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서원팔교위)] 西園八校尉 [[후한#s-1|후한]] 말, [[영제#s-2|영제]] 시기에 황제의 직속군인 서원군이 창시되었는데, 이를 이끈 여덟 교위를 의미한다. 188년 음력 8월에 창시되었다. 정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소황문(小黃門) 건석을 상군교위(上軍校尉)로,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 원소를 중군교위(中軍校尉)로, 둔기교위 포홍을 하군교위(下軍校尉)로, 의랑(議郎) 조조를 전군교위(典軍校尉)로, 조융을 조군좌교위(助軍左校尉)로, 풍방을 조군우교위(助軍右校尉)로, 간의대부(諫議大夫) 하모를 좌교위(左校尉)로, 순우경을 우교위(右校尉)로 삼았다. 그리고 팔교위 모두를 건석에게 지휘하게 하였다. - 후한서 효령제기 주석 산양공재기 우두머리는 상군교위 건석이었는데, 건석은 환관으로 소황문 직책에 있었으며, 정사에서는 십상시에 포함되지 않지만, 두무와 진번과 환관이 대립하던 시기에 환관들을 이끌고 두무를 진압하는 등 환관의 주축이 된 인물이었으며, 그가 서원군의 대장이 되었다는 것은 서원 팔교위가 사실상 환관들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대의 가장 큰 특징은 영제의 직속 부대라는 사실인데, 후한서 하진전 기록에 따르면 영제는 스스로를 '무상 장군'이라 칭하기도 했다. 황제가 장군을 자칭하는 것은 후대 [[후당]]의 [[이존욱]]이나 [[명나라]]의 [[정덕제]] 정도뿐이었다. 일본의 학자 카마타 시게오는 이 호칭에 대해 과거 황건적의 난의 주모자였던 장각, 장보, 장량이 각각 천공·지공·인공 장군을 칭한 것에 대한 맞불 조치로 해석하였다. 이들 중에서 [[원소(삼국지)|원소]]와 [[조조]]는 삼국지의 대표적인 군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교위 [[순우경]]은 원소의 부하가 되었다. [[분류:한나라/무관]][[분류:삼국지/병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