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인구:1,226,700''' [[베트남]] 남부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17세기]] 중엽 [[베트남인]]이 남하하면서 건설한 신개척지이다. 동나이성의 성도이자 성할시이다. == 역사 == [[호찌민시]]에서 북동쪽으로 30km 떨어진 동나이강 유역, [[코친차이나]] 평야의 동쪽 끝에 있다. [[1861년]]에는 [[프랑스군]]에게 한때 점령되기도 했으며 [[베트남 전쟁]] 중에는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510ha에 이르는 [[공업단지]]가 형성되어 [[강철]], [[금속]], [[전자제품]], 제지용 펄프, [[트랙터]] 등을 생산해 왔으나 전쟁 중에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 경제 == 지금은 대부분 복구되어 새로운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넓은 면적의 [[고무나무]] 숲이 펼쳐져 있어 여기에서 나오는 [[고무]]가 주요 산물이다. 전쟁 당시 건설된 50m 너비의 국도가 [[호찌민시]][* 당시는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수도였기 때문에 [[사이공]]으로 불렸다.]와 연결되어 물자 수송이 편리하므로 인근 농촌에서 생산되는 [[쌀]], 고무, 야자유, [[과일]] 등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타일, 도자기 제조 및 건축용 석재 같은 전통산업이 활발하며 미술학교와 요업학교가 있다. 시 외곽에 커다란 [[비행장]]이 있으며 전력은 다이남수력발전소에서 공급받는다. == 기타 == 이곳에는 옛 [[베트남 공화국]] 시절 만들어진 '비엔호아 군사 묘지'가 있는데 주로 [[베트남 공화국군]] 군인들이 안장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베트남 통일]] 후에는 대한민국의 [[적군묘지]]처럼 [[베트남]]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6년 남베트남 출신으로 공산당에 가입해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했던 '응우옌떤중'이 베트남 제6대 총리[* 정확하겐 정부 수상]로 선출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민족의 화해와 선의의 목적으로 이 묘지를 군사구역에서 해제하고 일반인의 방문을 허락했으며, 다른 국립묘지처럼 정부가 관리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애초에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해당 묘지는 더 이상 비엔호아 지역에 속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1년 뒤인 2007년 '빈즈엉' [[성(행정구역)#s-2.2|성(省)]] 정부는 이 묘지의 이름을 '평안 국민 묘지'로 개칭하였다. [[분류:베트남의 성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