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사쿠마 마사히데'''}}}[br] '''[ruby(佐久間, ruby=さくま)] [ruby(正英 , ruby=まさひで)] | Masahide Sakuma'''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akumamasahide.jpg|width=100%]]}}} || ||<|2> '''출생''' ||[[1952년]] [[2월 29일]] || ||[[도쿄도]] [[분쿄구]] || || '''사망''' ||[[2014년]] [[1월 16일]] (향년 61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 '''직업''' ||[[음악가]],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 || '''링크''' ||[[https://www.facebook.com/masahidesakuma/|[[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0]]]] |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masahidesakuma, 크기=20)] || [목차][clearfix] == 개요 == [[일본]]의 [[베이시스트]], [[프로듀서]]. 일본 70년대 가요씬을 직접 누비던 주역으로서 활동했고 80년대 이후 부터는 일본 가요의 흐름을 좌우하던 프로듀서로서 황금조연으로도 활약하던 뮤지션이었다. == 상세 == 초년 시절부터 갈고닦던 베이스 실력으로 명망을 높인 그는 1975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요닌바야시]] 멤버로서 활동하던 바 있었다.[* 원년 멤버는 아니었고 기존 베이시스트 탈퇴 후 빈자리를 보강하는 형태였다.] 밴드 후반기에는 작곡이나 프로듀싱을 대부분 주도할 정도였으니 음악가로서 역량을 일찍이부터 쌓아올렸던 셈. 그리고 프로그레시브의 한계를 맞이하고선 1978년 밴드로부터 독립하고 프로듀서로서의 길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당초 눈여겨보며 프로듀싱할 기회를 엿보던 [[플라스틱스]] 멤버 가입하며 [[신디사이저]]를 연마하기 시작하고 [[P-MODEL]]의 [[IN A MODEL ROOM]]은 그의 프로듀싱 데뷔작이었다. 이처럼 70년대 말엽 [[뉴웨이브]]와 일렉트로닉 뮤직의 개척자로서도 활약하면서도 일본 음향 장비 개척에도 기여하던 바 있었다. 이후 요닌바야시 재결성이나 약간의 프로젝트 활동을 제외하면 프로듀싱 활동 위주로만 전념하는데, 그가 참여한 면모들을 보자면 [[쿠루리]], [[소울 플라워 유니온]], [[Hysteric Blue]], [[Galla]], [[엘리펀트 카시마시]], [[블루 하츠]], [[근육소녀대]], [[PIERROT]], [[JUDY AND MARY]], [[쿠로유메]], [[오오츠키 켄지]], [[BOØWY]], [[히무로 쿄스케]], [[TOKIO]] 등등 내로라하는 각종 뮤지션들이 그의 손을 거치곤했다. 그리고 목록들을 보면 알겠듯이 국한되는 장르가 아닌 영역들을 종횡무진하며 80년대 이후의 조류들을 결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르다면 이른 나이인 [[환갑]]이 되는 [[2013년]] [[위암]] 진단이 공식화되고 이듬해 타계하게 된다. 여담으로 [[이쿠타 에리카]]와는 당숙 사이로서 사쿠마의 말년 동안 둘의 합작품도 나오기도 했다. [[분류:일본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일본의 베이시스트]][[분류:분쿄구 출신 인물]][[분류:1952년 출생]][[분류:2014년 사망]][[분류:위암으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