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분류:천주교 서울대교구]][[분류:가톨릭 수도사제]][[분류:한국순교복자수녀회]][[분류:1900년 출생]][[분류:1986년 사망]][[분류:온양 방씨]][[분류:서울봉래초등학교 출신]][[분류:서울미동초등학교 출신]] [목차] == 개요 == [[方]][[有]][[龍]], [[1900년]] [[3월 3일]]~[[1986년]] [[1월 24일]] (향년 85세) 78번째 [[한국인]] [[가톨릭]] [[신부(성직자)|신부]]로, [[세례명]]은 레오이고 수도명은 안드레아이다. 호는 무아([[無]][[我]])이며, 본관은 [[온양 방씨|온양]]이다. 가톨릭의 토착화와 방인([[邦]][[人]])[* 현지인] [[수도회]] 설립에 힘써, 3개의 수도회를 세웠다. 방유룡 신부가 세운 수도회는 최초로 한국인이 [[한국]]에서 설립한 수도회로, 본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이던 방 신부 역시 일선 사목에서 은퇴한 이후 자신이 세운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사제가 되었다. 방 신부가 세운 수도회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sbkm.kr|한국순교복자수녀회]] [[http://www.brotherhood.or.kr|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남자)]] [[http://www.srpalma.or.kr|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 출생과 성장 ==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 대한문 옆]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명동성당]] 제3대 주임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빅토르 루이 푸와넬(Victor Louis Poisnel) 신부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할아버지 방제원(方[[濟]][[遠]]) 프란치스코는 [[한문]]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어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7대 교구장 블랑(Blanc)[* 한국명 백규삼([[白]][[圭]][[三]])] 주교와 제8대 교구장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뮈텔]] 주교에게 한문을 가르쳤으며, 어린 손자 방유룡 레오에게도 한문을 가르쳤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던 방유룡은 14세에 정동관립보통학교[* 현 [[서울봉래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했고, 졸업 후에는 미동공립간이농업학교[* 현 [[서울미동초등학교]]]에 진학한다. == 신학생ㆍ사제 생활 == 미동공립간이농업학교를 졸업한 방유룡은, [[사제]]가 될 뜻을 품고 1917년 17세의 나이로 [[용산예수성심신학교]](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생 방유룡은 활달한 개구쟁이였으나, 나이를 먹고 철이 들자 진지해져서 열심히 신학교 생활을 했다.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현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신학대학)]를 모두 무사히 졸업한 후, 방유룡은 1930년 30세의 나이로 [[성품성사|사제서품]]을 받아 [[신부(성직자)|신부]]가 되었다. 방유룡 레오 신부는 [[강원도]] [[춘천]]성당의 보좌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하여 [[황해도]] [[장연군|장연]]성당, [[재령군|재령]]성당, [[해주시|해주]]성당과 [[경기도]] [[개성시|개성]]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서울]] [[가회동]]성당, [[제기동]]성당, [[후암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했다. 본당사목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1955년 10월 7일 자신이 창설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교구사제에서 수도사제로 소속을 바꾸고 수도회를 지도하다가 1986년 노환으로 사망하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설립 == 방유룡 신부는 신학생 시절부터 수도생활을 꿈꾸었다. 당시에는 아직 [[한국인]]이 세운 [[수도회]]가 없었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진출해온 수도회들이 몇 군데 있었다. 1888년 [[프랑스]]에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최초로 한국에 진출한 데 이어, 1909년에는 [[독일]]에서 [[베네딕토회]]가 남자 수도회 최초로 진출해왔다. 신학생 방유룡은 외국에서 진출해온 수도회들을 방문해보기도 했지만, 나중에 자신이 직접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한국적인 수도회, 즉 방인 수도회를 창설하기로 마음먹는다. [[경기도]] [[개성시|개성]]성당에 부임한 방유룡 신부는 성당 신자들 중 수도생활에 뜻이 있는 신앙심 깊은 젊은 처녀들을 모아 1946년 [[수녀회]]를 창설, [[한국 103위 순교성인|한국의 순교복자]]들을 [[주보성인]]으로 하여 '한국순교복자수녀회'라고 명명한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파견된 수녀들이 교육을 맡았고, 점점 규모가 커지고 발전되면서 수녀원을 개성에서 [[서울]]로 이전했으며, 1951년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다녀오는 등의 어려움도 겪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성공을 발판으로 1953년에는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창설했다. 1957년에는 '한국순교복자외부회'라는 [[재속회]]를 설립했는데, 세속에서 평신도로 살면서 완화된 수도규칙을 따르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1962년 창설한 '빨마회'에는 40세 미만의 독신 여성 신자들, 특히 사별하여 혼자가 된 여성들도 입회하여 수도공동체 생활을 했다. 빨마회는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로 발전한다. ==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영성과 활동 ==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한국적인 수도회 창설'이 목표였던 방유룡 신부는, 수도회의 영성과 목표에 대해서도 점성([[點]][[性]]), 침묵([[沈]][[默]]), 대월([[對]][[越]]), 면형무아([[麵]][[形]]無我), 완덕오계([[完]][[德]][[五]][[戒]]) 등의 [[동양]]적인 용어들을 많이 사용했다. [[http://sbkm.kr/sub0105|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영성]] [[https://www.youtube.com/c/%EB%B3%B5%EC%9E%90%EB%B0%A9%EC%86%A1BJBS|복자방송]]: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의 공식 [[유튜브]] 채널. 3개의 수도회는 국내외에서 선교, 교육, 의료, 복지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펴고 있다. *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에 본원을 두고 있으며,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운영하는 [[복자여자중학교]]와 [[복자여자고등학교]]는 지역에서 명문학교로 [age(1961-01-01)]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는 관상([[봉쇄]]) 수녀원도 있다.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서울)|성북동]]에 본원을 두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새남터 순교성지]] 성당의 사목을 맡고 있으며, [[피정]]의 집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 [[마카오]]와 [[필리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울산광역시]]에 본원을 두고 있다. 주로 신학교와 사제관 등의 주방에서 [[요리]]를 맡고 있고, [[천주교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 앞에서 북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