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초기 이슬람 3대 명장)] ||||<:><-3>
<#000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A1A1A 0%, #494848 20%, #494848 80%, #1A1A1A)" '''{{{#white 라시둔 칼리파국의 명장[br]{{{+2 사아드 빈 아비 와카스}}}[br]سعد بن أبي وقاص}}}'''}}}|| ||||<-3>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سعد_بن_أبي_وقاص.png|width=100%]]}}} || ||||<:><#000000>'''{{{#white 본명}}}'''||<#ffffff>سعد بن أبي وقاص[br]Saʿd bin Abī Waqqās[br]사아드 빈 아비 와카스|| ||||<:><#000000>'''{{{#white 출생}}}'''||<#ffffff>[[595년]] [[아라비아]] [[메카]] || ||||<:><#000000>'''{{{#white 사망}}}'''||<#ffffff>[[674년]] [[우마이야 왕조]] [[메디나]] || ||||<:><#000000>'''{{{#white 복무 기간}}}'''||<#ffffff>[[636년]]~[[644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슬람 제국]]의 명장'''. [[이슬람 제국의 시리아 정복|시리아 전선]]에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이슬람 제국의 이집트 정복|이집트 전선]]에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있었다면 [[이슬람 제국의 페르시아 정복|페르시아 전선]]에는 그가 있었다. 636년 [[카디시야 전투]]와 642년 [[니하완드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무함마드]]가 그를 당대 최고의 궁수로 칭찬할만큼 '''명궁'''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이라크 정복 이후 사아드는 병영도시([[암사르]])이자 행정 치소인 [[나자프|쿠파]]를 건설하고 그 곳의 총독을 지냈다. 650년대 해상으로 벵골을 거쳐 중국 당나라에 처음으로 이슬람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 천수를 누리다가 674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수니파]]의 전승에 따르면 그는 《하디스》에 언급된 천국이 보장된 10인 중 한 명이다.[* [[시아파]]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천국행 보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 생애 == [[파일:قوس_سعد_بن_أبي_وقاص.jpg|width=500]] 사아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사용한 활.[*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알라의 검'''이었다면 사아드 빈 아비 와카스는 '''알라의 화살'''이었다고 회자되었다.] 메디나 철도 박물관 소장. 595년 쿠라이쉬 연맹의 방계인 주흐라 가문 출신인 아부 와카스 말리크와 우마이야 가문의 하므나 사이에서 태어났다.('''사아드 빈 말리크'''로도 불림) 친가인 주흐라 가문은 무함마드의 외가였으며, 그녀와 사아드는 서로 5촌지간이었다. 또한 무함마드의 첫 번째 부인인 카디자와도 10촌 관계였다. 사아드는 불과 17세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하심 가문 밖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첫 7인 중 한 명이었다. 정의감이 투철했던 그는 614년 무함마드 일행을 조롱하고 때리던 메카인들을 때려눕혀 손에 피를 묻혔다. 그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한 첫 무슬림이었다'''. 또한 본래 이슬람을 적대하던 [[우마르]]가 이슬람으로 회심하게 된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헤지라]]에 함께한 사아드는 '''[[바드르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어린 동생 우마이르 이븐 아비 와카스가 무함마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전했다가 무슬림측 14인의 전사자들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이후 '''[[우후드 전투]]''' 때 사아드는 궁수로 활약하며 무함마드를 지켰는데, 전투 후 그에게서 이 시대 최고의 궁수들 중 한 명으로 선포되는 영광을 얻었다. 630년 무함마드의 고별 순례에서 중병에 걸린 사아드는 당시 딸 하나만 있었고, 무함마드에게 얼마만큼의 재산을 사다카(기부)에 돌릴 지를 문의하여 1/3이 적당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처음엔 1/3만을 딸에게 주고 나머지를 기부하려 했으나 무함마드가 거부했고, 절반씩의 제안도 거부했다. 1/3 기부에 2/3의 재산이면 그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의했다.] 다만 곧 회복하여 칼리파 우마르 시대에 군사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시리아에 집중하는 동안 [[사산 제국]]군의 반격에 직면한 이라크 전선을 맡은 사아드는 연거푸 대승을 거두며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 [[분류:595년 출생]][[분류:674년 사망]][[분류:정통 칼리파 시대]][[분류:이라크의 역사]][[분류:사하바]][[분류:메카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