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게르만족)] [include(틀:나치즘)]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prachenkarte_Mitteleuropas_%281937%29.png|width=100%]]}}} || || [[1937년]] 시점 유럽 내 [[독일어]] 사용자의 분포도 || [목차] [clearfix] [[汎]][[게르만족|게르만]][[主]][[義]] [[독일어]]: Großdeutschland / Pangermanismus[* 본래 [[독일어권]]에서 시도하려 했던 좁은 의미의 범게르만주의는 전자, [[2차대전]] 당시 [[나치당]]이 좀 더 넓게 정의한 범게르만주의는 후자에 해당한다.] >독일이 방어와 공격의 정신으로 형제처럼 서로 함께 단결하면 / 마스[* [[벨기에]]에 자리잡은 [[뫼즈 강]]의 독일어식 표현이다.]에서 [[메멜]][* 현재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까지, 에치[* 스위스와 이탈리아 북부를 지나는 [[아디제 강]]의 독일어 명칭.]에서 벨트[* [[발트해]]가 아니라 'Belt'라고 불리는 [[덴마크]] [[유틀란트]]에서 [[셸란]] 사이의 릴레벨트 해협과 스토레벨트 해협을 말한다. 애초에 발트해는 독일어로 'Ostsee', 즉 동해다.]까지! >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brüderlich zusammenhält /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 >[[독일의 노래]] 中 == 개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hvFAv1B0qc)]}}}||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as ist des Deutschen Vaterland? 독일인의 조국은 무엇인가? Ist’s Preußenland? Ist’s Schwabenland?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인가? [[슈바벤]]인가? Ist’s, wo am Rhein die Rebe blüht? 포도가 자라는 [[라인강]]인가? Ist’s, wo am Belt die Möwe zieht?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는 벨트인가? '''O nein, nein, nein!''' '''오 아니라네, 아니라네, 아니라네!''' '''Sein Vaterland muss größer sein!''' '''우리의 조국은 더 커져야 한다네!'''}}} || || [[독일인의 조국은 무엇인가]] 中[* 노래 길이가 매우 긴데 [[알자스-로렌]]은 기본이고 [[오스트리아]], [[티롤]], [[스위스]], 그리고 [[도나우 강]]변까지 전부 독일로 취급하는 [[1848년 혁명|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사실 문화권, 언어권을 기준으로 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당시 '독일'은 관념상의 권역이지 정치적 실체가 아니었다.] || [[19세기]] 무렵에 태동해 [[20세기]] 초 [[전간기]]에 [[독일어권]] 지역에서 성행했던 [[범국민주의]] 사상으로, [[대독일주의]]([[大]][[獨]][[逸]][[主]][[義]])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범게르만주의가 주장하는 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독일어]]를 사용하는 모든 지역이 '''독일'''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뭉쳐 통일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개전을 범게르만주의로 정당화했고, 유사 개념으로 [[러시아 제국]]이 주도한 [[범슬라브주의]]도 있다. 흔히 [[제1차 세계 대전]]을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충돌"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후 범게르만주의는 [[인종주의]]와 겹쳐 [[나치 독일]]의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표출되고 말았는데, 그 이후로는 사실상 매장된 사상이다. [[Deutschlandlied|독일의 노래]] 1절이 공식적인 국가에서 배제된 것에서 보이듯이 오늘날에 이런 생각을 입에 올렸다간 거의 [[네오나치]] 취급을 받는다. 범'게르만'주의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독일어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게르만 지역([[네덜란드]], [[잉글랜드]], [[북유럽]])은 포함하지 않는다.[* 다만, [[북유럽]] 지역에는 [[범스칸디나비아주의]]가 따로 있었다.] == 역사 == === 탄생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Deutscher_Bund.png|width=100%]]}}} || || 19세기(1815–1866) [[독일 연방]] 소속 독일어권 국가들 || 18세기까지 [[프랑스 왕국]]에서 독일을 가리키는 단수(Singular) 명칭이 없이 독일'''들''', 혹은 [[독일어권]]이라고 지칭한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독일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하나의 대제국으로 묶여있기는 했지만, 프랑스와는 달리 중앙집권화에 실패해서 제후들이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형태였고,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각 제후들이 주권을 가지면서 완벽하게 허울이 되어버렸다. 그나마도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하면서 1806년에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도 [[민족주의]] 열풍이 거세졌고 [[1848년 혁명]]을 거치면서 독일어권 사용 지역을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Deutschlandlied|독일의 노래]] 1절이다. === [[소독일주의]]의 승리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Dual_Alliance_in_1914.png|width=100%]]}}} || || 1914년, 독오동맹 시점의 [[독일 제국]][* 파란색]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빨간색] || 하지만 통일된 독일을 형성하고자 했던 프랑크푸르트 의회는 보수세력의 반동으로 붕괴하고, [[독일어권]] 지역은 다시 [[독일 연방]]이라는 느슨한 정치적 연합체가 형성되었다. 독일 연방을 양분한 세력은 전통적으로 [[독일어권]]의 터줏대감을 자처해온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제국]]과 18세기를 기점으로 새로이 강국으로 급부상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로이센 왕국]]이었다. 두 강대국의 갈등은 결국 [[보오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서 승리한 측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에서 축출되었고 독일 민족만으로 이루어진[* 물론 [[독일 제국]]도 다민족국가였으며, 독일 제국 수립을 주도한 프로이센만 하더라도 동부의 [[포젠]], [[서프로이센]] 일대에 수백만 명의 [[폴란드인]]과 [[알자스로렌]]의 [[프랑스인|프랑스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덴마크인|덴마크계]]가 있었다. 그러나, 독일계가 고작 25%밖에 안 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비해서는 확실히 독일 민족의 비중이 훨씬 컸다.] [[소독일주의]] 통일 국가가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독일 제국]]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독일계가 주축이 된 국가가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두 곳이 생겨났으니 독일어권은 통일된 게 아니라 양분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여담으로 명목상 소독일주의 강역에 [[룩셈부르크]]를 포함하는데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의 일부였으며, [[독일 연방]]의 회원국이었기 때문이다. === [[나치즘]]과의 결합 ===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독일연방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독일 내 범게르만주의의 광풍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프로이센보다는 오스트리아와 훨씬 가까웠던 독일의 (주로 남부) [[가톨릭]] 신자들과 [[사민주의|사민주의자]]들 중에서도 '오스트리아를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왔고, [[아우스글라이히]] 이후 급부상한 이민족 [[헝가리인]]에 의해 입지가 크게 줄어든 [[오스트리아-헝가리]] 내 [[오스트리아인]]은 기득권 수복을 위해 가까운 독일 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다. 이렇게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독일제국으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는데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이러한 범게르만주의는 옆동네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을 빚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으면 범게르만주의가 정말로 실현될 수도 있었겠지만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끝났고,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의 독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안슐루스]] 금지[* 다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합은 [[민족자결주의]]에 부합하는 것이었음으로 20년간만 금지했으며 결국 시효가 만료되자마자 히틀러는 자신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기어코 독일의 강역에 편입했다.] 등 범게르만주의자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결과가 왔다. 1차 대전 패전 이후에도 민족주의와 통일관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나치당을 위시한 범게르만주의자들이 기존의 사상을 비뚤어진 인종주의와 결합하면서 나치즘이 대두하였다. 이른바 [[레벤스라움]]이라고 불리는 동유럽으로의 영토 확장은 처음부터 범게르만주의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사이였지만 [[우생학]]을 신봉했던 나치들은 '저 동네 [[슬라브인]]들을 싸그리 멸족시키고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자'는 정신 나간 주장을 펼쳤다. 여기에 '고대 게르만족의 후예이면 모두 하나다!'라는 개념까지 더해져서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하나의 독일 안에 아우르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러한 움직임의 정점이 1938년 실시된 [[안슐루스]]와 그 이후의 [[뮌헨 협정]]. 여기서 멈췄으면 괜찮았겠지만[* 오스트리아 합병이나 수데텐란트 할양의 경우 베르사유조약의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하여 진행되었기에 나름의 명분이 있었고, [[대영제국|영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가 우방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버리면서까지 평화를 원했기에, 정말 이 시점에 히틀러의 야욕이 멈추었다면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치는 정신 못 차리고 [[2차 대전]]으로 판을 전세계구급으로 벌려버렸다. 이후 독일에 수립된 [[서독]]과 [[동독]]에서 범게르만주의는 사회적인 [[금기]]가 되었고 몇몇 [[네오나치]]들을 제외하면 사장된 사상이 되었다. === 이후 === 1990년 [[동서독 통일|독일 통일]]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되면 다시 범게르만주의를 제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잠깐 커졌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유럽 연합]]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독일이 탄탄한 경제력과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유럽 연합]]의 실질적인 수장국으로 자리잡은 이후에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동유럽과 남유럽으로부터 [[제4제국]]이나 다름이 없다는 비아냥을 받지만, 일단 현재의 독일의 패권은 민족성이 아닌 경제력에 기반하기 때문에 [[독일 제국]]~[[나치 독일]] 시대의 범게르만주의와는 차이가 명확하다. 제4제국이라는 오해와 달리 만장일치제를 채택한 EU 체제에서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맹주국임에도 정책을 헝가리, 폴란드, 이탈리아, 그리스에게 늘 쩔쩔매며 설득하기 바쁘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내셔널리즘)] [[분류:게르만족]][[분류:독일 제국]][[분류:오스트리아 제국]][[분류:독일 내셔널리즘]][[분류:나치 독일]][[분류:범국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