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111221404447091.jpg|width=150]] || || 이름 ||박재경(朴在慶) || || 출생 ||[[1933년]] [[6월 10일]][br][[함경북도]] || || 현직 ||조선반제노병위원회 위원장 || || 경력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총정치국]] 선전부국장[br]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br]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br]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의 [[군인]]. == 생애 == 초급장교 시절, [[정찰총국]] 소속으로 [[1.21사태]] 당시 31명의 북한 무장공비들과 함께 서울에 침투했다가 국군의 추격을 피해 살아서 북한으로 달아난 유일한 무장공비라고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제1보병사단 15연대장 이익수 대령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4년에 [[김신조]] 목사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때 도망친 사람이 박재경이라고 주장했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6796984.1.jpg]] 1993년 12월, 6기 2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5년 7월, [[김봉률]]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과 [[김광진(1927)|김광진]]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5년 10월 6일, 모범적 군인으로 선정되어 김정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총정치국]] 부국장 시절인 2000년 9월 11일, [[김정일]]이 [[김대중]]에게 보내는 칠보산 [[송이버섯]] 선물을 [[김용순(1934)|김용순]] 로동당 국제비서와 함께 전달하러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10월, [[연형묵]]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7년 10월 4일에는 [[2007 남북정상회담|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노무현]]에게 전달하는 송이버섯 선물 전달자로 다시 등장하였다. 2008년 10월, [[박성철(1913)|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낸 이후론 잘 보이지 않았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확실하게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했으나, 그 이전에 이미 소환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 2018년 8월, [[김영춘(1936)|김영춘]]의 장의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은퇴했는지 조선반제노병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척 봐도 명예직이 분명해보이는 직함을 가지고 지내고 있다. 2021년 7월, 7차 로병대회에 참석했다. 2022년 7월, 8차 로병대회에도 참석했다. ||[[파일:PIC0069475.jpg]]|| ||전승절 행사에서의 박재경.(맨 오른쪽) 옆에 태종수, 최영림, 김정은, 리설주, 리병철, 김여정이 보인다. || 2022년 정권수립 74주년 기념행사에 [[김영남]], [[최영림]], [[박봉주]], [[리명수]], [[최태복]], [[김경옥]], [[황병서]], [[김정각]]과 함께 초대받았다. 9월 9일에 열린 경축연회에도 다른 노간부들과 함께 참석했다. 2023년 7월 27일, 노간부 자격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경축 대공연에 참석했으며 열병식에서도 행진했다. 이후 9.9절 열병식에도 노간부 자격으로 초대받았다. [[분류:조선로동당 6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분류:조선로동당 6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북한 국방성 부상]][[분류:조선인민군 총정치국 부국장]][[분류:함경북도 출신 인물]][[분류:1933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