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파키스탄 총리)] [include(틀: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 ||<-3><#01411C> '''{{{#FFFFFF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제11·13대 총리}}}[br]{{{#ffffff {{{+1 베나지르 부토}}}}}}[br]{{{#ffffff بينظير ڀُٽو[br]Benazir Bhutto}}}'''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베나지르 부토.jpg|width=100%]]}}} || ||<|2> '''{{{#white 출생}}}''' ||[[1953년]] [[6월 21일]] || ||[[파키스탄 자치령]] [[신드|신드 주]] [[카라치]] || ||<|2> '''{{{#white 사망}}}''' ||[[2007년]] [[12월 27일]] (향년 54세) || || 파키스탄 [[펀자브(파키스탄)|펀자브 주]] [[라왈핀디]] || || '''{{{#white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파키스탄)]|| ||<|4> '''{{{#white 재임기간}}}''' ||<(>제11대 총리 || ||<#ffffff>[[1988년]] [[12월 2일]] ~ [[1990년]] [[8월 6일]] || ||<(>제13대 총리 || ||<#ffffff>[[1993년]] [[10월 18일]] ~ [[1996년]] [[11월 5일]] || ||<|3> '''{{{#white 학력}}}''' ||[[하버드 대학교]] {{{-2 ([[학사|AB]])}}} || ||[[옥스퍼드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컬리지#s-5.15|레이디 마가렛 홀]] {{{-2 ([[PPE]] / [[학사|BA]])}}} || ||[[옥스퍼드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컬리지#s-5.32|세인트 카서린 컬리지]] {{{-2 (국제법, 외교학 / [[석사|MSt]])}}} || || '''{{{#white 정당}}}''' ||[[파키스탄 인민당]]|| || '''{{{#white 배우자}}}'''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Asif Ali Zardari)[* 1955년생으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파키스탄 11대 대통령을 지냈다] (1987~2007) || || '''{{{#white 자녀}}}''' ||슬하 1남 2녀 || || '''{{{#white 신장}}}''' ||165cm|| || '''{{{#white 종교}}}''' ||[[이슬람]] || || '''{{{#white 주요 경력}}}''' ||[[파키스탄 인민당]] 대표[br]파키스탄 인민당 의장[br]파키스탄 제11대, 13대 총리|| [[우르두어]]: بینظیر بھٹو [[영어]]: Benazir Bhutto [목차] [clearfix] == 개요 == [[파키스탄]]의 여성 정치인으로 제11대, 13대 총리를 역임했으며 [[1988년]] [[12월 2일]]부터 [[1990년]] [[8월 6일]]까지, 그리고 [[1993년]] [[10월 18일]]부터 [[1996년]] [[11월 5일]]까지 이렇게 2번 총리를 역임했다.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이며 [[2007년]] 암살당했다. == 생애 == [[줄피카르 알리 부토]](1928~1979) 전 [[파키스탄 총리|총리]]의 딸로, [[카라치]]에서 출생하여 [[하버드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아버지가 쿠데타로 축출당한 후 [[처형]]되었고, 베나지르 자신도 여러 번 체포되어 투옥된 바 있다. [[1984년]] [[영국]]으로 [[망명]]하는 것이 허락되자 망명상태에서 부친의 정당인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당수로 취임하였다. 그런데 부토의 아버지를 죽이고 10여년간 독재를 했던 [[무함마드 지아울하크]](1924~1988)가 [[1988년]]에 원인 모를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으면서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그해 치러진 선거에서 이겨 [[이슬람 국가]] 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안 되어 아버지처럼 [[쿠데타]]를 겪고 군부의 지지를 받은 굴람 이스하크 칸(1915~2006) 에 의해 수상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같은 해 [[11월 16일]], 부토는 《피플》지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3년]] 선거에서 이스하크 칸을 제치고 재선되었으나, 3년 후에 여러 비리와 부패혐의로 인해 파루크 아흐메드 칸 레가리(1940~2010)에 의해 또 한번 해임되었다. 총리 재직 당시, [[파키스탄의 핵개발|핵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을 통해 '''[[북한]]에 [[우라늄]] 농축 관련 기술을 전수'''해 준 것으로 [[미국]]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게서 미사일 기술을 받아오기 위한 것이었으며, 차후 2005년 되어서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대통령 및 샤우카트 아지즈 당시 총리가 '''파키스탄이 북한에 원심분리기를 제공하였음을 시인'''하였다. 결국 부토는 '''[[북한의 핵개발]]의 중요한 토대를 놓아 준 인물'''인 것이다.] [[1999년]]에 부패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런던]]에 머물고 있어서 처벌을 피했다. 다만 부토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는 부패 스캔들로 인해 체포되어 [[2004년]] 11월까지 옥살이를 해야했다. [[2006년]], 국제 형사 경찰 기구인 [[인터폴]]이 파키스탄 정부의 요청에 응하여 부토와 남편 두 사람의 체포를 요구하는 국제수배서를 발행했고, 부토는 정부가 사면을 허락할 때까지 [[파키스탄]]에 돌아올 수 없었다. 부토는 군부가 뒤집어 씌운 누명이라면서 이 부패 혐의들에 대해 부정했지만, 여러 혐의와 의문점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은 [[1999년]] [[인도]]와 벌인 [[카길 전쟁]]에서 패했고 같은 해 [[무샤라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이 바뀌는 등 정치 상황이 불안해졌다. 무샤라프가 반발하는 부토의 지지층을 달래고자 부토를 사면해서 [[2007년]] 10월, 무려 11년만에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2008년]]에 있을 선거도 대비하고 여러 외교적 활약을 하던 부토였으나... [[2007년]] [[12월 27일]] 파키스탄을 방문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만난 것이 부토의 마지막 외교 활동이었다. 그날 오후에 인민당 집회 연설을 끝내고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난입한 10대 소년의 자폭 테러로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했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되고 있었다. 부토가 귀국한 2007년 [[10월 18일]]에도 부토를 환영하던 인파 사이에서 폭탄이 터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0608340|수십 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12월 8일]]에는 부토의 선거 사무실에 괴한이 난입해 총기난사를 하는 등 암살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파키스탄 [[탈레반]]을 이끌던 바이툴라흐 메흐수드를 추종하던 광신자 근본주의자였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점과 세속적인 정책을 추구하던 점 때문에, 그동안 [[탈레반]]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부토를 증오했다. 하지만 끝내 정확한 범인과 배후 세력은 드러나지 않았고,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 줄피카르 알리가 [[2013년]] [[이슬라마바드]]에서 암살당하기도 했다. 한편, 배후세력으로 유력시된 메흐수드는 [[2009년]] [[미군]] 무인기 공습으로 37세 나이로 폭살당했다. == 여담 == 여담인데, 부토는 영국 유학 시절에 대학 동창이자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테레사 메이]]에게 남편인 필립 메이를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부토는 생전에 후계자로 외아들인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가 죽고 사흘만인 2007년 12월 30일에 인민당은 겨우 19살이며 아직 대학생 신분이던 빌라왈을 새로운 당수로 임명했다. 다만, 빌라왈이 영국에서 유학중인 학생이란 점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는 빌라왈의 아버지이자 부토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당수직을 대행했고, 빌라왈이 학업을 끝낸 2011년부터 당을 이끌기 시작했다. [[2018년]] 파키스탄 총선에서 인민당은 342석에서 43석을 차지하며 3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2022년에 셰바즈 샤리프 내각에서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가 외무부 장관에 오른다.[[https://m.yna.co.kr/view/AKR20220428091300077?section=international/all|#]] [[분류:파키스탄 총리]][[분류:1953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분류:암살된 인물]][[분류:파키스탄의 무슬림]][[분류:옥스퍼드 대학교 출신]][[분류:카라치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