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2> '''나치당 최고재판소 소장[br]{{{+2 발터 부흐}}}[br]Walter Buch''' ||||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발터 부흐2.jpg|width=100%]]}}}|||| || {{{#FFF 이름}}} ||<(>'''Walter Hans Buch'''[br] 발터 한스 부흐 || || {{{#FFF 출생}}} ||<(>[[1883년]] [[10월 24일]] [br] [[독일제국|독일국]] [[바덴 대공국]] 브루흐잘 || || {{{#FFF 사망}}} ||<(>[[1949년]] [[9월 12일]] (향년 65세) [br] [[서독]] [[바이에른]]주 숀도르프 || || {{{#white 정당}}} ||[include(틀: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 {{{#FFF 복무}}} ||<(>[[독일제국군]] [br] [[슈투름압타일룽]] [br] [[슈츠슈타펠]] || || {{{#FFF 최종계급}}}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국가지휘자(Reichsleiter) [br] [[슈투름압타일룽]] [[중장]] (집단지도자) [br] [[슈츠슈타펠]] [[대장(계급)|대장]] (상급집단지도자) || || {{{#FFF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발터 부흐1.jpg|width=100%]]}}} || ||<#ddd,#191919>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시절의 사진 || [[나치 독일]]의 돌격대 중장, 친위대 대장, [[나치당]] 국가지휘자를 지냈다. == 초기 행적 == [[독일제국]] [[바덴 대공국]]의 브루흐잘에서 재판관의 아들로 태어난 부흐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114 보병연대에 입대해 하사관 양성교육학교의 교관이 되었는데 종전 후 소령계급으로 퇴역했다. 전후 퇴역군인회에 소속해 소년교육을 위한 학원창설에 노력했다. == [[나치당]] 행적 == [[1922년]]에 [[나치당]]에 입당해 [[1923년]] [[8월 1일]]에 돌격대에 가입했다. 뉘른베르크, 프랑켄의 돌격대 지휘관을 맡았던 부흐는 [[11월 9일]]의 [[뮌헨 폭동]]에도 참가했다. 나치당이 재건된 후인 [[1925년]]에 복당해 뮌헨 돌격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1927년]]에 나치당 최고재판장[* 한국으로 따지면 당 윤리위원회와 비슷하다]으로 선임된 부흐는 나치당원의 싸움 조정과 불온분자의 감시를 위한 <갈색저택의 체커>라 불리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당내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1932년]] [[3월]]에 돌격대 상부의 도덕적 정화를 생각하여 [[에른스트 룀]]의 암살을 계획했지만 계획이 바깥으로 새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1933년]] [[3월 31일]]에는 나치당 국가지휘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2월 12일]]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하노버 지구에서 당선된 부흐는 [[7월 1일]]에 친위대 명예지도자로서 친위대에 입대해 친위대 중장계급이 주어졌다. [[1929년]] [[9월]]에 딸이던 게르다가 [[마르틴 보어만]]과 결혼했는데, 보어만과의 결혼은 나치당 간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결혼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어만과 부흐는 이후 대립관계가 되었다. [[1934년]] [[6월 30일]]에 [[장검의 밤]] 당시 [[히틀러]]를 수행하면서 룀 이하 돌격대 간부들의 체포에 나서 이후 처형활동에도 관여했다. [[11월 9일]]에 친위대 대장으로 진급한 그는 [[1937년]] [[1월 30일]]에 벌어진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부흐는 열렬한 반유대주의자여서 유대인은 법률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존재라고 공언하며 [[1938년]] [[10월 21일]]에는 <독일사법>이란 기사 속에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다, 부패물이다>라고 적었다. [[1938년]] [[11월]]에 [[수정의 밤]] 사건에서도 유대인 학살을 행한 당원들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방면했다. == 전후 재판과 최후 == 전후 법정에 세워진 부흐는 중노동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다시 [[1949년]] [[7월]]에 중범죄자로 분류되어 재판에 세워질 예정이었지만 [[11월 12일]]에 부흐는 자신의 손목을 긋고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분류:1883년 출생]][[분류:1949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나치당원]][[분류:슈투름압타일룽/인물]][[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분류:독일의 정치인]][[분류:자살한 나치 관련자]][[분류:익사한 인물]][[분류: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