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 [목차] == 개요 == 한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나 최근엔 3의 의미로 통한다. == 賦役 == [[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 사업을 위하여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 옛날로 치면 역(役)과 같다. 성곽이나 관아를 공사하는데 백성들을 뽑아서 무보수로 시켰던 일로, 흔히 평시 [[징발]]의 일종으로 취급하여 '부역 징발'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자기가 먹을 것도 자기가 들고와야 했다. 일시적인 동원 사업의 경우 부역이라 하며, 이를 제도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징용]]'''이라 한다. [[한민족]]의 역사에서는 [[조선시대]]를 끝으로 사라졌다고 생각들 하지만, 통금처럼 은근히 현대까지 남아 있었고 현재도 남아 있다. 군사정권 당시에 추진된 새마을 운동이나 산림녹화 사업 등을 할 때 주민들을 동원하였고[* 이 시절에는 동원 참여자에게 대가로 밀가루나 쌀을 지급했다.], 최근에도 홍수나 산사태 같은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 민방위 소집 등을 통하여 인력을 확보하여 일을 시킨다. 의도에 다소 차이가 있다지만, 국민들을 노역으로 국가 사업을 진행하거나, 재해를 극복하는 점에서는 조선시대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방부]]는 이를 [[징병제]]라는 이름으로 잘 활용중이다. 북한에서도 모내기철과 수확철에는 농기계가 비싸다보니 주민들을 동원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외에도 주민들을 동원해서 행사를 벌이는 경우도 잇는데, 이 경우에는 질병같은 이유가 아닌 이상 의무적으로 참석해야되기 때문에 [[회식]] 비슷하게 취급된다. == 赴役 == 1. 병역이나 부역(賦役)을 치르러 나감. 2. 사사로이 서로의 일을 도와줌. == 附逆 ==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함. 요새는 보통 3의 의미를 얘기한다. 부역을 한 사람을 가리켜 부역자라고 한다. === 부역자 === 附逆者, collaborator, quisling [[전쟁]] 중의 점령당한 지역에서 점령군에 협조하거나 [[식민지]]에서 지배국가에 협조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명한 부역자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에 협조한 유럽인들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부역자가 꽤 있었는데 문제는 부역자를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적인 원한이 있던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 동네 머슴이 완장 차고 [[인민재판|지주 일가를 박살 내놓은 사례가]] 제일 흔하고, 일제강점기 친일파라고 쫓겨난 동네 순사나 지주가 완장 차고 와서 멀쩡한 동네 주민들을 반동으로 몰거나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일도 많다.]가 많았다. 자발적인 부역과 강제 부역을 구분하지 않고 도매금으로 넘기는 경우도 많았다. ==== 자발적 부역자 ==== [[친일반민족행위자]]나 [[나치 독일]]이 [[동유럽]]을 점령했을 때 [[유대인]]이나 저항군을 솎아내는데 협조한 현지민 등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비시 프랑스]]가 끝나자 부역자들을 강하게 처벌했다. ==== 강제 부역자 ==== 자발적으로 부역에 나서는 사람으론 부족하기 때문에 점령군이나 식민정부에서는 강제징용이나 강제징병 같은 강제적 수단을 사용한다. ==== 부역자들 사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21px-Bundesarchiv_Bild_183-J16695%2C_Soldaten_der_Legion_%22Freies_Indien%22.jpg]] [[영국군]]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북아프리카]]나 [[유럽]] 전선에서 포로로 잡힌 뒤에 재구성된 독일 소속의 자유인도군단(Free India Legion). 영국 식민제국에 맞서싸웠기때문에 자유인도군단이라고 했다. 실제로 2차대전기 인도 독립운동에 일본이 큰 영향을 가졌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존속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1I-141-1258-15%2C_Russland-Mitte%2C_Soldaten_der_franz%C3%B6sischen_Legion%2C_Fahne.jpg]] [[나치]] 소속의 군으로 [[소련]]을 공격한 프랑스인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83-B11441%2C_Libau%2C_Zusammengetriebene_Juden.jpg]] [[유대인]]들을 불러내는 [[라트비아]]의 보조경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46-1977-137-20%2C_Bosnische_SS-Freiwillige_beim_Gebet.jpg]] [[알바니아]]에서 훈련을 받는 [[나치]] 소속 [[무슬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1I-561-1148-04%2C_Ausbildung_arabischer_Luftwaffensoldaten.jpg]] 독일-아랍군단의 병사들. 이들은 [[지원병]]이었다. ==== 부역자의 처벌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A+French+woman+has+her+head+shaved+by+civilians+as+a+penalty+for+having+consorted+with+German+troops,+1944.jpg|width=100%]]|| || 독일인과 관계를 맺었다며 [[삭발]]당하는 프랑스 여자 || 독일 군인과의 연애, 매춘 그리고 청소나 접시닦이 같은 잡역도 처벌되었는데 독일군에게 강간당한 여성피해자도 부역자로 몰리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정식 재판도 없이 레지스탕스에 의해 사적제재를 당했다. 보통은 위의 사진처럼 삭발을 하고 [[조리돌림]] 시켰으며, 일부는 처형당했다. ||[[파일:external/i.huffpost.com/NAZI-FIRING-SQUAD.jpg|width=100%]] [[파일:external/1d30ec983cbb67016903df3f8bf1764b80ca1b6bd0e41523c9026a32a50d4e5d.jpg|width=100%]]|| || [[비시 프랑스]]에서 밀리스 [[경찰]]로 복무하여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의해 [[즉결처형]]되는 부역자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rrested_Gestapo_helpers_1945.jpg|width=100%]]|| || [[게슈타포]]에 협조했던 [[덴마크]]인이 [[조리돌림]]되고 있다. || 초반엔 강력한 부역자 청산을 주장했던 [[알베르 카뮈]]도 후에 화풀이가 반복되자 이를 규탄했을 정도였다. 한국전쟁 때는 이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사례가 대단히 많다. 서울이 함락되었다가 다시 수복했을 때의 예가 대표적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엔 문제가 더 컸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서울은 안전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라고 방송까지 해 놓고는 [[한강 인도교 폭파|한강 인도교를 폭파해서]]' 서울의 민간인들이 탈출할 방법까지 막아놓았고, 정작 이후 서울을 탈환한 뒤 서울에 남아 있던 민간인들을 부역자라며 처벌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협조했던 부역자들은 무려 55만 명에 이르렀다. 특히 머슴 같은 하층 계급들이 많았는데, 이 머슴들은 공교롭게도 1950년 3월에 있었던 토지개혁에서 제외되어 토지를 분배받지 못해서 불만이 높았는데, 때마침 북한군이 쳐들어와서 머슴들한테도 땅을 나눠준다고 약속하자 많은 수가 북한군에 협력하였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6418|링크]] 아울러 한국전쟁 무렵, 황해도 신천군에서도 빈민층과 머슴들이 북한군에게 협력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951.html|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