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91년 출생]][[분류:1948년 사망]][[분류:심장마비로 죽은 인물]][[분류:다하우 출신 인물]][[분류:독일의 기사]][[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스페인 내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Wilhelm Ritter von Thomas.png|width=100%]]}}} || ||<#666> {{{#FFF 이름}}} ||<(>'''Wilhelm Ritter von Thomas''' 빌헬름 리터 폰 토마 || ||<#666> {{{#FFF 출생}}} ||<(>[[1891년]] [[9월 11일]][br]{{{-1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다하우]]}}} || ||<#666> {{{#FFF 사망}}} ||<(>[[1948년]] [[4월 30일]][br]{{{-1 [[연합군 점령하 독일]] [[바이에른]] [[다하우]]}}} || ||<#666> {{{#FFF 복무}}} ||<(> 1912년 ~ 1942년 || ||<#666> {{{#FFF 최종 계급}}} ||<(>[[파일:Si_4b.png|width=32]] [[육군]] 기갑대장 || ||<#666> {{{#FFF 주요 참전}}} ||<(>[[스페인 내전]] [[독소전쟁]] [[북아프리카 전역]] || ||<#666> {{{#FFF 주요 서훈}}} ||<(>막스 요제프 훈장 기사철십자장 스페인십자금검다이아몬드 훈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빌헬름 리터 폰 토마는 독일의 군인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바 있으며, 막스 요제프 훈장을 수여받아 성 앞에 Ritter von[* Ritter는 기사라는 뜻이고 von은 독일 귀족들이 성씨 앞에 붙이는 전치사로 영어의 'of'와 같은 뜻이다.]을 달게 되었다. == 생애 == === 제1차 세계 대전 === 토마는 1891년 다하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이에른 세무 직원의 아들이었고 바이에른 왕국 군대의 직업 장교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토마는 서부와 동부 전선, 세르비아 전역 및 루마니아 전선에서 싸웠다. 1918년 [[2차 마른 전투]]에서 그는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전쟁 포로가 되었다. 그는 바이에른 군대에서 최고의 훈장 막스 요제프 훈장을 수여받아 위에 서술했듯이 리터 폰을 달게 되었다. === 전간기 ===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군대인 [[국가방위군]]에 잔류하고, 차량화 전술에 대해 깊이 교육을 받았다. 1936년,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와 공화파가 연합하여 형성된 인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우파 세력들인 왕당파, 카를로스파, [[팔랑헤]], [[CEDA(정당)|CEDA]], 기타 보수파 [[스페인 내전|등은 일제히 봉기하였으며]], [[통합 팔랑헤|국민파를 형성하였다.]] 당시 [[독일국]]의 [[퓌러]] [[아돌프 히틀러]]는 스페인의 광산과 항구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익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또한 스페인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국민파 스페인]] 편으로 개입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빌헬름 리터 폰 토마 장군은 [[콘도르 군단]]을 지휘하여 국민파를 지원하였으며, 이후 스페인의 인민전선은 무너지게 된다. === 제2차 세계 대전 === 1939년 9월 1일 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폴란드 침공]] 때 토마는 제5기갑사단의 일원으로 연대를 이끌었다. 이후 토마는 육군 최고 사령부(OKH)로 옮겨져 소장으로 진급했다. [[소련]] 침공 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토마는 리터 폰 베버 장군의 후임으로 제17기갑사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1941년 7월 23일 [[스몰렌스크]] 남쪽 15킬로미터에 위치한 탈라시키노에서 [[구데리안]] 장군을 도와 46,47 기갑군단 사이를 연결하여 [[드네프르 강]]에서 4군이 계속 염려하던 소련군의 남쪽 돌파 시도를 막고 키예프로 가서 [[키예프 전투]]에 참전한다. 그 후에는 [[모스크바 전투]]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제20기갑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공로로 기사철십자장을 수여 받는다. 1941년 말에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에르빈 롬멜]] 휘하의 [[독일 아프리카 군단]]에서 장군으로 종군하였다. 잠깐 이나마 독일-이탈리아 아프리카 기갑군 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후일 토마는 기갑 병과대장으로 진급했다. 1942년 11월 4일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히틀러의 후퇴 중지 및 현 위치 고수 명령에 반발하며 자신의 기갑군단 사령부에서 예비 차량 1대를 몰고 나와 전장의 병사들에게로 달려갔다. 차량이 영국군에 의해 여러 발 포탄에 피격되며 그는 경상을 입었고, 스스로 영국 진지로 가서 영국군에 항복하고 포로로 잡혔다 === 전후 === 전후에는 연합군에 의해 사로잡히고, 포로 신분에서 해방되고 고향인 다하우에서 지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정지|심장마비]]로 사망한다. == 기타 == * [[호이4]]에서 '''터키로 '''중점을 찍으면 육군 장군으로 쓸 수 있다. 또한 국민파 스페인에서 기갑 참모진으로 쓸 수 있다. *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하인츠 구데리안]]은 토마를 지휘관들 가운데서 경험이 많은 기갑 장교 중 한 사람이었고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서도 확고부동한 침착함과 불굴의 용기로 유명했다고 회고록에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