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탈리아의 역사)] [목차] == 개요 == 삼니움(Samnium)은 고대 이탈리아 남부에 있던 지역이다. 삼니움이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삼니움인들(Samnites)은 자기들이 살던 지역을 오스크어(語)[* 옛날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서 쓰던 언어. 지금은 사어가 되었다. 오스크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이탈리아어파]]에 속하며, [[로망스어군]]의 [[조어|조상언어]]인 [[라틴어]]의 먼 친척뻘되는 언어다.]로 사피님(Safinim)이라고 불렀다. 많은 삼니움인들이 오스크어를 사용했으나, 모든 오스크어 사용자가 삼니움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동시에 모든 삼니움인이 오스크어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600년~서기 290년 사이에 이탈리아 남부에 존재하다가, 로마 공화국에 흡수된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왜 "일반적으로는"이라고 언급했냐면, 후일 로마 시대에도 삼니움이라는 지명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삼니움과 로마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삼니움은 일단 면적부터[* 원래의 삼니움은 로마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11개의 지역으로 나눌 때 삼등분되었다.] 시작하여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따로 분류한다. 단순히 '삼니움'이라고 칭했을 때는 고대 로마와 경쟁하던 강력한 삼니움족일 수도 있고, 아니면 로마 시대의 삼니움 지역일 수도 있으나, 본 문서에서는 고대 로마와 경쟁하던 삼니움인과 그들이 살던 지역인 삼니움에 대하여 서술한다. == 분류 == 좁은 의미의 삼니움족은 4개의 하위 부족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구분은 삼니움 전쟁 이후로 서서히 약해져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의미가 거의 퇴색되었다. * 히르피니(Hirpini): 현 [[베네벤토]] 주변 등 삼니움 지역의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한 부족. 다른 세 부족들에 비하면 삼니움 정체성이 다소 약한 편이었다고 여겨진다. * 카우디니(Caudini): 삼니움 지역 중 고대 캄파니아 해안 지역과 인접한 서부 지역에 거주하였다. * 카라케니(Caraceni): 삼니움 지역 최북단에 거주한 부족. * 펜트리(Pentri): 삼니움의 핵심 부족으로 삼니움 지역 중앙부의 보비아눔(현 보야노) 일대에 거주하였다. 리비우스에 의하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 공화국이 [[한니발]]에게 대패한 이후 삼니움 부족들 중 유일하게 한니발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 프렌타니(Frentani) 부족의 경우 삼니움 지역의 동쪽, 아드리아해 연안에 거주했는데, 이들은 삼니움에 포함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 역사 == [[동맹시 전쟁]] 당시 발행된 로마 주화에 따르면, 삼니움인들은 로물루스 시기 로마 부족의 남성들에게 처녀약탈을 당한걸 보복하러 온 사비니인[* 전설 시대의 로마 건국 때부터 고대 로마와 연관 있는 라틴 부족 중 하나다. 고대 로마 시대의 파트리키(전통귀족) 중 로마 건국 당시부터 함께한 발레리우스 가문, 2대 왕 누마를 시조로 둔 칼푸르니우스 가문, 4대 왕 앙쿠스 마르키우스를 시조로 둔 마르키우스 가문, 종신독재관 [[카이사르]]의 외가인 아우렐리우스 가문과 공화정 초에 귀순한 클라우디우스 가문이 모두 사비니계 로마귀족들이며, 공화정기 [[노빌레스]](명망가;평민귀족) 중 칼비시우스 등이 모두 사비니인들이다.] 중 로마 부족과의 화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추방된 이들이라고 한다. 고대 사비니인이 로마 근교인 오늘날의 라치오 지방과 중부 이탈리아 및 남부 이탈리아 일대까지 살았던 데다 삼니움인들과 뒤엉켜 살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북쪽의 에트루리아인, 남쪽의 그리스 식민지인들과 달리, 로마 건국 세력인 로마부족과 같은 라틴 혈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로마는 시간이 갈 수록 문화적으로 에트루리아화 되었기 때문에 이미 삼니움인과 맞닥뜨렸을 때에는 외려 이질성이 커진 상태였다. 일단 기록으로는 기원전 354년의 로마와 삼니움 사이의 조약[* 로마와 삼니움의 경계를 리리스강으로 한다는 국경 조약이다.]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삼니움과 로마는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삼니움은 고대 로마의 강력한 경쟁자 중 하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삼니움 전쟁]]. 로마와의 전쟁에서 몇 번이나 승리를 거둔 삼니움은 기원전 4세기경에 이탈리아 남부의 강자로 부상한다. 그러나 [[삼니움 전쟁]]에서의 패배와 [[아피아 가도]] 건설로 삼니움은 로마의 세력권에 복속하게 되고, 다시 독립하기 위해서 봉기한 크라니타 언덕 전투[* 기원전 277년.]에서마저 패배하게 되면서 삼니움은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이후의 동맹시 전쟁까지는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할 정도는 되었으나, 그마저도 기원전 82년에 로마의 독재관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에 의해서 완전히 일소되면서, 이후에는 아예 로마에 동화된다. 로마인 중 가장 유명한 삼니움 출신으로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 때의 유대장관 [[본시오 빌라도]]가 있다. == 출신 인물 == * [[가이우스 폰티우스]] * [[겔리우스 에그나티우스]](제3차 삼니움 전쟁 당시의 삼니움 지도자) * [[본시오 빌라도]] [[분류:이탈리아의 민족]][[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이탈리아족]][[분류:국가(기원전)]][[분류:유럽의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