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회원수정)] [include(틀:역대 미국 대통령)]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 #0d164a 20%, #0d164a 80%, #0D1635)" {{{#ffc224 ''' 빌 클린턴 관련 틀 '''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타임지 올해의 인물/1990년대)] ---- [include(틀:디스커버리 선정 위대한 미국인)]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 #0D164A 20%, #0D164A 80%, #0D1635)" '''[[미국 대통령|{{{#ffc224 미합중국 제42대 대통령}}}]][br]{{{#ffc224 {{{+1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br]William Jefferson Clinton}}}'''}}}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ill_Clinton.jpg|width=100%]]}}} || ||<|2> '''출생''' ||[[1946년]] [[8월 19일]] (78세) || ||[[미국]] [[아칸소|아칸소 주]] 호프 || ||<|2> '''재임기간''' ||제42대 [[미국 대통령|대통령]] || ||[[1993년]] [[1월 20일]] ~ [[2001년]] [[1월 20일]] || || '''서명'''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빌 클린턴 서명.svg|width=150]]}}} || || '''링크''' ||[[https://www.clintonfoundation.org/about/president-clinton|[[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0]]]] | [[https://twitter.com/billclinton|[[파일:트위터 아이콘.svg|width=20]]]] | [[https://www.facebook.com/billclinton|[[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0]]]]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부모''' ||친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1918년 출생, 1946년 사망.][br]양부 [[로저 클린턴#s-1|로저 클린턴 시니어]][* 1909년 출생, 1967년 사망.][br]어머니 버지니아 클린턴 켈리[* 1923년 출생, 1994년 사망.] || || '''형제자매''' ||이부동생 [[로저 클린턴#s-2|로저 클린턴 주니어]][* 1956년 출생.] || || '''배우자''' ||'''[[힐러리 클린턴]]'''[* 1947년 출생하여 1975년에 결혼했다.] || || '''자녀''' ||딸 [[첼시 클린턴]][* 1980년 출생.] || || '''학력''' ||핫스프링스 고등학교 {{{-2 (졸업)}}}[br][[조지타운 대학교]] {{{-2 ([[학사|B.A.]])}}}[br][[옥스퍼드 대학교]] {{{-2 (중퇴)}}}[br][[예일 대학교]] [[로스쿨|법학대학원]] {{{-2 ([[박사|J.D.]])}}}[* 지금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1년 선배였다.] || || '''병역''' ||[[징병제/미국#s-3|2-A]][*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을 당시, 현역 징집 대상이였으나 고향의 징집위원들이 유학이 끝날때까지 입영을 연기시켜주었다. 다음 해인 1969년 아칸소 대학교 법대에 입학해 [[ROTC]] 훈련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다시 한번 입영을 유예 받았으나, 클린턴은 아칸소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징집 규정이 바뀌면서 결국 징집 대상에서 벗어났다. 클린턴은 자신이 병역을 면제 받은것에 대해 우연의 결과라고 주장했으나, 클린턴의 병역 사항은 대선 당시에도 구설수에 올라 비판 받았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686797#home|#]]] || || '''종교''' ||[[개신교]] {{{-2 ([[침례회]])}}}[* 본래는 미국 [[남침례회]] 신자였으나 대통령 당선 이후 아내 [[힐러리 클린턴]]과 감리교 교회에 출석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8년 [[지미 카터]]와 함께 새로운 침례교단으로 옮겼다.[[https://en.wikipedia.org/wiki/New_Baptist_Covenant|#]]] || || '''신체''' ||188cm, 101kg[* 안 그래 보이지만, 실제로는 100kg가 살짝 넘는다. 다만 현재는 나이가 들어서 두자릿수 체형으로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188cm의 장신인걸 감안하면, BMI지수는 많이 높지 않다.] || || '''소속 정당''' ||[include(틀:민주당(미국))]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6196.t56cc6f4d.m1200.tif.pv.xbH42_m6pudq8e5aK.jpg|width=100%]]}}} || || {{{#ffc224 '''백악관 공식 초상화'''}}} || [목차] [clearfix]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5X-Xj5UdoT4, start=952)]}}} || || {{{#ffc224 '''제42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 || == 개요 == [[미국]]의 [[정치인]]. 제42대 [[미국 대통령|대통령]]을 지냈다. [[제2차 세계 대전|전후]] 세대 출신의 첫 번째 대통령이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시어도어 루스벨트]], [[존 F. 케네디]]에 이어 3번째로 젊은 46세의 나이에 대통령직에 취임한 인물이다.[* [[율리시스 S. 그랜트]]도 46세에 취임했으나 클린턴은 46세 5개월, 그랜트는 46세 10개월에 취임했기 때문에 클린턴이 더 일찍 취임한 것이다. 민주당의 후임 대통령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클린턴 대통령보다 1살 늦게 취임(47세)하고 퇴임(55세)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로 평가되는 [[1990년대]]를 이끈 대통령이며, 클린턴 대통령 재임 당시의 경제 호황은 [[닷컴 버블]]로 일컬어지는 거품 경제였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나, [[냉전]] 종료 이후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을 꽤나 안정적으로 통치했기에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가장 높은 퇴임 지지율'''[* 퇴임 당시(2001년 1월) 지지율은 무려 66%로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가장 높은 기록을 세우고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기록은 [[로널드 레이건]]이 1989년 1월에 기록한 63%. [[르윈스키 스캔들]]로 망신당한 것을 감안하면 믿기 힘든 수치이며, 만약 르윈스키 스캔들이 없었다면 훨씬 높은 수치가 가능했을 것이다.]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부인은 그 유명한 '''[[힐러리 클린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인이 승리했을 경우, 사상 최초의 부부 대통령 기록도 세울 뻔 했었다. 남편이 워낙 인기가 많은 정치인인지라.] == [[/생애|생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빌 클린턴/생애)] === [[빌 클린턴 행정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빌 클린턴 행정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이 당선되면서 구성된 행정부다. == 평가 == === 미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w_jones.png|width=100%]]|| || 빌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한 짤]]로 요약 || '''미국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이끈 대통령으로 클린턴 집권 당시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년간 대립하던 '''소련의 붕괴'''로 인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시기를 잘 탔다는 분석도 있다. [[닷컴버블]]을 목전에 두고 민간 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 그럼에도 적절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민간투자의 확대가 고용의 확대로 이어지게 만든 점은 큰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https://www.google.com/amp/s/www.vox.com/platform/amp/2016/4/14/11413352/clinton-economy-credit-90s|관련 기사]]] 그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래 60년만에 최초로 8년 임기를 마친 '''민주당''' 대통령이 되었다.[* 공화당에선 아이젠하워와 레이건을 이미 배출한 바가 있다. 재선 성공 자체야 닉슨 등이 있는데 사임 크리... 민주당의 경우는 트루먼은 루스벨트 사후 승계 재선, 존슨 역시 케네디 사후 승계 재선이며 카터는 단임에 그쳤다.] 또 후임자 [[조지 W. 부시]]의 실정으로 더욱더 클린턴의 업적이 고조되는 측면이 있다. 퇴임 8년 뒤 후임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의 당선, 재선과 함께 보수화되었던 미국 정치판의 축을 돌리는 대통령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아래에서 보듯 소수민족과 여성에게 친화적인 정책을 폈으며, 환경 정책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미군]]의 [[동성애]] 정책을 일신한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Don't ask, Don't tell)" 정책, 즉 [[DADT]]도 큰 성과 중 하나다.[* 다만 이후에 이 정책은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입 다물라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폐지된다. 물론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당시로서는 이것도 진일보한 거였지만...(그리고 동성애자들의 성향을 밝히지 말라는 것도 공화당과의 타협의 결과이기는 하다)] 로버트 라이시(노동부 장관)와 같은 젊은 관료와 로이드 벤슨(재무장관) 같은 경륜의 인물도 잘 등용했다. 사실 클린턴의 임기 자체는 대단히 번잡했다. 업적도 많았지만 눈에 띄는 실책도 많았으며, 칭송도 많았지만 비난과 잡음도 많았다. 1994년 중간선거 참패의 여파를 심하게 받아 1996년 대선애서의 압승에서도 상하원은 여전히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했기때몬에 클린턴의 결정적인 탄핵안을 비롯해 의회와 대법원에서도 그야말로 박빙의 표결들이 여러차례 연출되었다. 빌 클린턴은 공화당에게는 부패하고 교묘한 사기꾼으로, 민주당 진보파에게는 모호하고 보수친화적인 정치꾼으로 비난받았고,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제3의 대통령 당을 이끌려고 한다는 식의 규탄도 받았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믿기지 않을지 몰라도, 퇴임 당시 그는 그렇게 고평가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8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으니 그야말로 위기에 강하고 강운을 가진 사나이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임기를 통틀은 가장 큰 실책으로는 글래스-스티걸 법안(Glass-Steagall Act)으로도 불리는 1933년 은행법(Banking Act of 1933)을 폐지한 게 손꼽히는데,[* 1999년 11월 12일 그램-리치-브릴리법으로 개정. 이후 2010년 오바마에 의해 [[상업은행]]의 자기 매매는 금지되었는데 이것을 '새로운 글래스-스티걸 법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 대공황]]의 원인이기도 한 은행의 고위험 투자를 막는 법을 폐지함으로서 금융기업과 상업은행의 분리가 의미 없어지고 후임자 [[조지 W. 부시]] 시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금융위기]]의 경제난을 초래하는 데 기여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물론 빌 클린턴 혼자만의 작품이라기보다는 80년대 이래로 진행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미래의 화근을 알아채지 못하고 남들과 똑같이 훗날 미국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비극의 기반을 쌓아간 것은 사실이긴 하다. [[http://economicview.net/tag/%EA%B8%80%EB%9E%98%EC%8A%A4-%EC%8A%A4%ED%8B%B0%EA%B1%B8-%EB%B2%95/|# 자세한 내용]] 베이비 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베이비 부머들은 [[2차 세계 대전]] 승리 후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의 낙관주의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대단히 개인적으로 개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온갖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누릴 수 있던 것은 동세대의 성격과도 다르지 않다. ‘'''공화당원은 열심히 줄을 서고, 민주당원은 사랑에 빠진다(The Republicans fall in line, The Democrats fall in love)'''.’는 격언에 정확히 부합하는 대통령. === 한국 === ==== 부정적인 평가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08&aid=0000024140|<시사IN>, 1997년 말, 미국은 왜 한국을 집어삼키려 했나?]] 한국에서는 1993년 집권 초부터 쌀개방 문제로 농민들과 [[한총련]] 등 [[NL]] [[운동권]] 사이에서 비난을 받아 방한 반대 시위까지 터졌고, 1997년 [[IMF 사태]]로 미국식 구조조정을 강요한 원흉이자[* 이에 대해 아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이권다툼에서 한국이 희생양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0100099105001&editNo=16&printCount=1&publishDate=1999-09-01&officeId=00009&pageNo=5&printNo=10461&publishType=00010|아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의 대결]]] 한국 금융시장을 미국식 금융자본에 종속시켜 놓은 원흉이라 할 수 있으며, 1997년 미일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근거를 마련한 점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이 [[반미]] 강력 주장에 적극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769333_30717.html|미국.일본 방위협력지침 개정, 주변국들의 우려 높아져]]] 훗날 한국의 IMF 구제금융에 대해, 당시 IMF 총재로서 IMF 협상을 지휘했던 미셸 캉드쉬는 '''당시 조치가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 IMF조직 자체적으로 외환위기 처방이 가혹하다며 자기반성하기도 하였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2486246593033864&SCD=&DCD=A021.|IMF 거듭된 자기반성 - 외환위기 처방 가혹했다]] ==== 긍정적인 평가 ==== 다만 위의 주장처럼 빌 클린턴(행정부와 부통령 엘 고어)이 한국에게만 가혹한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1980년대 부터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산과, 냉전 종식으로 미국이 유일무이한 세계 초강대국이 되면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모든 국가에게서 불만이 터져나왔었다....--미국:불만 있으면 덤벼보던가---[* 같은 서방국가들 조차도 미국과 빌 클린턴 행정부의 고압적인 자세에 항의가 빗발쳤던 시기였다. 대표적인게 슈퍼 301조를 통해 무역시장 강제개방.] 그리고 IMF와 그 당시 총재였던 미셸 캉드쉬가 신자유주의 정책과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던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걸 빌 클린턴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애초에 외환관리를 개판으로 하고, 신용도와 국가재정이 거덜난 상태로 까지 가게한 [[문민정부]]가 1차적인 책임이 크다.[* 오히려 우리가 돈을 빌려준 IMF에게 감사해야하는 것이다. (외화)돈을 못줄 정도로 나라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는데(사실상 이정도면 파산상태로 봐야한다), 아직도 후진국 취급을 받았던 1990년대 한국에게 구제금융을 해준게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첨언하자면 이미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와 영국병 사례로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은 한계가 들어났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크게 성공하며 전세계적으로 좌파,우파정부 할거 없이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었다.[* 당장 유럽의 대표 좌파정치인 3인방이었던 토니 블레어,리오넬 조스팽,게르하르트 슈뢰더도 거의 1997년도 쯤에 같이 집권했는데, 이 3인방도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택해 민영화,노동시장 개혁,금융시장 개방 다 했다.] 그렇기에 IMF도 부의 불평등 문제는 둘째치고, 무너져가던 한국경제의 극약처방으로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강제로 주입시킨거지, 나라 말아먹으려고 한짓은 아니다.[* 국민의 정부야 관리체제로 들어간거니 억지로 따르긴 했지만, 그뒤 참여정부조차도 경제정책은 계속 신자유주의 정책을 택했다. 그래서 좌파들에게 "좌깜빡이 키고 우회전한다" 라는 비판이 나왔던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정책도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들이 터져나왔고[* '''부의 불평등 심화''', 민영화 정책 남발] 2007년 서브프라임 문제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이 신자유주의 이론도 한계점을 드러내며 지금은 사장되다시피 묻혀버렸다. 오히려 빌 클린턴은 외환위기 이전에 긴급차관을 대주어 한국을 도와줄려고 했었고,[* 이마저도 당시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와 재무장관이 극렬하게 반대하다 보니 무산됬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 없이 임기 내내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모두하고 잘 지낼려고 노력했었다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클린턴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제기한 것에 감사를 나타내고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김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대단한 승리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0/nwdesk/article/1863978_30735.html|김대통령 핵,미사일 등에 대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전화]]] === 국외 문제 === 클린턴 집권 당시 [[공산주의]]의 수장이자 초강대국 반열에 올라있던 [[소련]]이 붕괴되면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정책을 아무 무리없이 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클린턴의 대외정책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심지어 민주당 진보파에게는 "전쟁광"이라는 비판도 들었을 정도니... 국외에서는 1차 [[북핵문제]]와 관련된 인상 때문에 한국에서는 온건파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지만 [[코소보]] 공습도 클린턴의 당시 업적(?) 중 하나다. 특히 코소보 공습 때 미군을 파견하여 당시 코소보 분리 독립에 반대했던 [[유고슬라비아]]를 찍소리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2008년 코소보는 결국 독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코소보는 [[이슬람]] 신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자국을 보호해 준 미국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하며, 특히 코소보 공습을 단행한 클린턴에 대해서는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딴 도로를 만들 정도로 영웅시하고 있다. 후임 아들 부시 역시 코소보 독립을 적극 지지했기에 클린턴만은 못하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코소보 공습을 결단한 시점이 자신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코너에 몰려있고, 의회가 탄핵을 착착 준비 중이던 때라는 것.''' 이런 상황이 영화 'Wag the Dog'에서 비꼬이기도 했다.] 더불어1998년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재하러 간다고 [[뉴델리]]에 방문했으나 당시 [[인도 총리]]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Atal Bihari Vajpayee, 혹은 Bajpai)에게 문전박대(...)를 당했고[* 이때 파키스탄은 핵실험 이후 카슈미르의 인도 지역인 타이거 힐스를 공격하여 빼앗으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이 발생했다. 나중에 인도군의 반격으로 파키스탄은 패하여 타이거 힐스를 빼앗기고 후퇴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인도 총리따위를 먼저 와서 기다리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개발 참조. 물론 바지파이 총리는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주었고 회담은 별탈없이 끝났다.] 미국이 감싸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중동 지역에서도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이 때문에 클린턴은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목표가 되기도 했다. 클린턴 스스로도 중동 평화에 관심이 많아 당선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는 등 성과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극단파 유대인에게 암살되고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에서 미국의 아랍 공격에 항의하는 민중폭동이 이어지면서 결국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도리어 실제적 업적은 차라리 북핵 문제와 관련된 제재의 정당성 확보 및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문제 해결 측면에 있다.[* 클린턴은 자신이 [[아일랜드계 미국인|아일랜드계 조상이 있어서]] [[아일랜드]] 대선에, 또 "미국이 지난 1803년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땅의 일부인 아칸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프랑스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라고 농담했다("과거 [[프랑스 식민제국]] 영토였던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든 프랑스로 이사를 가서 6개월간의 거주 요건을 충족하고,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으면 프랑스 대통령 선거 입후보가 가능하"기 때문[[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20927000800|#]]). 물론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지만, 클린턴이 아일랜드에 쏟은 관심의 근거를 엿볼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youtube(SXrUXcxz69M)] [[일본]]에 대한 무례하고 압박적인 태도로 일본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98년 일본 방문시 일본 천황 [[아키히토]]가 클린턴을 영어를 쓰며 공손히 영접했는데 일본과 국제사회를 지나치게 압박하고 일본 천황에게도 영어를 강요하여 국제적으로 영어를 전세계에 강요하는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에 맞물려 클린턴 집권기 시절인 1997년부터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시작되었다.] 훗날 클린턴은 2000년 [[오키나와]] 방문시 오키나와 평화의 비 앞에서 뒷짐을 지고 참배를 했다.[youtube(dXO1RZHaoq4)][* 1:12초에 나온다.] == 르윈스키 스캔들 == ||
[youtube(zwIi1zxtEiQ)] || ||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응답하라! 1990's 中 || || [[파일:external/bcc77fac7c768747046197f649f39a6c593a5f0d1d869ce4304908a4ce3d7dfc.jpg|width=100%]] || || [[내연녀]] 모니카 르윈스키 ||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부터 여자 문제로 트러블이 매우 많았다. 1990년 9월 중순, 주지사 연임을 시도하던 클린턴을 아칸소 주 개발재정국에서 해고된 직원 래리 콜린스가 "클린턴이 아칸소 주의 재정을 유용하여 다섯 명의 여자와 간통을 했다."라고 폭로한 것이다. '''클린턴은 아무 것도 모르고 출근하다가 AP통신의 기자 빌 시먼스에게 그 소식을 전해듣고 기겁했지만,''' 매우 침착하게 시먼스 기자에게 콜린스가 지목한 여자들과 인터뷰할 것을 요청했고 시먼스는 '''다섯 명 전부에게서 그런 적이 없다는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공화당에서 이를 놓칠 리 없었고 공화당 주지사 후보 셰필드 넬슨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클린턴을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비난했지만, 여자들이 자꾸 이러면 고소하겠다고 반발했고 콜린스의 증언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터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외에도 클린턴이 주지자로 재직하던 시절 호텔에서 그에게 섹스를 강요당했다고 주장한 폴라 존스, 12년간 클린턴과 혼외정사를 했다고 주장한 제니퍼 플라워스, [[성매매]]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숨겨진 아들이 있다는 등의 스캔들이 있었다. 제일 유명한 스캔들은 당시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1973 ~)와의 불륜 스캔들, 속칭 '''지퍼게이트'''이다. 모니카는 펜타곤의 공보직으로 근무하는 동료 린다 트립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클린턴과의 관계를 허물없이 털어놨는데, 린다가 이 내용을 녹음하고 언론에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 르윈스키의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트립은 "애국자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주장했다. 린다 트립은 클린턴 정부 교체와 동시에 펜타곤에서 해임을 당했고, 2004년 독일 출신의 건축가와 결혼했다. 그녀는 워싱턴 D.C. 교외에서 크리스마스 용품 판매점을 경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2020년 4월 8일 트립은 췌장암으로 사망했고 트립이 위독하단 것을 안 르윈스키는 자신의 트위터에 "과거와 상관없이 트립이 회복하길 바란다. 그의 가족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할 수 없다"란 글을 남겼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간통죄]]의 존재 여부와 이에 대한 태도가 다른데, 대도시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뉴욕]]을 비롯한 동북부지역이나 [[LA]]를 비롯한 서부지역 등에서는 정치인들의 성문제에 있어 좀 관대한 반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지역이나 [[러스트 벨트]] 지역 등에서는 정치인의 성문제에 있어서 민감하게 대응한다. 게다가 대선에서 클린턴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공화당(미국)|공화당]] 지지 기반이기도 한 [[아칸소]]와 [[루이지애나]]에선 특히 난리가 났었고,[* 이 사건의 여파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어는 [[미주리]], [[아칸소]], 루이지애나, [[플로리다]](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오하이오]], [[뉴햄프셔]], [[애리조나]], [[네바다]], [[테네시]],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 등 무려 11개 주를 공화당에게 내주며 패배했다.] 결정적으로 클린턴이 법정에서 위증 및 위증교사를 하면서 케네스 스타 특별 검사에게 털리고, 하원에서 탄핵 의결이 통과되어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되었고 연방대법원에서 '더 이상 우리 법원에서는 변호사로 활동할 수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사법체계에서 법정에서 작정하고 한 위증죄는 엄청난 죄다. 미국에서 다른 대통령이 관여한 큰 사건인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차드 닉슨을 사임까지 몰고 간 것도 '워터게이트 자체'보다는, 이에 관련해 닉슨이 거짓말을 한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 거기다 시가를 좋아하는 클린턴이 르윈스키의 [[음문]]에 [[시가(담배)|시가]]를 보관했던 [[http://news.joins.com/article/3697903|일화]]를 비롯한 성적인 보도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TV 생중계 등을 통해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자 여론이 어느 정도 클린턴에게 동정적으로 돌아서고, 중대한 사건이 아님에도 거짓말 한 번 잘못 했다고 탄핵은 좀 지나치다는 여론이 다수가 되었고, 이러한 여론이 반영된 [[199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예상외로 민주당이 선방했다. 오히려 공화당이 하원의석이 감소하는 등 벙찌는 상황이 되어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대통령 자리는 지켰다. 물론 이 시기에 아내인 힐러리와의 관계는 당연히 [[막장]]으로 치달았다. 이혼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 힐러리의 회고에 따르면 '''"그 때 남편을 반갑게 맞이했던 가족은 우리 집 개밖에 없었다."'''라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빌은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한다. 바람을 피운 주제에 변명할 말도 없겠지만 말이다.사실 클린턴은 첫 대선 당내 경선에서도 이미 섹스 스캔들에 한번 휘말렸으나, 아내 힐러리의 강공으로 간신히 극복한 상황이었다. 훗날 힐러리는 한 인터뷰에서 남편이 밉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다만 이후에 화해를 제대로 하긴 한 듯하다. 당시 백악관 직원들이 남긴 회고록 등을 보면 직원들이 침실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노크를 해야 민망한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빌과 힐러리가 매우 격렬하게 섹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두번이나 바람을 피운 자신의 남편을 대변해준 덕분에 대중들에게 호감을 쌓아, 상원의원에 진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후담도 있다. 물론 힐러리도 백악관 내에 들어서면 바로 태도가 돌변해서 한성깔 하는 성질이 어디 가지않고, 물건을 마구 던져대는 바람에 그렇게 던진 물건에 빌이 맞아 다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6bc4ebfd9c23af83170edc641e2c2f6ccc1594cc7001ec465a50a08d84dea2da.jpg]]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창 곤경에 빠졌던 클린턴을 바라보는 아내 힐러리의 모습. 이 사진은 1999년 [[퓰리처상]] 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https://www.washingtonpost.com/wp-srv/politics/special/clinton/icreport/icreport.htm|판결문]]이 인터넷에 퍼져 부모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이 때 미국민들 사이에서는 클린턴의 변명을 비꼬아서 '''"[[오럴섹스]](구강성교)는 섹스가 아니다."'''[* 클린턴이 위증혐의를 변호하려고 본인이 법정에서 한 성교(Sexual Relationship)라는 말에 구강성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 변론에서 나온 말이다.]라는 농담이 생겼고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묘사한 클린턴의 '부적절한 관계'[* 원문은 'Indeed, I did have a relationship with Ms. Lewinsky that was not appropriate.']라는 표현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다. 특히 일본의 정치인들 사이에 대유행이 되어 뭔가 문제가 생기면 갖다붙이는 사과 표현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고위층의 변명으로 절찬리. 우스갯소리로 미국 대통령의 사무실이라 볼 수 있는 오벌 오피스(Oval Office)가 '''오럴 오피스'''라고 불렸다. [[https://ko.wikisource.org/wiki/%EB%B2%88%EC%97%AD:%ED%81%B4%EB%A6%B0%ED%84%B4_%EB%A5%B4%EC%9C%88%EC%8A%A4%ED%82%A4_%EC%82%AC%EA%B3%BC%EB%AC%B8|르윈스키 사건에 대한 빌 클린턴의 대국민 사과문]]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의 시선에서는 [[사과문#4과문|온통 변명뿐인데다]] 결론은 '''이건 우리 가족의 일이니까 댁들은 신경 좀 꺼 달라'''는 내로남불 마인드로 읽힐 수 있어서 지탄을 받기 쉬울지 모르나, 다시 말하지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불륜 자체'가 아니라 '클린턴의 위증' 여부였다. 구강성교가 '성적 접촉'(Sexual relation)이 아니라는 대답을 하고 클린턴이 자기는 위증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검사가 질문을 하면서 성적 접촉의 범위를 한정했기 때문이었다. 검사는 성기나 항문, 유방 등에 접촉하는 것을 성적 접촉으로 규정하고 질문을 했다. 클린턴은 이 질문을 자신이 르윈스키의 그 부위에 접촉을 했는지 묻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그래서 자신의 입장에서 성적 접촉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다. 결국,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정말 [[오럴섹스]]를 받기만 했는지는 당사자 둘과 신만이 알겠지만, 그동안 클린턴이 보여주었던 교묘한 화술로 보아 '성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이 발언이 국민들을 속인 것은 맞지만 탄핵할 만큼 중대한 위증은 아니라는 여론이 일었고, 결국 탄핵안은 부결된다. 하지만 호도하기 위한 증언(misleading testimony)으로 판결나서 이것이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을 물고 변호자 자격이 정지되었다. 한편 내연녀 모니카 르윈스키는 이런 미국사에 길이 남을 전대미문의 추문의 당사자가 되어, 세계적으로 얼굴과 개인정보가 팔리는 건 물론 매우 적나라한 사생활까지 뉴스를 통해 까발려졌다. 이에 기자, 파파라치, 그리고 변태들에게 온가족이 쫓기며 몇년간 이사를 다니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사건 이후로도 르윈스키는 온갖 코미디언들과 래퍼들이 자주 인용하는 농담 소재가 되었고, 특히나 [[제이 레노]]의 르윈스키 괴롭히기는 그 수준이 지독했다.[* [[존 올리버]]는 자신 또한 그런 흐름에 편승해 여성혐오적 농담을 한 것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뜻으로 모니카 르윈스키를 쇼로 초청하여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7Eh6JTKIg|#]]] 지금까지도 미국 편의점에서 흔히 팔리는 3류 연예계 잡지에 그녀의 이름이 간간히 보이는 정도. 세월이 흘러 지퍼게이트가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학계가 진중히 평가하는 사건이 되고 또한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더 개선된 현재는 "아무리 쌍방간 합의해서 벌인 불륜이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22살짜리 인턴을 50대의 미국 대통령이나 되는 양반이 꼬셔서 같이 놀아난 상황이라면 그 대통령의 죄가 훨씬 중하지 않냐"는 의견도 나온다.[* [[ABC(미국)|ABC]]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 [[ABC 월드 뉴스 투나잇]]의 앵커 중 한명인 [[피터 제닝스]]는 르윈스키보단 클린턴에게 초점을 맞춰 질문했다. 대통령들 중 도덕적인 순위로 41위 아니냐는 식으로.] 또한 전세계적 조롱거리가 되면서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망신과 수모에 대한 동정론이 이는 분위기. 르윈스키는 2014년에 [[http://www.todayus.com/?p=84487&share=digg|회고록]]을 냈으며, [[TED]]에서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온라인 상 조리돌림의 폐해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https://www.ted.com/talks/monica_lewinsky_the_price_of_shame|#]] 트위터에서 "자기가 받아본 커리어 조언 중에 최악이였던 것이 뭐냐"라는 트윗에 '''"백악관에서 인턴하면 이력서에 쓰기 좋은 스펙이 될 거야'라는 조언"'''이라고 답글하며 농담하는 등, 현재는 해당 사건에 대해 꽤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https://twitter.com/monicalewinsky/status/1150348061442551808|#]] 당시 늘그막이던 전설적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는 클린턴의 성추문을 두고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디마지오는 사랑하던 전 아내 [[마릴린 먼로]]가 [[존 F. 케네디]]와의 성추문 때문에 죽었다고 여겼기에 높으신 분들의 성추문을 혐오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마지오는 클린턴도 평생을 증오하던 케네디와 맞먹는 인물이라고 여겼다. 잘못한 것이 클린턴 본인이니 할 말도 없긴 하다. 그런데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에게 매일 [[야구배트]]로 폭행을 했던 [[인간 쓰레기]]나 다름없는 놈이라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릴린 먼로가 이혼장을 내밀면서 했던 말이 "그가 나를 때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클린턴은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예를 들어 [[도신 시리즈]]의 왕장 감독이 연출한 <천왕지왕2000>에서 악당 페라리(법람리)를 소개하며 "클린턴보다 거짓말을 더 잘 하는 놈"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2021년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시즌3에서 이 사건을 드라마화하여 [[https://youtu.be/3Z7I9qMd0KE|방영]]하기도 했다. == 선거 이력 == || {{{#FFF 연도}}} || {{{#FFF 선거 종류}}} || {{{#FFF 선거구}}} || {{{#FFF 소속 정당}}} || {{{#FFF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 {{{#FFF 당선 여부}}} || {{{#FFF 비고}}} || || 1974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아칸소]] 3구 ||<|10> [include(틀:민주당(미국))] || 83,030 (48.17%) || 낙선 (2위) || || || 1976 || 주 법무장관 선거 ||<|7> [[아칸소]] || '''-''' || '''당선''' || '''무투표 당선''' || || 1978 || 미국 주지사 선거 || '''335,101 (63.36%)''' || '''당선 (1위)''' || '''초선''' || || 1980 || 미국 주지사 선거 || 403,241 (48.07%) || 낙선(2위) || || || 1982 || 미국 주지사 선거 || '''431,855 (54.71%)''' ||<|6> '''당선 (1위)''' || '''재선''' || || 1984 || 미국 주지사 선거 || '''554,561 (62.55%)''' || '''3선''' || || 1986 || 미국 주지사 선거 || '''439,882 (63.89%)''' || '''4선'''[* 자신이 개정한 주법에 의해 1986년부터는 아칸소 주지사 임기가 4년이 되었다.] || || 1990 || 미국 주지사 선거 || '''400,386 (57.49%)''' || '''5선''' || || 1992 ||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미국 대통령 선거]] ||<|2> [[미합중국]] || '''44,909,889 (43.01%, 370명)''' || '''초선''' || || 1996 ||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미국 대통령 선거]] || '''47,401,185 (49.24%, 379명)''' || '''재선''' || == 어록 == >'''“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클린턴 캠프가 사용한 캐치 프레이즈. [[조지 H. W.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고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결정적인 구호로 꼽힌다. >'''“A lot of your life is shaped by the opportunities you turn down as much as those you take up.”'''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선택하는 기회들 만큼이나 거절하는 기회들에 의해 정해지게 됩니다. >---- >자서전 에서. >'''“I did not have sexual relations with that woman, Miss Lewinsky.”''' >저는 그 여자, 르윈스키양과 성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을 부인하며 한 유명한 말. 이 말은 미국 정치 풍자 유머에서 많이 쓰인다. 스캔들을 부인하기 위해 단호하게 부인했지만, [[스트라이샌드 효과|정작 이 말 때문에 클린턴에 대한 의심을 키웠다는 의견도 있다.]] >'''“It’s arithmetic!”''' >그건 [[산수]]입니다! >---- >2012년 DNC에서 하나의 전설이 된 지지 연설[* 참고로 이 연설은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에게 아슬아슬하게 위협받고 있던 오바마의 재선을 굳혀준 결정적인 요인으로 간주된다. 오바마 2기는 사실상 빌 클린턴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민주당원 사이에선 여겨진다.]의 상징. [[https://www.youtube.com/watch?v=i5knEXDsrL4|풀영상. 해당 발언은 41:40부터]] [[https://abcnews.go.com/Politics/OTUS/transcript-bill-clintons-democratic-convention-speech/story?id=17164662|# 대본]][* 여담으로 대본을 보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오바마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경제 수치로 단박에 설명해버렸다.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전직 대통령--] >“I've lived a long, full, blessed life. It really took off when I met and fell in love with [[힐러리 클린턴|'''that girl''']].” >저는 길고 꽉 찬, 축복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시작된 겁니다. >---- >2016년 DNC에서 [[힐러리 클린턴|부인]]의 대선 후보 지명을 축복, 지지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8RchVnIn_-Y|# 연설 영상]][* 연설 내용은 학교에서 부인을 처음 만나서 현재에까지 이르는 삶의 내용이 담겨 있다. 위의 문장은 영상에서 39분 지점일 때 나온다.] == 등장 매체 == [[파일:external/www.etobang.com/a87c79d74fabc0e896ca2c09da8d14da_aihKxIUVf5ES6a3bkLOl1qRKMCyNz.jpg]] [[비비스와 버트헤드]] 극장판인 미국을 먹어버리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 그렇게 멍청하거나 비꼬지 않지만 이 두 사고뭉치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칭찬해준다. 사실 이 두 녀석이 온갖 사고를 저지르면서도 도움을 준 게 있다보니. [[듀크 뉴켐 3D]] 추가판 레벨에 우주괴물에게 잡혀 의자에 묶여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에미넴]]이 2013년에 발표한 노래 'Rap God'에서 로윈스키 스캔들을 가지고 강도 높은 디스를 했다. >Got a fat knot from that rap profit >Made a living and a killing off it >'''Ever since Bill Clinton was still in office''' >'''With Monica Lewinsky feeling on his nut-sack'''[* still in office와 feeling on his가 라임이다. killing off it도 마찬가지로 라임.] > >랩으로 얻은 돈뭉치가 꽤나 빵빵해서. 그걸로 먹고 살고 죽여보기도 했지. 빌 클린턴이 집무실에서 르윈스키랑 거시기 느낌을 즐기고 있을 때부터 말야. [[사우스 파크]]에서 르윈스키와 시가 일화를 써먹는다. [[프론트 미션]]에 등장하는 클린턴형은 이 대통령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파생기종인 뷰렌은 미국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에서 따 왔다. [[핑키와 브레인]] 에서도 조연으로 등장. [[애니매니악스]]에서도 오프닝에 등장한다. [[동물농장(소설)#영화|동물농장]] 1990년대판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마지막에 폐허가 된 농장에 새주인이 오는데 생김새가 클린턴 판박이다. [[왝 더 독]]의 스토리는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따왔다. [[아이언맨]] 애니메이션의 경우 방영시기가 1994년이다 보니 당시 재임 대통령이자 주요 인물로 자주 등장한다.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 프라이머리 컬러스에서는 존 트라볼타가 클린턴 역할로 나온다. 개봉 당시 클린턴이 아직 현역이던 때라 미묘했는지 등장인물들 전부 가명을 쓰고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실화 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Fate/Zero]]에서는 [[라이더(4차)|라이더]]의 세계정복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적으로 묘사되었다. [[닉슨(영화)|닉슨]]에서 닉슨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연설할때 나온다. [[심슨 가족]] [[심슨 가족/에피소드 목록|시즌8 호러 에피소드]]에 [[밥 돌]] 의원과 함께 등장한다. 방영 일자는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1주일 앞둔 1996년 10월 27일.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미국에 숨어든 [[캉 & 코도스]]에게 밥과 함께 납치되었다.[* 캉 & 코도스가 지구의 대빵이 누구냐고 묻고 호머는 미국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라고 판단, 빌 클린턴을 언급했다. 그런데 곧 선거가 있어서 조금 있으면 그가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며,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밥 돌 의원도 언급한 덕분에 둘 다 납치되었다.] 이후 [[호머 심슨]]에게 구출되자 밥 돌에게 우리가 힘을 합쳐 미국을 더욱 빛내도록 하자며 현실 미국에서도 유례없는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호머의 실수로 둘 다 사고로 죽어버리고, 빌과 밥으로 변장했던 캉 & 코도스는 지구를 정복하고 만다. [[FX(케이블 방송)|FX]]에서 방영한 범죄 시리즈물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의 세번째 시즌, '탄핵: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는 르윈스키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는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 그 이후 빌 클린턴의 정치행보와 수난을 매우 철저한 고증과 세세함으로 다루고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필시 시청해야 할 드라마.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전격! 돼지발굽 대작전]]에서는 성우 [[오세홍]]이 연기한다. [[마우스(크레용 신짱)|마우스]]가 [[신짱구]] 일행에게 가상의 비디오로 보여준, [[부리부리자에몽]]이 전 세계에 바이러스 공격 및 바이러스를 통한 [[핵공격]]을 하는 과정에서 등장. 부리부리자에몽의 바이러스를 통한 [[미국]]의 핵기지를 통한 [[핵공격]]을 긴급히 저지하려다 부리부리자에몽의 [[방구]] 공격에 의해 호되게 당하여 쓰러져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 여담 == *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1993년부터 2001년까지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20년대]]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기까지의 두 시기와 더불어,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경제적 팽창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닷컴버블]]로 인했던 것으로,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퇴임한 지 두 달 만에 미국 경제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허나 클린턴의 집권기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전대의 황금기들이 제국주의 서유럽 국가들 혹은 소련과 세계 패권의 파이를 나눠먹었다면, 이 시기는 오로지 미국이 홀로 완벽하게 [[팍스 아메리카나|세계 패권을 주무를 수 있었던 독보적인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현재의 미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90년대의 황금기는 클린턴 퇴임 이후 조금씩 하락세였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호황은 후임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6년까지 길게 이어졌으며 이는 부시 행정부인 2008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깨지게 된다. * 상당한 [[동안]]으로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와 동갑이다(생일은 반대로 클린턴이 가장 늦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역 시절엔 정적이었던 조지 W. 부시랑 지금은 절친하게 지낸다. 둘이 리더십 프로젝트로 같이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행사에도 같이 나오고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부시가 클린턴을 지목할 정도로 친한 사이. 왜냐 하면 둘 다 이미 미국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기 때문이다. 한쪽이 낙선했더라면 사이가 절대로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둘이 정반대의 정당 출신 대통령이었어도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클린턴과 W.부시는 공적으로는 정적이었어도 사적으로는 이젠 친구가 되었다.[* 비슷한 예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정치적으로는 완전 정반대 성향이지만 사적으로 절친이다.] * 중간 이름에 나오듯이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을 존경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불륜 혐의가 있고(...) 공화당에서는 당신은 제퍼슨이 아니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 [[폴아웃 3]]에서 [[엔클레이브(폴아웃 시리즈)|엔클레이브]]의 대통령인 [[존 헨리 이든]]의 성우로 나와줄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클린턴은 정중히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 영화팬이며 한때 배우가 되려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월간조선]]의 관련 기사에 따르면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s-2]]가 개봉했을 때, 백악관에서 사람 여럿 불러놓고 본 적 있다. 꽤 만족스럽게 보았다고 하며, 특히 백악관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엄청 즐거워했다고 한다. * [youtube(CRatTuWdT_Q)] [[색소폰]] 불기를 좋아했으며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이 영상은 1992년 영상으로 당대 [[투나잇 쇼]] 다음으로 인기 있던 토크쇼인 [[아세니오 홀]]의 "The Arsenio Hall Show"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을 색소폰으로 부는 영상으로, 이 영상으로 인해 '''빌 클린턴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빌 클린턴의 경제에 대한 구호가 지지율의 일등 공신이긴 했으나, 대통령 후보가 인기 토크쇼에 나와서 엘비스의 노래를 색소폰으로 부는 광경은 미국인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를 계기로 재임 기간 내내 '색소폰 부는 대통령'이라는 기믹이 꽤 유행했다. [[레슬리 닐슨]]의 패러디 영화에서도 닮은꼴 배우가 색소폰을 부는 장면이 나온다. 더불어 [[심슨 가족]]에서도 이런 기믹을 밀고 나온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장면에서 색소폰을 부는 식으로. * 몹시 어렵던 유년 시절부터 주식으로 먹었던 [[패스트푸드]]를 대통령 재임기에도 즐겨 먹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각료들과 햄버거를 먹으며 각료회의를 하기도 했으며, 대통령 재임기에도 백악관을 나가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자주 사 먹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모자 쓰고 얼굴 가려서 경호원까지 따돌렸다고 한다!] ~~식습관이 이런데도 키가 188이다~~당연히 이런 식성이 클린턴의 심장질환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 역시 사실이다. 아내인 힐러리는 이런 남편의 식성을 걱정해서 대통령 식단에 여러 야채를 올려뒀지만, 빌은 그걸 다 먹고 '''[[콜라]] 한 캔과 과자를 먹는 등''', 그런 아내의 노력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대통령 퇴임 후인 2004년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았고,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체중을 많이 줄였다.[* 재임 당시만 해도 100kg가 약간 넘었으나, 지금은 두 자리 체형으로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빌이 퇴임하고 20여년 뒤 그의 아내를 대선에서 이기고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도 햄버거를 비롯한 패스트푸드를 무척 즐긴다. 도널드 트럼프는 빌 클린턴과는 달리 태생부터 상류층이지만 워낙 빠르고 간편한 걸 선호하다 보니 패스트푸드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조간회의 때 다이어트 콜라 5-6캔 정도를 까 마신다고 하며, 아예 집무실 책상에 따로 빨간색 버튼을 설치해 이 버튼을 누르면 백악관 주방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가지고 온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그러나 바이든 집권 후 이 콜라 버튼을 치웠다. 다만 이 분은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서... * 어머니 쪽 이부(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로저 클린턴]]은 가수로 활약하고 있고, 더럽게 재미없는 B급 호러영화 펌프킨 헤드 2에 대사 좀 있는 단역으로 출현했는데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할 당시 내한을 했다. 당연히 대통령 동생이라는 후광을 받아서. 친아버지 쪽으로는 이복형 헨리 레온 리첸탈러(Henry Leon Ritzenthaler)[* 그의 새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와 이복누나 샤론 리 페티존(Sharon Lee Pettijohn)이 있다. *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내 힐러리 외에도, 딸인 첼시 클린턴(1980년)도 곧 정계에 진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계에 퍼져 있다. 첼시는 만 17살 때 대학 졸업 후[* 미국은 [[월반제]]가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금융가로 있다가, 언론 리포터와 국제관계학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다. 클린턴 부부가 설립한 대형 재단에 '빌·힐러리·첼시 클린턴 재단'이라 하여 첼시의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넬슨 만델라]] 추모식에 첼시를 동반하기도 했다. 단순히 부모로서 딸을 생각하는 수준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공식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라 벌써 정치 후계자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 70대에 접어든 클린턴의 나이나, 2017년 기준 30대 중반이 된 딸의 나이를 생각하면 '벌써'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 미국의 황색 언론에서는 무남독녀 [[첼시 클린턴]]이 빌의 친딸이 아니라 힐러리가 외도로 낳은 혼외자식이라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고 있다. 이들의 '빌 클린턴은 무정자증이고, 힐러리는 옛 애인이었던 변호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고, 빌은 그 사실을 알고도 아이가 있는 쪽이 자신들의 이미지에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냥 가만히 있는 거다', '첼시는 빌과 전혀 닮지 않았다' 라고 주장한다. 으레 황색 언론의 보도들에 대한 반응이 다 그렇듯 이러한 가쉽성 보도에 대해 미국 사회에서의 반응도 [[이뭐병]]. * 달변가로 유명하다. 미국의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빌 클린턴을 "이미 녹아 버린 얼음도 (얼음이라고) 팔아먹을 수 있는 화술의 인물"이라 말했다. 물론 좋은 말만 한 건 아니고 "여자만 보면 눈을 두리번거리는 섹스 중독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https://archive.is/5I8WT|archive]] [[https://bit.ly/2jFLtdb|wayback]] * 클린턴 정부 시기의 [[한반도]] 통치자 기준으로 [[양김]] 콤비였던 [[김영삼]] [[1997년 외환 위기|~]], [[2000 남북정상회담| 김]][[김대중|대중]](-[[김일성]](말년) & [[김정일]](권한대행 시기) 부자지간 그리고 [[김영남]]) 때이다.--[[김종필|이 분]]도 만났으면 [[삼김시대|이 조합 멤버들]]을 다 만났을뻔-- * 클린턴을 "[[버락 오바마|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며 장난스럽게 부르기도 한다. 흑인 문학가 토니 모리슨이 한 발언에서 비롯된 건데, 모리슨은 빌 클린턴이 평소 흑인들이 애용하는 색소폰을 애용한다는 점, 흑인들처럼 빈민층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흑인의 습관과 가깝다는 점(패스트푸드를 즐겨먹는 점 등)을 들어 그리 말한 것이다. 한 마디로 '겉은 백인이지만 속은 우리 흑인들과 같아 흑인들을 잘 이해해주는 좋은 대통령'이라는 의미에서 흑인 대통령이라 빗댄 것이다. 실제로 클린턴은 백인이면서도 흑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내 흑인의 90%가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2008년 민주당 경선 초기 당시 흑인 사회에서 힐러리가 정작 흑인인 오바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었다고 한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혼혈 대통령일 뿐이고 빌 클린턴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 [[카더라]].[* 다름아닌 [[모건 프리먼]] 옹이 한 말이다. 흠좀무.] 상기한대로 흑인 문화에 일가견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흑인 문제나 성적 소수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201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함으로서 정말로 흑인을 위한다는 이미지가 더해져 오바마 당선 이후로 사용 빈도가 더 늘어난 듯하다. *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인 힐러리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후 평판이 더욱 올라가고 있다. 그 이전에는 똑부러진 힐러리, 사고뭉치 빌의 이미지가 있었다. 빌이 대통령이 된 것은 똑똑한 힐러리의 내조 덕분이었다는 평은 덤.[* 하지만 현실은 힐러리가 남편 덕을 본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인기 절정의 현역 대통령을 꺾고 재선에 승리한 빌 클린턴과 달리 질 수 없는 대선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선거에서 패한 힐러리 클린턴이 대조되면서 평판은 다시 완전히 역전되었다.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서 진 것은 자신에게 크게 유리한 판이라는 자만심에 빠진 나머지 가난한 백인들(특히 [[러스트 벨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결정적 오판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때 당시 빌 클린턴은 이 러스트 벨트의 중요성에 대해 정확히 간파하고 아내에게 충고했지만 씹혔다(...). 힐러리 캠프의 이러한 대접에 이 러스트 벨트 지역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손을 들어줘 힐러리의 정치 경력에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보답했다. 좋은 충고를 가려내고 수용하는 능력은 정치인으로서(특히 대권을 노린다면 더더욱) 가장 중요한 소양임을 생각해보면... * 한국의 배우 [[노주현]]과 생년월일이 같으며, 그가 취임식을 가졌던 1993년 1월 20일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이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 * 1980년대 이후, [[조 바이든]]과 함께 대표적인 공화당의 [[텃밭(정치)|텃밭]]인 [[조지아 주]]와 [[애리조나|애리조나 주]]에서 이긴 유이한 대통령이다. 차이점이라면 바이든은 둘 다 이긴 반면 클린턴은 조지아를 초선, 애리조나를 재선 때에만 이겼다. * 학창시절에는 촌스러운 옷으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했고, 클린턴을 한 대 후려치는 학생도 있었다. * 가장 최근에 [[켄터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미주리]], [[아칸소]], [[루이지애나]], [[몬태나주|몬태나]]에서 이긴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부부가 둘 다 출마하면서 남편만 가져간 주는 켄터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애리조나, 조지아, [[플로리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아이오와]] 그리고 [[메인]] 2구였고 아내만 가져간 곳은 [[버지니아]]뿐이다. * 2018년 6월, 작가 [[제임스 패터슨]]과 공동으로 '대통령이 사라졌다(The president is missing)'라는 제목의 범죄 스릴러 소설을 출간했다. 대통령 조나단 던컨이 탄핵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미국을 전복시키려는 테러 세력을 찾아나선다는 내용이다. 출간 직후 쇼타임에서 드라마화 하기로 결정했다. 북미에서만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하는등 미국 대중들에겐 반응이 좋았던 반면 평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사실 작가 두 사람의 이름값을 내려놓고 본다면 소설 플롯 자체는 흔한 이야기고 반전도 예측 가능하다. * 미국 선거사에서 재밌는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첫번째 대선에서 43.0%, 두번째 대선에서 49.2%의 총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미국에서 두 번 다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 1기 임기를 전임 대통령의 유고 등의 상황으로 인해 승계해서 치른 경우 등은 제외한다는 뜻이다.] 중 같은 민주당의 전임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과 함께 한 번도 대선에서 득표율 50%을 넘기지 못한 유이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미국 대선 역사상 드물게도 빌 클린턴이 치른 두 번의 대선에서 [[로스 페로]]라는 제3후보가 등장해서 18.9% - 8.4%를 기록하며 선전했기 때문이다. * 아칸소 주지사 시절 유약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Ricky Ray Rector'란 범죄자를 사형시켰다. 문제는 이 죄수가 정신지체였다는 점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빌 클린턴을 공격할 때 인용하는 레퍼토리중 하나다. *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이후 50년 가까이 이어져왔던 직업 군인 출신 대통령의 전통이 이 사람 대에서 멈췄다.[* 트루먼부터 전임인 [[조지 H. W. 부시]]까지 모두 군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었으며,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지미 카터]] 대통령까지는 모두 해군 장교 출신이었다.] * 대통령에 당선된지 30년이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오바마 다음으로 가장 최근에(1946년 8월) 태어난 대통령이다. 동갑내기 후자인 [[조지 W. 부시]]보다 1달 늦게 태어났고, 후후후자인 [[도널드 트럼프]]보다 2달 늦게 태어났으며, 그보다 28년 늦게 취임한 [[조 바이든]]보다 4살 어리다.[* 클린턴은 미 역사상 세번째로 젊은 대통령이었고, 트럼프는 취임 당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었으며, 바이든은 이 기록을 무려 8년 차이로 깨버린 현재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다. 빌 클린턴은 상당히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됐고, 50대 중반이던 부시는 역대 미 대통령 중 딱 평균적인 나이에 취임했으며, 트럼프와 바이든은 유례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대통령이다. 클린턴이 미국 역사상 최고의 경제호황을 이끈 대통령이란 점 외에도 젊고 키크고 잘생기고 쿨한 대통령이란 점도 인기요소 중 하나였다.(능력 외 인기요소가 상당히 많다는 점은 오바마와도 같다. 둘 다 달변이기도 하다)] * [youtube(XC61ctX03PQ)] [[TGA]]에서 한 소년이 뜬금없이 시상식에 난입해 이 인물을 정교회 랍비라고 부르며 언급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빌 클린턴)] [[분류:빌 클린턴]] [include(틀:포크됨2, title=빌 클린턴, d=2023-01-16 08:2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