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유적지)] [[파일:attachment/GmounBtemple.jpg|width=600]] [목차] = 금강산의 보덕암 = == 개요 == [[금강산]] 만폭동계곡 분설담 옆에 위치한 [[절(불교)|사찰]] 암자. 아주 작은 곳으로, 딱히 화려한 곳도 아니지만 '''절벽에 기둥 2개에만 의지해서 지어진 살 떨리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21세기에 [[전제군주제]]를 실현한 [[북한]] 안에 있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지만, [[금강산]] 관광이 시행될 무렵에 소수의 인원은 직접 갔다온 것으로 보인다. 긴 기둥은 '''[[구리(원소)|구리]]로 감싼 나무기둥'''으로, 마루 귀틀을 받치고 그 위에 단칸짜리 기와집을 지었다. 그 위에 눈썹지붕을 올리고 그위에 팔작지붕을 얹고 다시 또 그 위를 맞배지붕으로 가리고 또 다시 우진각지붕을 올린 점 역시 상당히 독특한 모습이다. 5.3m, 너비 2~1m, 높이 2~1m의 작은 동굴에 비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막고, 겨울에도 참선할 수 있도록 1평이 채 못 되는 좁은 전실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고구려]] [[안원왕]] 때 승려 보덕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숙종(조선)|숙종]] 1년(1675)에 지은 것을 [[순조]] 8년(1808)에 중수하였다. 구리로 감싼 기둥을 [[중종(조선)|중종]] 6년(1511)에 세웠다는 기록을 보면 그 이전의 건물은 나무기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을 [[구리(원소)|구리]]로 감싼 이유는 강도를 높이는 것도 있겠지만, 우선 너무 길기 때문에 비를 맞아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붉은 구리는 공기 중에서 [[물]]과 [[이산화 탄소]]에 의해 산화되어 푸른 빛의 녹청이 생기는데, 수십년이 지나 녹청 피막이 생긴 이후로는 물 등에 반응하지 않는다. [* 때문에 요즘은 구리로 기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의 돔도 구리인데, 이 경우는 서구의 [[바로크]] 건축 스타일을 가져온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찍힌 사진과 지금의 모습이 조금 다른데, [[북한]]이 관리하면서 뭔가 좀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주] [[분류:북한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