊灼城)은 [[고구려]] 때 지어졌던 성이었다. 위치는 [[랴오닝 성]] [[단둥]] 시내에서 20여km 떨어진 관전현 호산에 있다. [[압록강]] 하구의 경계를 맡았던 요충지로 중요한 성 중 하나였다. 박작성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이기도 했다. 고구려 멸망 후 [[봉황성]]이라고 불리었으며 [[안시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였다. [[고려]], [[조선]] [[사신]]들이 [[중국]]으로 갈 때 지나쳤던 길이기도 하다.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봉황성을 지나는 대목이 나온다. == 현재 == [[중국]]에서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박작성을 [[만리장성]]의 [[충격과 공포|일부로 만들려고 하는 탓에 많이 훼손되었다.]] 이미 중국은 1990년부터 성을 발굴하면서 석벽과 돌로 쌓은 우물, 우물 내에서 출토된 목선(木船)과 같은 고구려 유물을 대거 발견했다. 하지만 [[충공깽|고구려 유물들을 없애버리고]](!) 박작성 유적을 중국식 벽돌성으로 ~~[[마개조|마]]~~개조하여 박작성의 자리에 호산장성이라고 표시해놓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중이다. 현재 남아있는 고구려성의 흔적은 산 정상의 작은 망루 유적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과거와 완전히 달라서 방문시 과거 성이 이런 느낌으로 서 있었다 라고만 알 수 있다. 2021년 6월에는 박작성을 '후산산청(虎山山城)[* 한국식 한자음으로는 '호산산성']은 ... [[명나라]] [[만력제]] 시기에 만들어진 만리장성에 포함되며 동쪽 끝 지점'이라고 왜곡한 사실이 발견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2455945|#]] 호산상성 자체는 명나라 때 박작성 위에 지어진 성이 맞기는 하지만 장성에 포함된 성은 아니었다. 또한 2022년 9월에는 박작성 입구에 넓은 광장을 만들어놓고 '만리장성 동단기점'이라고 거대한 표지석을 세웠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수 년 전 성 정비 작업과 함께 새롭게 들어선 시설물'이라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929106600097|#]] [[분류:고구려/건축]][[분류:성채/중국]][[분류:단둥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