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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akrchoongkyun.jpg]] 10월 20일, [[상하이 선화]]와의 원정으로 펼쳐진 데뷔전은 1-1로 비겼다. 이날 톈진의 양쉬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 만회골을 내주었다. 10월 27일, [[광저우 푸리]]와의 원정경기에서 [[알레샨드리 파투]]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6-2로 대승하고, 일단 급한 불은 끄면서 감독 데뷔천 첫승을 올렸다. 경기를 패했으면 진짜로 강등권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톈진의 8연속 무승(가시마와의 [[아챔]]포함)을 깬 귀중한 승리였다. 11월 3일의 [[베이징 궈안]] 원정에서는 강팀 베이징과 무승부를 기록하여 강등권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11월 7일의 [[창춘 야타이]]전은 2-0으로 앞서나가다가 공격일변도 전술의 틈을 창춘이 공략하여 2-2로 비겼다. 11월 11일의 [[상하이 상강]] 홈경기는 우승이 확정된 상하이를 3-2로 이겨서 최종순위를 리그 9위로 마쳤다. 잘못했으면 강등될 수도 있던 상황에 와서 2승 3무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톈진 취안젠팬들도 매우 호평하고 있다. 2019년 부임하는 최강희 사단의 일원으로 톈진 취안젠을 계속 지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고사했다고 한다. 박충균 감독이 감독 커리어를 염두에 두고 고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인의 인터뷰에서는 [[알레샨드리 파투]]를 포함한 톈진의 여러 선수들이 박충균이 남기를 희망했으나, 자신의 스타일과 최강희 감독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리더쉽에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떠난다고 밝혔다. === [[톈진 톈하이]] 감독 === 한편 톈진 취안젠은 2019년 1월 모그룹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시당국으로 운영주체가 넘어갔다. 부임 예정이었던 최강희 사단도 계약을 해지하고 [[다롄 이팡]]으로 옮겨갔다. 구단 부단장을 맡고 있던 [[리웨이펑]]은 자신의 인맥으로 여러 한국인 감독[* 특히 [[서정원]]]을 모셔오려고 했으나, 모양새가 안좋아서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국인 감독이었던 선샹푸 감독이 팀을 맡아 2019년 시즌에 들어갔는데 사기가 폭락하데다가, 주요 선수들을 모두 다른 구단에 팔아치워서 계속 강등권을 전전하였다. 5월 25일에 우한 줘얼에 1-2로 패하여 최하위로 전락했다. 다만 해임이 결정된 28일의 [[중국 FA컵]] 5라운드에서는 을급리그의 타이저우 위안다를 맞아 1-0로 이기고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렇게 5월 28일 FA컵전을 끝으로 선샹푸 감독이 경질되면서 톈진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https://www.facebook.com/1452245628412189/posts/2067766326860113/|#]] 2018년 부임 당시보다 상황은 훨씬 좋지 않은데, 구단 프런트측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강등만은 막아보려는 듯 하다. 현재 이 구단은 시당국이 임시로 운영과 자금을 대고 있는데, 만약 강등된다면 아무도 이 구단을 사갈리 없고 바로 해체수순으로 들어가겠지만, 일단 강등은 넘긴다면 인수기업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충균의 능력에 따라 톈진 톈하이의 해체/존속의 갈림길이 달려있다. 구단에 강력히 요청해서 군복무 문제로 한국으로 복귀한 [[권경원]] 대체 선수로 경남 FC의 [[송주훈]]을, 그리고 전북 코치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레오나르도(1986)|레오나르도]]를 데려왔다. 구단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강등을 면하기 위해 힘을 써주고 있다. 중국 보도에 의하면 구단이 잠시 재직하던 [[최강희(축구인)|최강희]]의 총애를 받았던 왕융포를 [[상하이 선화]]로 팔아버린 것에 불만을 표하고 사임설이 나오긴 했는데, 클럽이 송주훈과 레오나르도를 데려온 것을 보면 어느정도 무마한걸로 보인다. 2019년 7월 무승이 계속되자 중국언론에서는 경질설이 나돌곤 했는데, 구단은 강력히 부인했다. 일단 박충균 뜻대로 빠듯한 재정형편 하에서도 송주훈과 레오나르도를 박충균 뜻대로 데려왔을 뿐만 아니라, 어차피 슈퍼리그에서 유일한 시민구단인 톈진 구단의 재정 형편상 모시기 어려운 거액의 명장을 데려오지 않는 이상, 팀을 맡아 악전고투하는 박충균보다 잘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7월 28일 [[슈틸리케]]가 지휘하는 [[톈진 터다]]를 맞아 1-0으로 승리했고, 8월 3일, 강팀 [[상하이 상강]]을 맞아 0-0으로 비겨서 강등권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9월말 25R 종료시점에서는 다시 강등권으로 떨어졌고, 결국 10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http://naver.me/GP6kOd5z|#]] 10월 8일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5경기 1승이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구단 모기업이 공중분해되는 와중에 어떤 명장이 오더라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안타까워하는 의견이 주류였다. === [[베트남]] 무대 === [[파일:0002149775_001_20210420204519956.jpg]] 2021년 4월 [[하노이 FC]]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하였다.[[http://naver.me/FCbJAV7Y|#]] 2021년 8월 12일, 2022 국제축구연맹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담금질에 들어간 베트남 대표팀의 코치로도 합류하였다.[[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413&aid=0000123727|#]] 하지만 2021시즌 베트남 V리그 일정이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조기종료되면서 2022시즌을 새로운 팀에서 맞이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하노이 FC 회장이 베트남 대표팀의 최종예선 4전 전패 이후 공개적으로 박항서 감독을 비판한 것과 더불어 하노이 FC 코칭 스태프에 대한 처우 문제로 이적을 고려 중인 것이라고 하며, 박충균 감독은 현재 베트남 V리그 내 다른 팀 및 K리그의 클럽의 제안을 받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http://naver.me/58H1vqKD|#]] 결국 2022년 2월 19일, 하노이와 계약 해지했다. [[https://www.spotv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6428|#]] === [[서울 이랜드 FC]] 감독 === [[파일:FB_IMG_1668050173155.jpg|width=600]] 2022년 11월 10일 시즌 종료 후 사임한 [[정정용]] 감독의 후임으로 선임되며 K리그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이라고 하며, 선수시절 보여준 축구에 대한 열정은 물론 은퇴 후 국내, 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쌓은 현장 경험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취적인 모습이 높게 평가되었으며, 서울 이랜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되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됐다고 한다.[[http://www.fourfourtw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32|#]] ==== [[서울 이랜드 FC/2023년|2023 시즌]] ==== 3월 1일 1라운드 신생 구단 [[충북 청주 FC]]와의 홈개막전에서 3 : 2 패배하였다. 3월 29일 [[부천 FC]]와의 FA컵 경기에서 6:0 승리를 거두며 감독 첫 승을 거두었으며, 4월 9일 [[안산 그리너스]]전에서 4:2 승리를 거두며 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6월 11일 [[성남 FC]]전 2:1 승리 이후 여름동안 전반마다 밀어부치다 후반에 체력 딸려서 골을 실점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며 8경기 무승의 늪에 빠졌고, 리그 순위가 8위까지 떨어지며 플레이오프권과는 멀어졌다. 결국 9월 16일 꼴지 [[천안 시티 FC|천안]]에게 홈에서 '''0:3''' 패배를 당하며 플레이오프권과는 확실히 멀어졌다. 그래서 이랜드 팬들은 올해 초 [[김상식(축구)|김상식]]의 사례처럼 [[김상식(축구)/논란 및 사건 사고#s-4.3|박충균 OUT]]을 외치고있다.[* 얼마나 심각하면 일부 팬들한테서 [[김상식(축구)|김상식]]이 더 낫겠다는 말도 나온다.] 9월 24일 천안에게 밀려 K리그2 꼴지가 되었었던 [[안산 그리너스 FC|안산]]을 상대로도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3:4 대역전 패배를 당하였고, 박충균 감독의 경질을 바라는 분위기가 천안전보다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이 경기는 [[서울 이랜드 FC]] 구단 역사상 역대 최다 관중^^(7,266명)^^을 기록한 홈경기이다.] 결국 이후에도 분위기 반등을 하지 못하며 플레이오프 진입에 실패했다. == 논란 == === 과격한 행동 === 박충균은 선수 시절부터 전북의 코치 시절까지 자신의 분노를 잘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 중 과격한 행동을 하며 심심치 않게 구설수에 오르던 인물이다. 특히 2015년 6월 전북과 [[수원 삼성]]과의 경기서 박충균은 흘러나온 공을 가지러 온 수원 삼성의 [[양상민]]을 보자 그 공을 뒤로 던져버리면서 몸싸움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파일:68067_88233_1659.jpg|width=500]] 2016년 7월 [[FC 서울]]와 경기에선 심판의 판정에 흥분하며 물병을 차는 등 거센 항의를 함으로서 퇴장을 당했는데, 밖으로 나가면서 대기심 근처에 있는 의료 기구를 주먹으로 훼손시키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보이며 논란이 일었고, 이에 리그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이후 [[알 아인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에서 주심의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던 중 상대 팀 감독인 [[즐라트코 달리치]]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고, 격분한 달리치는 박충균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둘은 동반 퇴장당했다. 이후 스포티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다혈질]]인 탓이 일부 있긴 하지만, 최강희 감독 대신 자신이 의도적으로 상대 감독을 도발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퇴장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 여담 == * 2002년 한겨레21 특별부록 K리그편에 따르면 그림 그리기가 취미다. * 2003년 [[코엘류호]] 당시 소속팀 성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기형과 함께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출전했다. *서울 이랜드 감독 부임 후 축구 커뮤니티 [[플레이어스]]에서 박충균 감독의 이름에서 유래한 '충격 충격 충충균' 이라는 밈이 유행하고 있다. * 2016년 ACL 결승전에서 자신과 다퉈 함께 동반퇴장 당했던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이 후에 자국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8년 FIFA 월드컵 러시아|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우승으로 이끌며 유명해지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에 다툼이 영광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https://m.sports.naver.com/russia2018/news/read.nhn?oid=382&aid=0000660874|#]] == 둘러보기 == [include(틀:최강희호/코칭스태프)] [[분류:1973년 출생]][[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풀백]][[분류:센터백]][[분류:1996년 데뷔]][[분류:2007년 은퇴]][[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은퇴, 이적]][[분류:상무 축구단/전역]][[분류:성남 FC/은퇴, 이적]][[분류:부산 아이파크/은퇴, 이적]][[분류:대전 하나 시티즌/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감독]][[분류: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톈진 톈하이/역대 감독]][[분류:감독 대행/축구]][[분류:하노이 FC/역대 감독]][[분류:서울 이랜드 FC/역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