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73년 소설]][[분류:한국 단편소설]][[분류:황석영]]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소설 원작 영화, rd1=삼포 가는 길(영화))] [목차] == 개요 == >"감옥뿐 아니라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 작중 등장인물인 '''정 씨'''가 중얼거리며 하는 말.] >기차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소설가 [[황석영]]의 [[단편소설]]. [[신동아]] 1973년 9월호에 수록되었다. 일정한 거처 없이 공사장을 떠돌아 다니는 노동자인 노영달, 팔려갔던 술집에서 도망친 작부인 백화, 출소 후 떠돌아 다니다가 고향인 '삼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전과자인 정 씨, 이렇게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게 되며, 영달과 백화는 서로 호감을 가지지만 결국 헤어진다. 영달과 정 씨는 삼포로 가는 기차 티켓을 사는데 정 씨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삼포가 공사판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출 후 공사판을 떠돌아 다녔다는 황석영 개인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는 듯한 소설로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 경제개발로 인해 고향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탁월한 솜씨로 그려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및 많은 국어영역 문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주로 소설 후반부의 백화가 본명을 가르쳐주고 떠나는 장면, 정 씨가 삼포가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듣고 영달이 그 곳에서 일자리나 구하자고 하는 장면이 지문으로 많이 나온다. 초반에는 영달이 하숙집 주인과 눈이 맞았던 이야기, 중간에는 백화의 남성편력 등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을 교과서에 내보내기에는 좀 곤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백화의 남성편력은 당시대의 상경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소재다. '삼포'는 실제 지명과는 관계없이 작가가 지어낸 '''[[가공의 지역]]명'''이다. [[창원시]] [[진해구]] 웅천의 삼포마을로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해당 마을은 소설의 삼포가 아니라 가수 강은철의 노래 <삼포'''로''' 가는 길>에 언급되는 삼포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노래비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강은철 본인이 한 라디오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밝힌 바에 따르면 삼포란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상의 지명으로 작사한 것이며 노래비가 있다는 것도 소문을 듣고 알았다며 이렇게 된 바에 그렇게 설정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라고 했으나, 이는 강은철이 노래의 배경을 잘 모르고 한 말이다. 삼포 가는 길은 후에 [[아빠와 크레파스]], [[호랑나비(노래)]] 등을 작사작곡한 이혜민 작사, 작곡으로 이혜민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할 때에 진해 웅천의 삼포에서 느꼈던 감정을 노래로 만들었으므로 해당 지역을 노래한 것이 맞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을 때 이혜민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상주시]] 모서면에 삼포리가 있다.) [[진중권]]의 문화 다방에 출연했던 황석영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소설의 배경으로서 [[목포]]를 염두에 두었는데[* 실제로 작중에서 정 씨가 백화가 가는 방향을 묻고 백화가 [[전라선]] 방향으로 간다고 답하자 자신은 [[호남선]] 방향으로 간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또 작중 배경이 [[눈(날씨)|눈]]이 많이 내리는 배경인데 목포를 비롯한 호남지방은 예로부터 북서풍을 타고 서해에서 눈구름이 자주 유입되면서 다설지로 유명했다.] 나무를 뜻하는 '목(木)' 세 자를 조합한 한자어 '삼(森)'을 생각해내 삼포라는 지명으로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다만 작중 '삼포'의 모티프를 꼭 실제 [[목포시]]라고 보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의 목포시는 대한제국 시기 개항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광복 직후 시점에서는 이미 한국의 주요 대도시[* 40년대 기준 (분단 이전) 한국 10대 도시이자 4대 항구 중 하나였고 50년대 기준으로는 남한 6대 도시 중 하나였다.]로 자리잡은 상태였다가 오히려 작중 배경인 7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성장동력을 상실하여 대도시로써의 상대적 위상을 상실하고 지방도시 중 하나로 위상이 추락한 상태였다. 즉 삼포의 모델이 정말 목포라고 보면 '본래 고기잡이나 하고 감자나 매던 곳'이었다는 과거(정 씨의 회상)과 '이제는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방둑과 다리에 공사판이 들어서 장까지 열린' 현재(노인이 알려준 사실)의 대비를 통해 정 씨가 결국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작품의 주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작중 배경인 70년대와 40대인 정씨가 고향을 떠났을 시점으로 추정되는 20~30년 전(40~50년대)의 사회상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목포는 이미 (당시 기준에서는) 번화한 시가지였다가 오히려 성장이 지체되고 쇠락한 지방도시로 변화한 것이기 때문. 이런 점을 감안하면 본작의 삼포는 꼭 목포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목가적인 시골-고향 마을'의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목포의 이미지가 일부 차용된 정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 등장인물 == * 노영달 (영화에서는 [[백일섭]], TV문학관에서는 [[안병경]].[*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에서 [[박준철(나쁜 녀석들)|박준철]] 역을 맡은 배우.]) 30대의 날품팔이 인부로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하숙집 여주인과 [[불륜|눈이 맞아]] 공사가 없는 계절에도 하숙집에 빌붙어 있다가 남편에게 들켜서 도망쳤다. 같이 일했던 정 씨와 합류해 가던 길에 백화와 마주치는데, 술집 주인이 백화를 잡아오면 수고비를 주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비슷한 신세인 거 오히려 같이 동행하여 도망치는 걸 돕는다. 백화와 서로 은근히 마음을 품지만 결국 그녀를 고향으로 보낸 후 자신은 정 씨와 함께 일자리를 찾아서 삼포로 간다. 노인에게서 삼포가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는 정 씨와 대비되게 공사판 일을 잡을 수 있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 정 씨 (영화에서는 [[김진규(배우)|김진규]], TV문학관에서는 [[문오장]].)[* 1998년에 김진규가, 1999년에 문오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배우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중년의 [[전과자]]로 [[교도소]]에서 목공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나이가 40살이 넘으며 영달에 비해 말수가 적고 과묵하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기차역까지 영달, 백화와 동행하게 된다. 고향인 삼포를 깨끗하고 때 타지 않은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지만, 막상 역에서 만난 어느 노인[* 그 노인의 아들이 그 곳에서 [[불도저]]를 끌기 때문에 바뀐 삼포 상황을 대략 안다.]과 이야기를 하다가 10년 동안 가지 않았던 삼포가 산업화로 인한 개발로 크게 변해버렸다는 이야기[* 본래는 고기잡이와 감자 농사가 전부인 시골이었으나, 지금은 관광 호텔을 여러 채 짓는다고 공사판에 장까지 들어서고 바다엔 방둑에 다리까지 생겼다.]를 듣고 낙심한다. 결국 정 씨도 영달처럼 그 고향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부분의 눈이 날리는 곳을 똟고 가는 장면에서 이를 암시해주고 있다. * 백화 (영화에서는 [[문숙]], TV문학관에서는 [[차화연]].) 술집에서 도망친 작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할 때 업자에게 속아 술집으로 팔린 후 [[유흥가]]를 전전했다. 나이는 22세지만 19살 때부터 이같은 풍상을 겪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로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있던 술집에서 도망쳐 집으로 가던 길에 영달, 정 씨와 조우한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영달을 마음에 들어해서 그에게 자기 시루떡 반을 주고 함께 고향으로 가자고 제안하지만 영달은 백화에게 삼립빵[*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에 삼립빵은 가장 유명한 제빵 브랜드였다.] 2개와 삶은 달걀 2개, 기차표를 사서 보내준다. 헤어지는 길에 백화는 젖은 눈빛으로(그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기 때문) 자신의 본명[* 원작의 본명은 이점례. 그러나 영화에서는 어쩐 이유인지 이점순으로 바뀌어 나온다.]을 밝히고 퇴장한다. == 영상화 == 1975년 [[이만희(영화 감독)|이만희]] 감독이 영화화한 바 있는데, [[삼포 가는 길(영화)]] 문서 참고. 1981년 2월 14일 [[KBS1]] [[TV 문학관]] 제8화에서 방영했다. 2019년 7월 KBS 측이 유튜브 아카이브 채널에 영상 풀버전을 올렸으나 비공개로 전환됐다. [[임충(작가)|임충]] 극본, 김홍종 연출. [[삼포 가는 길(영화)|영화(1975)]]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철저히 실패했기에 대중들 대부분이 기억하는 건 KBS [[TV 문학관]]에서 방영한 드라마(1981)다. 따라서 백화 역시 [[문숙]](영화) 보다 [[차화연]](드라마)의 뽀글뽀글 라면 머리 이미지가 대중들의 기억 속엔 더 친숙하다. 당시 만 20세의 나이로 이 작품을 찍었던 그녀의 연기는 다시 봐도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차화연은 이 드라마를 통해 묘한 이미지의 백화역을 멋지게 호연해 내며 눈도장을 찍고 이후 주연급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며 그녀 커리어의 전성기를 열어 젖히게 된다. == 기타 ==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교재 [[EBS]] [[수능특강]]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수능 출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5개정 교육과정 미래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기차역에서 영달이 백화에게 기차표와 함께 찐 [[달걀]]과 '''[[삼립]]빵'''을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재의 [[SPC삼립]]에서 나오는 그 빵이 맞다. 빵의 종류는 나오지 않았지만 --작품 배경이 겨울이니 호빵 아닐까?-- 당시 가장 유행하던 삼립빵은 [[호빵]] 또는 [[크림빵]]이었다고 한다. 당시 워낙 유명한 빵 브랜드라 넣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판에서는 삶은 달걀과 함께 비닐 포장된 빵을 집어 봉투에 넣는데 상표가 보이지 않고 TV판에서는 처음부터 비닐 봉투를 안고 와서 건네 주는데 흰 계란은 비닐 밖으로 비쳐보이지만 다른 내용물은 파악이 안된다.] 작중 백화가 "이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봬도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 포항 중앙대학, 진해 칠구, 모두 겪은 년이라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지역은 당대의 유명한 '''[[집창촌]]'''들이다.[* 인천 노란집([[숭의역]] 인근), 대구 [[자갈마당]]은 이미 철거되었고, 진해 칠구 또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는 포항 중앙대학(젊은 군인들이 많이 들르던 곳이라 대학이라 붙여졌다고.)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