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2> {{{#ffffff,#dddddd '''{{{+1 빌헬름 몽케}}}'''[br]Wilhelm Mohnke}}}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Wilhelm Mohnke.jpg|width=100%]]}}} || ||<#666> {{{#FFF '''이름'''}}} ||'''Wilhelm Mohnke'''[br] 빌헬름 몽케|| ||<#666> {{{#FFF '''출생'''}}} ||[[1911년]] [[3월 15일]][br][[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3]] [[독일 제국|독일국]] [[뤼베크 제국도시]] || ||<#666> {{{#FFF '''사망'''}}} ||[[2001년]] [[8월 6일]] (90세)[br][[파일:독일 국기.svg|width=23]] [[독일|독일연방공화국]] [[슐레스비히홀슈타인|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바르스뷔텔[* [[함부르크]] 근교에 위치한 도시다.] || ||<#666> {{{#FFF '''정당'''}}} ||[include(틀: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666> {{{#FFF '''최종 계급'''}}} ||[[친위대(나치 독일)|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소장(계급)|소장]] (여단지도자) || ||<#666> {{{#FFF '''복무 기간'''}}} ||[[1931년]]~[[1945년]]|| ||<#666> {{{#FFF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당시 [[무장친위대]] [[소장(계급)|소장]]. 빌헬름 몽케는 무장친위대의 가장 젊은 장성들 중 하나였다. [[SS]]의 규모가 작았던 극초기부터 SS에 몸담았던 초기 인물 중 하나이다. == 입당 및 대전기 == 고등학교를 졸업한 1931년 9월에 나치당에 입당한 다음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3년 3월 17일에 [[요제프 디트리히]]가 퓌러 [[히틀러]]를 경호하는 경호대를 편성하자 경호대원으로 선발되면서 친위대 소위로서 임관했다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이 벌어지자 종군하여 부상을 입었으며, 제 1급 및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940년의 [[프랑스 침공]]시에는 [[제1SS기갑사단|LSSAH]] 여단의 2대대 5중대장으로 참전하였으며, 대대장이 부상을 입은 이후 대대를 지휘하였다. 이때 휘하 부대가 영국군 포로 80명을 학살하면서 학살 논란의 첫 단추를 꿰게 된다. 1941년의 발칸반도 전쟁에서는 4월 6일에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다가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었으며,1943년에는 친위대 중령으로 진급과 동시에 [[히틀러유겐트#s-2|12 SS기갑사단 히틀러유겐트]]의 제 26 장갑척탄병 연대장이 되었다. 1944년 6월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공로[* 이 시기 휘하 부대가 캐나다군 포로 35명을 학살해 물의를 빚었다.]로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1SS기갑사단]] 사단장으로 재직하던 12월 16일에 [[아르덴 대공세]]에서는 예하 부대가 [[요아힘 파이퍼|말메디 학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후 친위대 소장으로 진급했으나 1945년 2월에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으면서 일선에서 물러났고, 베를린 퓌러 관저로 전출되었다. 4월 22일 [[베를린 공방전]]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로부터 퓌러 관저를 포함한 티어가르텐의 방어사령관으로 임명된 몬케는 9개 대대로 몬케 사단을 편성하여 히틀러의 직접 지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고,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 [[베를린]]을 탈출하려던 몽케는 소련군에게 붙잡혀 [[NKVD]]로 넘겨져 강도높은 심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 전후 == 이후로도 히틀러 관련자라는 이유로 모스크바 인근 [[굴라그]]로 압송되어 6년간 [[KGB]]의 강도높은 심문을 받았으며, [[1955년]]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총리의 소련 방문으로 [[서독]]과 [[소련]]간의 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같은해 10월 10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서독으로 송환되었다. 귀국한 후에는 [[함부르크]]로 돌아가 화물차 판매 사업을 시작하였고, 몇차례 포로 학살의 책임자로 소환조사를 받았으나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포로 학살의 책임자지만 그 정도는 전시에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되어 따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8월 6일 90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화물차 판매 대리점을 운영하며 딜러로 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위대 전우회에 다니며 나치 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줄곧 쏟아내는 등 비판과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슈츠슈타펠]]의 장성급 지휘관중에서는 거의 [[마지막 생존자|마지막까지 살아남았는데]][* 2004년에 사망한 [[오토 쿰]] [[슈츠슈타펠|SS]][[소장(계급)|소장]]이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과 나치당의 득세부터 시작해 [[제2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분단, 냉전과 [[독일 재통일]]은 물론 통일후의 혼란으로 인한 기민련당의 몰락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집권까지 모든 독일의 근현대사를 지켜보았다. == 매체에서 == [[나치 독일]]의 패망 직전을 다룬 영화 [[다운폴]]에서 [[국민돌격대|민간인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것]]에 항의하는 온건한 군인으로 묘사된다. 다만 실제 몽케는 전후에도 친위대 전우회를 다니며 열심히 나치를 옹호한 인물이었으며, [[됭케르크 철수작전]] 때 포로들을 학살한 보름하우트 학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다운폴]] 패러디물에서는 비중이 조금밖에 없지만, 연기한 배우의 생김새도 그렇고 발음이 Monkey와 유사한지라 [[원숭이]]라고 놀림을 당한다. [[분류:1911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분류:나치당원]][[분류:뤼베크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