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StickySableAlikeRose,합의사항1=경의선 분류를 추가하는 것으)] [include(틀:평양시의 랜드마크)] {{{+1 西平壤驛 / Sŏphyŏngyang Station }}} ||<-3>
{{{+2 '''서평양역'''}}} || ||<-3>{{{#!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include(틀:지도, 장소=39.05285422330673%2c125.72621615315515&zoom=13, 타입=satellite, 너비=100%, 높이=100%)]}}} || ||<-3> '''다른 문자 표기''' || || [[로마자]] ||<-2> Sŏphyŏngyang || || [[한자]] ||<-2><|2> 西平壤 || || [[간체자]] || || [[일본어]] ||<-2> [ruby(西, ruby=ソ)][ruby(平, ruby=ピョン)][ruby(壌, ruby=ヤン)] || ||<-3> '''주소''' || ||<-3> [[평양시]] [[서성구역]] || ||<-3> '''관리역 등급''' || ||<-3> 불명[br](평양철도총국) || ||<-3> '''운영 기관''' || || [[평의선]] ||<-2><|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 || [[평라선]] || ||<-3> '''개업일''' || || [[경의선]] ||<-2> 1929년 11월 16일 || ||<-3> '''철도거리표''' || ||<|2> [[평양역|{{{#585858 {{{#!html
평양 방면
}}}}}}]][[평양역|평 양]][br]← 4.7 ㎞ || '''[[평의선]]'''[br]서평양 || [[신의주청년역|{{{#585858 {{{#!html
신의주청년 방면
}}}}}}]][[서포역|서 포]][br]6.4 ㎞ → || || '''[[평라선]]'''[br]서평양 || [[라진역|{{{#585858 {{{#!html
라진 방면
}}}}}}]][[서포역|서 포]][br]6.4 ㎞ → || [목차] [[파일:서평양역.jpg|width=550]] || [[파일:서평양역 구역사.jpg|width=100%]] || || 구 역사 || [clearfix] == 개요 == [[평라선]] 및 [[평의선]]의 철도역. [[평양시]] [[서성구역]] 소재. 평양역이 서울역이라면 서평양역은 [[용산역]]이라고 볼 수 있다. 평의선을 경부선, 평라선을 호남선으로 두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물론 평라선 쪽이 분기 시점이 더 이르지만.. 물론 규모를 두고 따지면 용산역의 압승이다. == 역 정보 == 역 이름으로 치자면 평양시의 서쪽에 있는 역이라고 해야 할 텐데, 지도상으로 보면 서평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북평양역이 맞지 않을까 싶다. 평양역을 기준으로 보면 일단 꽤 북쪽에 위치한다. 그래도 지금은 어쨌거나 방위상으로는 평양역보단 서쪽에 있는데, 1946년 미군이 작성한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5/Pyongyangarmymapservice1946.jpg|평양시가도]]를 보면 서평양역이 전혀 엉뚱한 위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일:attachment/서평양역/westpystn.jpg]] 일제강점기 경의선 여객선은 평양역을 떠난 후 현재의 천리마거리-영웅거리를 거쳐 현재의 서평양역 북쪽에서 본선과 합류했는데, 이렇게 되면 당시의 서평양역은 오히려 현재의 평양역보다 약간 동쪽에 위치하게 된다. 그런데도 이름은 서평양역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시가지가 있던 평양 내성이 이 역이 세워질 적만 해도 전통적 중심지였으며, 내성의 서편에 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인천역]]이 인천 동부에 있지 않은 이치와 같다. [[평양역]]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러일전쟁]] 이후 형성된 신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하던 역이었다. 당시 기사들을 찾아봐도 역 일대의 기림리 일대를 서평양이라 불렀고 오늘날에도 부근에 서평양백화점이나 서평양려관 등이 당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오늘날 서평양이라고 하면 보통강 서안의 만경대구역을 지칭한다. 1920년대에 세워진 역이고, 처음에는 위치가 더 동쪽이었으므로 역 이름의 유래가 50년대에 만들어진 '서성구역'과는 연관이 없다. [[http://www.koreanhistory.org/5819|#]] 북한이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고구려 등의 역사에 관심을 그나마 가지기 시작한 것도 80년대 이후부터지, 1970년대까지는 민족주의가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폄하되었던 시기였다. 즉, 관습적으로 쓰던 지명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파일:/image/001/2004/10/16/kp1_2041016i0537.jpg|width=500]] 이 역은 위치를 옮겨 새로 개업한 1961년 이래 '''여직원들만''' 근무하는 전통이 있는데, '''20년간 무사고'''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고. 현재도 역장 이하 이 역에 소속된 70여명의 모든 직원이 여직원뿐이다. [[분류:1929년 개업한 철도역]][[분류:북한의 철도역]][[분류:평라선]][[분류:평의선]][[분류:경의선의 철도역/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