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국가의 형태)] [목차] 非主權君主制 Non-sovereign monarchy == 개요 == [[군주]]이지만 주권자, 즉 [[국가원수]]는 아닌 경우. 지방군주제(Subnational monarchy) 또는 구성군주제(Constituent monarchy)라고도 한다. 한 나라에서 국가원수 외에 또 다른 군주가 재위하였지만 국가원수의 자격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일단 왕권을 일부 쥐었다는 점에서 [[왕위 요구자]]와는 다르다. 물론, 왕위 요구자인 비주권 군주도 엄연히 있다. 명목상으로만 주장하는 [[작위]]를 제외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 그 나라 [[정부]]로부터 군주 대접은 받지만, 일단 [[군주제]]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때, 비주권 군주가 그 나라 전체의 군주를 자칭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청나라 소조정]] 시기의 [[아이신기오로 푸이]][* 이 당시 [[중국 대륙]]의 지배자는 [[중화민국]] 정부였다. 더더욱 실질적으로는 지방 [[군벌/중화민국|군벌들]]이었지만...]나, 현대 [[몬테네그로]]와 [[루마니아]], [[알바니아]] 왕실이 대표적이다.[* 여담으로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동유럽]] 국가의 왕실들이 아직까지도 비주권 군주정인 이유는 [[경제]]가 어려워 [[왕정복고]] 문제를 후 순위로 미뤘기 때문이다.] 또한 군주나 왕으로 불리지 않더라도 족장, 백작, 영주, 기사단장 등 봉건적 지위를 가지고 별도의 영토를 거느리는 경우도 비주권군주제로 간주된다. 본국이 [[군주제]]인지 [[공화제]]인지는 상관이 없으며 대표적으로 [[독일 제국]], [[말레이시아]] 등 [[연방군주제|연방제 군주국]]의 지방 군주들이나 [[프랑스]]의 해외 영토인 [[왈리스 퓌튀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국가의 처우에 따라 어느정도 [[참정권]] 또는 자치권을 가지거나 명예직에 불과한 신세가 되기도한다. 비주권 군주가 나오는 이유는 전통적인 이유가 있거나 [[연방군주제]]이거나 또는 [[다민족국가]]에서 원래 자신들이 모셨던 군주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민족]]과 [[갈등]]이 생겨 이에 대한 방안으로 생겨난 경우 등이 있다.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된 후 여전히 구 왕실에 대한 지지하는 여론이 있어 왕실을 폐지하기에 부담스러운 경우 일종의 예우 차원에서 정부와 별도로 분리하여 법적인 왕으로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괴뢰국]] 군주의 경우는 명목상 주권은 있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입헌군주제]]와도 헷갈릴 수 있지만, 입헌군주제는 [[권리]]와 [[권력]]만 [[국민]]과 [[정부]]에게 주어졌을 뿐, [[주권]]은 명목상으로나마 여전히 군주에게 있다는 차이가 있다. 명확한 차이점은 군주가 내각수반 임명권, 의회 해산권, 법률 제정권 등의 국사행위를 (명목상으로라도) 수행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초소형국민체]]로서 본국의 비주권 왕조를 선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본국에서 인정한 것이 아니므로 포함되지 않는다. == 사례 == === 오늘날 === ==== [[가나]] ==== 구 [[아샨티 제국]]이 [[가나]] 공화국의 행정구역 [[아샨티 주]]로 편입된 뒤에도 [[아샨티헤네]](아샨티 군주)는 명목상 아샨티 주의 지방 군주로서 재위하고 있지만 행정수장은 아니며 정치서열상 주지사(Regional Minister, 직역하면 지방장관)가 더 높다. ==== [[나이지리아]] ==== [[나이지리아]]는 공화국이지만 언어가 무려 525개나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마다 부족별로 족장이 존재하며, 공식적인 정치적 권한은 없으나 여전히 많은 공동체에서 높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주정부가 자기 주 산하에 있는 기존 [[번(제후국)|번]](藩)을 병합하거나 분할할 수 있다. 가령 2019년 [[카노 주]]는 카노 [[에미르]]국에서 비치, 카라예, 가야, 라노 에미르국을 분할시켜 5개로 쪼갰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 ====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국명대로 공화국이지만 [[줄루족]]의 왕이 존재하며, 이 외에도 다른 부족의 왕이 존재한다. [[로베두족]]의 여왕인 [[모자지]]가 유명. 2022년 1월 12일에는 [[코이산족]]의 왕이 [[남아공]]의 공용어에 [[코이산 제어|코이산어]]를 포함해 달라면서, 대통령궁 앞에서 [[대마초]]를 재배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3명의 시위자들과 함께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https://news.livedoor.com/article/detail/21502555/|관련기사]] ==== [[뉴질랜드]] ==== [[뉴질랜드]]는 명목상 [[영국 국왕]]이 동시에 뉴질랜드 국왕으로서 군림하는 [[영연방 왕국]]이다. 그러나 과거 [[유럽]]계 백인들과 [[마오리족]]의 오랜 충돌 과정에서 북섬 중부의 마오리 부족들을 중심으로 영국 국왕처럼 자신들의 군주를 모셔야 한다는 운동(Māori King Movement)이 일어났다. 그 결과 [[1858년]]에 와이카토족의 족장 포타타우가 첫 군주로 선출되었다. [[마오리 왕]]은 뉴질랜드 정부에서 그 나름대로 존중을 받지만, [[뉴질랜드 국왕]]과는 달리 뉴질랜드 내에서 어떠한 법적 지위가 없는 관습적인 직위이다. [[마오리 왕]]이 서거하면 장례식장에서 부족장들이 새 왕을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세습군주제다. 현 7대 왕 [[https://en.wikipedia.org/wiki/T%C5%ABheitia_Paki|투헤이티아 파키]](Tūheitia Paki)도 전 여왕의 아들이었다. ====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는 연방 입헌군주국으로서 9명의 지방 군주들이 있으며 차기 [[양 디페르투안 아공|국왕]]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선거군주제]]지만 실제로는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즉위한다. 행정구역으로 넓혀보면 [[느그리슴빌란]] 주에서도 본국과 똑같이 여러 군주들이 순번제로 제위하는 비주권군주제 내의 또다른 비주권군주제가 존재한다. ==== [[몬테네그로]] ==== [[몬테네그로]]는 공화국으로 2011년 7월 12일 의회에서 왕실을 재건하고 공화국의 틀 안에서 제한된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법률을 통과시켰다. ==== [[보츠와나]] ==== 발렛족(Balete people)의 세습 지도자 직은 2023년 기준으로 여성인 [[뮤리엘]](Muriel)[* 뮤리엘은 영어 이름이고 [[츠와나어]] 이름은 'Mosadi Seboko'이다.]이 맡고 있다. ==== [[스페인]] [[아스투리아스#s-2|아스투리아스주]] ==== 스페인의 주(Province)인 [[아스투리아스#s-2|아스투리아스주]]는 본래 아스투리아스 공국(Principality of Asturias)으로서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스페인 왕위 계승 예정자]]를 비주권 군주로 모신다. 현재 아스투리아스 여공이자 스페인 왕위 계승자는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레오노르 공주]]다. 여담으로 스페인은 아직 왕위 계승에 한해선 남성 우선 상속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레오노르 공주 역시 확정 상속인의 신분이 아닌데 아스투리아스 공위는 영국의 웨일스 공위와는 다르게 비주권 '''군주'''이므로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군주의 추정 상속인에게도 주어진다.[* 왕에게 자녀가 없으면 동생이 아스투리아스 공이 되고 왕이 첫째 아이로 딸을 낳으면 동생은 아스투리아스 공에서 퇴위한 뒤 조카에게 작위를 넘겨주는 식이다.] 다만 현재 아스투리아스 공인 레오노르 공주는 2023년 10월까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성년이 될 때까지 [[펠리페 6세]]가 섭정을 맡고 있었다. ==== [[아랍에미리트]] ==== [include(틀: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 [[아랍에미리트]]는 연방제 전제군주국이다. 국가원수의 호칭이 대통령이고 5년 임기로 연방 최고 평의회에서 선출하여 공화국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연방 구성 국가인 토후국 별로 [[아미르]]라고 하는 지방 군주들이 존재하며 대통령도 [[선거군주제|이들 중에서 선출]]한다. ==== [[아일랜드]] ==== 북쪽 끝 [[도니골 주]] 토리 섬(Tory Island)에는 선거군주제가 있으나, 패치 댄 로저스(재위 1993~2018)가 사망하면서 현재는 왕위가 공석이다.[[https://en.wikipedia.org/wiki/Kings_of_Tory|#]] ==== [[영국]] ==== [[영국]]은 입헌군주제로 [[오크니 제도]]에서 오크니 백작(Earl of Orkney)이 존속 중이며, 영국 왕실령 [[건지 섬]]의 부속 도서인 [[사크]] 섬에는 [[영국 국왕]]이 겸임하는 노르망디 공작 아래 영주(Seigneur)가 존재한다. ==== [[우간다]] ==== [[우간다]]는 공화국으로 여러 자치 왕국이 존재하지만, 해당 왕국의 군주는 상징에 불과한 입헌군주제다. 독재자 [[이디 아민]]에 의해 한때 폐지되었지만 1993년 복고됐다. ====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는 공화국이고 각 주들은 선출직 주지사가 행정을 관장한다. 다만 [[욕야카르타]]의 경우 특별히 세습 술탄이 주지사직을 독점하는 것을 인정받아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 외에 지역의 상징적인 군주(주로 술탄)가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수마트라섬의 [[https://en.wikipedia.org/wiki/Palembang_Sultanate|팔렘방 술탄]], 자바섬 서부의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Sultans_of_Banten|반텐 술탄]], 자바섬 중부의 [[https://en.wikipedia.org/wiki/Surakarta_Sunanate|수라카르타 술탄]], [[https://en.wikipedia.org/wiki/Pakualaman|파쿠알라만 공작]], [[https://en.wikipedia.org/wiki/Mangkunegara|망쿠네가란 공작]], 보르네오섬의 [[https://en.wikipedia.org/wiki/Pontianak_Sultanate|폰티아나크 술탄]] 등이 있으나, 욕야카르타의 부지사직을 겸하는 파쿠알라만 공작을 제외하면 모두 상징적인 지위에 불과하다. ==== [[프랑스/행정구역|프랑스령]] [[왈리스 푸투나]] ==== [[프랑스]]는 [[공화국]]이지만 [[해외 영토]] 중 [[왈리스 푸투나]]의 우베아, 알로, 시가베 이 3개의 [[왕국]]에서 각자의 군주를 옹립하고 있다. 그러나 세습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왕이 자주 바뀐다. 다만 [[프랑스 대통령]] 하에 임명되는 고위행정관이 왈리스 푸투나의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하므로 이로 인한 문제는 없는 편이다. ==== [[볼리비아]] ==== [[https://en.wikipedia.org/wiki/Afro-Bolivian_monarchy|볼리비아 흑인 군주]] ==== [[콩고민주공화국]] ==== 나이지리아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많은 편이기에 부족별로 자치가 행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콩고 왕자'로 알려진 [[욤비 토나]]도 본래는 자치 부족 중 키토나(Kitona) 부족의 왕자였다.[* 한국으로 망명 뒤에는 그의 형이 부족장으로 재위하고 있다고 한다.] ==== [[탄자니아]] ==== 탄자니아는 공화국으로 키고마주 우지지 마을에 자치 술탄국인 우지지 음웨네 음본웨안 술탄국(Usultani wa kienembonwe wa Ujiji)이 존재하며 군주가 직접 자치권을 행하는 [[전제군주제]]다. ==== [[필리핀]] ==== 필리핀은 공화국으로 여러 술탄들이 존재하며 이외에 라나오 지역의 각지 술탄들로 구성된 라나오 연방(Lanao confederates)이 존속 중이다. 라나오 연방에 속하는 각 술탄들은 세습군주제지만 연방의 수장은 해당 술탄들을 후보로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다. === 과거 === ==== [[네팔 왕국]] ==== [[네팔 왕국]]은 내부에 여러 [[번국]]을 두고, 번국의 [[군주]]들이 비주권군주로 군림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2008년]]에 [[네팔]]의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네팔 왕국에 속한 번국들 역시 폐지되어, 번왕들은 모두 비주권군주도 아닌 [[작위 요구자/아시아|작위 요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 [[누에바에스파냐]] ==== [[1521년]] [[아즈텍 제국]]이 멸망한 후 그 영토는 [[스페인 제국|스페인]]의 [[식민지]]인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되었지만, 스페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즈텍 [[황족]] 후안 벨라스케스 틀라코친[* 원래 이름은 틀라코친이었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스페인의 협력자가 되면서 후안 벨라스케스라는 스페인식 이름까지 갖게 되었다.]을 [[틀라토아니]]로 추대하여 비주권군주로 군림하게 했다. 이러한 체제는 [[1565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이후에는 폐지하여 스페인의 일개 [[귀족]]으로 격하시켰고, 지금까지 아즈텍 황실의 후예는 '목테수마 데 툴텡고 [[공작(작위)|공작]]'[* [[1627년]]부터 [[1639년]]까지는 목테수마 [[백작]], 1639년부터 [[1865년]]까지는 목테수마 데 툴텡고 백작이었고, 1865년에 [[이사벨 2세]] [[여왕]]에 의해 공작으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이라는 스페인의 귀족으로 살고 있다. ==== [[대영제국]] ==== ===== [[인도 제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인도 번왕국)] [[영국 동인도 회사]][[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를 통해 간접 통치하던 영국령 인도]]는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 정부]]의 [[인도 제국|직할령]]으로 전환되었는데, [[영국 국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며 인도 전체의 군주 역할을 했고, [[인도 번왕국|영국에 협력하는 대가로 제한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은]] [[라자|토착 군주들]]은 인도 황제의 [[제후]]로서 비주권군주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47년]] [[인도 분단|인도 제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하자]], [[인도 번왕국]] 가운데 [[인도 자치령|인도]]에 속하게 된 번왕국들은 대부분 즉시 폐지되었고, [[파키스탄 자치령|파키스탄]]에 속하게 된 번왕국들은 인도보다는 오랫동안 존속했지만, [[1970년대]]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의 [[작위 요구자/아시아/인도|번]][[작위 요구자/아시아/파키스탄|왕]]들은 지역에 따라 처지가 다른데, 일부 지역에서는 공식적인 지위만 없을 뿐 [[토호|지역 유지]]로서의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는 번왕이 있는 반면, 번왕이 완전히 몰락하여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듣보]] 취급당하는 지역도 있다. ===== [[남아라비아 연방]] ===== [[남예멘]] 일대에 위치했던 [[남아라비아 연방]]은 [[영국 국왕]]이 연방 전체의 군주를 맡고, [[구성국]] [[아미르|군주]]들은 비주권군주로 군림하는 나라였는데, [[대영제국|영국]]이 철수하여 남예멘이 [[사회주의]] 국가로 독립하면서 폐지되어, 현지인 군주들은 [[작위 요구자/아시아/예멘|모두 작위 요구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 [[독일 제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제국/구성 제후국)] [[신성 로마 제국]] 해체 이후 분열 상태가 지속되던 [[독일어권]] [[군주국]]들이 통합하여 결성된 [[독일 제국]]은 [[프로이센 왕국]]이 단독으로 다른 [[독일 제국/구성 제후국|구성국]]들을 압도하고, 제국 전체에 적용되는 [[헌법]]이 존재했으며, 대부분의 구성국 군대가 [[독일 제국군]]으로 통합되었기에 통일성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말이 하나의 나라지 여러 독립국들의 집합에 불과했던 [[신성 로마 제국]][* 처음부터 이렇게 따로 놀던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선거군주제|선출직]]이었던) [[신성 로마 황제|제위]]를 독점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30년 전쟁]]에서 패하여 [[제후]]들이 사실상 독립국 군주가 되면서, 말기에는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나라]]가 되고 말았다.]이나 그 이후의 [[라인 동맹]][*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 집합에 불과했기에,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자 급속도로 결속력이 약해져서 해체되었다.], [[독일 연방]][* 이름과는 달리 하나의 [[연방국가]]가 아닌 여러 독립국들의 집합에 불과했고, 의장국인 [[오스트리아 제국]]이 2인자인 [[프로이센 왕국]]과의 [[보오전쟁|전쟁]]에서 패하여 연방에서 축출되면서 해체되었다.], [[북독일 연방]][* 프로이센 왕국이 단독으로 다른 구성국들을 압도했기에 독일 연방에 비하면 결속력이 강했으나, 아직 완전한 연방국가라기 보다는 [[국가연합]]에서 연방국가로 발전하는 과도기에 가까웠다.] 시절과 달리, 독일 제국에서는 [[카이저|황제]]가 곧 명실상부한 독일 전체의 주권자이며, 개별 구성국들의 [[군주]]는 [[토호|지역 유지]]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독일 11월 혁명]]으로 인해 독일 황제 뿐 아니라 구성국 군주들도 모두 [[폐위]]되어, [[작위 요구자/유럽/독일|작위 요구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 [[아일랜드]] ==== 6세기부터 [[토라섬]]에서 토라 왕(Rí Thoraí)이 존재했으나 1990년대부터 재위했던 [[https://en.wikipedia.org/wiki/Patsy_Dan_Rodgers|팻시 댄 로저스]](Patsy Dan Rodgers)가 2018년에 서거한 뒤 현재까지 후계자가 나오지않아 공석이 된 채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 [[이탈리아 왕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바티칸 포로)] [[1870년]] [[이탈리아 왕국군]]이 [[로마]]에 진주하면서 [[교황령]]은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고 [[이탈리아 통일]]이 완수되었다. 이탈리아 왕국 치하에서 [[교황]]은 [[바티칸(도시)|바티칸]]에서 제한적인 자치권을 행사하긴 했으나 국제 사회에서 외교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권군주에 불과했고, 통일 당시의 교황인 [[비오 9세]][*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이탈리아 총리|총리]] [[카밀로 카보우르]]를 [[파문]]하기까지 했는데, 국왕에 대한 파문은 당사자가 죽기 직전에 철회하긴 했다.]와 그 이후의 교황들은 스스로를 [[바티칸 포로]]라 칭하며 이탈리아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검은 귀족]]이라 불리는 로마의 전통 [[귀족]]들과 상당수의 [[가톨릭]] [[성직자]]들 역시 이에 동조하여 [[역사적 극우파]][* 정작 해당 파벌이 정식으로 결집하여 창당한 [[이탈리아 인민당(1919년)|이탈리아 인민당]]과 그 후신인 [[기독교민주당(이탈리아)|기독교민주당]]은 [[이탈리아/정치|이탈리아 정계]]에서 [[중도주의|중도]] 포지션을 차지하게 되었다.]라는 파벌을 이루어 이탈리아 왕국에 저항했기에,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청]]의 험악한 관계가 장기간 지속되었는데, [[1929년]]에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하여 [[바티칸 시국]]을 수립한다는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교황은 비주권군주에서 벗어나 다시 주권국가의 [[군주]]가 되었다. ==== [[일본 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일본]]은 [[류큐 왕국|류큐]][* 공식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에도 시대]]부터 [[사쓰마 번]]의 간접 지배를 받는 사실상 [[속국]]이었다.]를 [[1872년]]에 정식 영토로 합병하여 [[류큐 번]]으로 강등하는 제1차 류큐 처분을 감행했다. 이후 [[류큐/역대 국왕|류큐 국왕]]이었던 [[쇼타이]]는 류큐 번왕이라는 비주권군주로서의 지위는 인정받았으나, [[1879년]]에 제2차 류큐 처분이 일어나 [[오키나와현]]이 설치되면서 [[도쿄]]로 압송되어 [[후작]]으로 강등되었고, 이로써 비주권군주 지위마저 잃고 [[화족|일본의 일개 귀족]]으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1910년]]에 [[대한제국]][[경술국치|이 일본에 합병되었는데]], 대한제국은 류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오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와 광대한 영토, 많은 인구[* [[일본 열도|일본 본토]]나 [[청나라]]에 비하면 영토가 작고 인구도 적었으나, 이전에 일본이 합병했던 류큐, [[가라후토]]([[사할린]] 남부), [[대만일치시기|대만]] 등에 비해서는 훨씬 넓고 인구도 많았다.]를 가진 나라였기에, [[대한제국 황제]]를 [[이왕]]이라는 비주권군주로 강등시킨 후, [[1947년]]에 자국에서 [[일본 황실|황족]]을 제외한 특권 계급이 폐지될 때까지 비주권군주제를 존속시켰으며, [[대한제국 황실|대한제국의 황족들]] 역시 [[일본 황실|일본 황족]]보다는 낮지만 [[화족]]보다는 높은 [[왕공족]] 신분을 부여받아 특권과 재산[* 이왕을 비롯한 왕공족의 재산은 [[이왕직]]이라는 [[조선총독부]] 산하 기관이 관리했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편 [[일본 제국|일제]]가 만든 왕공족과는 별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임시 헌장|헌장]]에는 [[대한제국 황실|구 황실]]의 우대를 명시한 조항이 있었다. 이는 [[1910년대]]까지는 남아있던 [[왕당파|복벽파]]의 영향이다.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보니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대한제국으로의 회귀]]가 아닌, [[대한민국|공화정 체제]] 하에서 [[대한제국 황실|구 황실]]에 대한 우대만 인정받았다. 복벽파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이유에는 구 황족들 본인들의 태도가 원인이 되었다. 아직 복벽파의 영향력이 있던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고종(대한제국)|고종]]과 [[의친왕]] 등 황족의 해외 망명 시도가 있었다. 아직 황실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남아 있던 시기라 망명에 성공한다면 독립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일제의 저지로 실패했다. 이후 고종이 사망한 후에는 [[대한제국 황실]]이 [[한국 독립운동|독립운동]]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일본 제국|일제]]가 부여한 왕공족 신분에 안주했다. 구 황족의 태도에 민중들은 회의감을 느꼈으며, 이는 [[8.15 해방|해방]] 이후에는 [[계급투쟁]]을 추구하는 [[좌익]]은 물론이고 [[중도주의|중도파]]와 [[우익]]마저 대다수가 [[공화정]]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이승만 정부]]는 황실을 전혀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냉대했다.[* 다만 이승만의 구 황실에 대한 냉대는 황실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대통령이된 자신의 지위를 황족이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일절 지원을 하지않다보니 국내에 남은 황족 의친왕은 영양실조로 죽었고,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를 불허하여 일본에서 궁핍한 생활을 지낸다. 결국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승인하면서 환국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영친왕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서 돌아왔다. 덕혜옹주는 [[조현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정치|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은 이렇다할 정치적인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복벽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가끔 언론에 보도될 때 가십거리로 치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 [[중화민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청나라 소조정)] [[1912년]]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청나라]]는 멸망했다. [[중화민국 임시정부]]는 청을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청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북양군벌|북양대신]] [[위안스카이]]와의 협상을 통해 [[민국]]을 수립했기에,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를 [[청나라 소조정|외국의 군주로 우대하여 자금성 내에서 황제 노릇을 계속하게 하는 합의를 해야 했다.]] 이와 같은 [[아이신기오로|청 황실]]에 대한 [[중화민국 임시정부|민국]] [[중화민국 북양정부|정부]]의 우대는 [[홍헌제제|위안스카이의 칭제 시도]]나 [[장훈복벽|복벽파의 일시적인 제정복고 쿠데타]] 등의 사건사고를 겪으면서도 지속되었지만, [[1924년]] [[북경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공화주의|공화파]] [[서북군벌|군벌]] [[펑위샹]]에 의해 선통제가 [[자금성]]에서 [[핍궁사건|축출]]당하면서 폐지되었다. 이후 선통제는 [[일본 제국|일본]] [[관동군]]에 [[한간|협력]]하여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의 [[황제]]가 되는 실책을 저질렀고, 비록 처형은 면했다고 하지만 완전한 민간인으로 강등되어 비주권군주제의 형식으로나마 [[왕정복고|제정복고]]가 실현될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 [[튀르키예]]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압뒬메지트 2세)] [[1922년]]에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킨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정치적 권위를 가진 [[파디샤|황제]]는 폐지했으나, [[이슬람]] 세계 전체의 수장이라는 종교적 권위를 가진 [[칼리파]]는 존치했다. 그래서 [[망국의 군주|마지막 황제]] [[메흐메트 6세]]의 사촌동생이자 후계자였던 [[압뒬메지트 2세]]가 칼리파로 즉위하여 [[튀르키예 공화국]] 정부와 공존하며 비주권군주 역할을 했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집권여당인 [[공화인민당]] 내에서 [[급진주의|급진적인]] [[정교분리]]를 추구하는 [[라이시테|강경 세속주의]] 세력은 아무리 정치적 권한을 박탈당했다지만 칼리파제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칼리파에게 공화국 정부가 지급하는 [[예산]][[세금도둑|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해외 이슬람 단체들이 칼리파에게 충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튀르키예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24년]]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에서 칼리파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의결함으로써, 튀르키예의 비주권군주제는 짧은 존속기간을 마감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압뒬메지트 2세는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로 [[망명]]하여 [[1944년]]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사망했고, 오스만 황족들에 대한 추방령은 [[아타튀르크]]가 사망하고 36년이 지난 [[1974년]]에 해제되었는데, 영구귀국은 [[2004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프랑스 식민제국]] 치하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응우옌 왕조|베트남]][* 북부([[프랑스령 통킹|통킹]])과 중부([[프랑스령 안남|안남]]) 한정이며, 남부([[코친차이나]])는 프랑스의 직할령이었다.], [[프랑스령 라오스|라오스]], [[프랑스령 캄보디아|캄보디아]]의 현지인 [[군주]]들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비주권군주로 군림하게 하고, 실권은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총독]]이 행사하는 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후에도 [[일본 제국]]과 [[비시 프랑스]]의 암묵적 합의를 통해 유지되다가,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총독을 비롯한 현지 [[프랑스인]]들을 감금하고 [[베트남 제국]]을 비롯한 여러 괴뢰국을 수립하면서 해체되었다. 종전 이후 인도차이나 연방의 식민지가 각자 독립함에 따라 각국 군주들의 운명 역시 갈렸다. [[응우옌 왕조|베트남]] [[황제]] [[바오다이]]가 [[베트남국|남부에서 프랑스의 괴뢰 군주 노릇을 하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군]]이 철군하자 [[응오딘지엠]]에 의해 [[폐위]]되어 [[망명]]하고, [[라오스 왕국|라오스 국왕은 독립국 군주가 되었으나]] [[파테트 라오|공산 반군]]과의 [[라오스 내전|내전]]에서 패하여 왕정이 폐지되었다. 반면, [[캄보디아 국왕]]은 비록 [[크메르 공화국|왕정이 폐지]]된 이후 여러 우려곡절을 겪었으나 현재는 [[왕정복고]]되어 자국의 [[군주]]로 군림하고 있다. ==== [[피지]] ==== [[1987년 피지 쿠데타|피지 공화국 성립]] 이후에는 이전까지 [[피지 대추장]]을 겸임했던 [[영국 국왕]]을 피지의 비주권 군주로 유지하다 2012년에 추장 대평의회가 폐지되면서 피지 대추장 직위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 애매한 경우 == 현대 일본의 [[천황]]은 많은 내외국인들 사이에서 일본의 [[군주]]로 여겨지지만 정작 [[일본국 헌법]]에는 천황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만 규정하고 있으며 그 어디에도 국가원수라는 조항이 없고 주권이 일본 국민들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점만 본다면 천황을 주권자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법률 공포와 [[일본 총리|내각총리대신]] 임명, [[중의원 해산]] 등 여러 국사행위가 (비록 형식상이지만) 천황의 명의로 행해지기 때문에,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른 군주와의 차이점은 이러한 국사행위를 명목으로라도 자의적으로 수행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해뒀다는 점이다. 모든 국사행위는 내각의 조언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 책임도 내각이 진다는 규정이 있는데 책임을 지는 쪽이 권한도 갖고 있기 때문. 19세기 [[미국]]에서는 [[노턴 1세]]라고 황제를 자칭한 인물이 있었고 그가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황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에서의 존중일 뿐 공식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주권군주제의 사례라고 볼 수는 없다. [[분류:비주권군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