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프로이센의 주)] ||<-6>
<#000000> '''{{{#ffffff {{{+1 베스트프로이센}}}[br] Westpreußen}}}''' || ||<-3><:><#dddddd>[[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ge_Preu%C3%9Fen_-_Provinz_Westpreu%C3%9Fen.svg.png|width=150]] ||<:><-3><#dddddd>[[파일:서프로이센_문장.png|width=100]] || ||<-3><#000000> '''{{{#ffffff 주기(州旗)}}}''' ||<-3><#000000> '''{{{#ffffff 주장(州章)}}}''' || ||<:><-6><#e1e1e1>[[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German_Empire_-_Prussia_-_West_Prussia_%281878%29.svg.png|width=300]] || ||<-6><#000><:> '''{{{#fff 1772년 ~ 1945년}}}''' || ||<-6> '''[[프로이센 왕국]] (1772~1871)[br][[독일 제국]] (1871~1918) [br][[바이마르 공화국]] (1919~1933) [br][[나치 독일]] (1933~1945)''' || ||<#000><-6><:> [[제2차 세계 대전|'''{{{#fff 제2차 세계 대전}}}''']] '''{{{#fff 이후}}}'''[* [[포츠담 회담]]의 결과 비스툴라곶 북부 지역이 소련에게 할양되었다. 이 지역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로 편입되었으며 현재 칼리닌그라드 주 중 유일하게 구(舊) 서프로이센 지역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 ||<-6><#cc0000>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fff 러시아 SFSR}}}''']] || ||<-6><#cc0000> [[폴란드 인민 공화국|'''{{{#fff 폴란드 인민 공화국}}}''']] || ||<#000><-6> '''{{{#fff 행정}}}''' || ||<#000><-2> '''{{{#fff 시간대}}}''' ||<-4>(UTC+1/+2) || ||<#000><-2> '''{{{#fff 주도(州都)}}}''' ||<-4>[[단치히]] || ||<#000><-6> '''{{{#fff 인문환경}}}''' || ||<#000><-2> '''{{{#fff 면적}}}''' ||<-4>25,534km² (1890년 기준) || ||<#000><-2> '''{{{#fff 인구}}}''' ||<-4>1,703,474명 (1910년 기준) || ||<#000><-2> '''{{{#fff 인구밀도}}}''' ||<-4>66.7명/km² || [[독일어]]:Westpreußen [[폴란드어]]:Prusy Zachodnie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 제국]]의 동부를 이루고 있던 주. '서'프로이센이라는 명칭 때문에 서부 지역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는데 프로이센 전체는 독일 제국 최동단이다. 어디까지나 동프로이센보다 서쪽에 있어서 서프로이센이라는 명칭이 붙었을 뿐이다. 이는 [[베스트플란데런]]과 [[오스트플란데런]]의 관계와 유사하다. == 역사 == === 초기 === 본래 서프로이센 지역은 [[폴란드 왕국]]의 영토였으나 폴란드의 약화를 틈타 진출한 [[튜튼 기사단]]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1466년 튜튼기사단의 지배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폴란드의 도움을 받은 덕에 반란을 수월히 성공으로 이어졌고 이 일대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독자적인 하나의 지역으로의 역사가 시작된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전통적으로 [[포메른]]의 일부로 취급되는 포메렐리아와 서프로이센 지역을 묶어서 왕령 프루시라는 지역을 만들어, 포메렐리아도 프로이센의 역사의 일부로 포함되게 된다. 반면 [[쾨니히스베르크]]를 비롯한 오늘날의 [[동프로이센]] 일대는 튜튼 기사단을 지지했으며, 이후 [[종교개혁]] 시기 튜튼 기사단장 [[알브레히트(프로이센)|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가 [[개신교]]로 개종하고 [[세속화|세속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프로이센 공국]]으로 재탄생했고 서프로이센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1618년 [[요한 지기스문트]]부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프로이센 공작의 지위도 겸하게 됨에 따라 서프로이센은 본의 아니게 동프로이센을 [[월경지]]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월경지가 된 동프로이센이 오히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쇠락에 큰 힘을 보탰다고 평가하곤한다. 프로이센이 폴란드 분할 때 월경지를 이유로 서프로이센을 뜯어낸 거만 봐도. ~~양면전쟁의 위험성~~] === [[프로이센 왕국]] 서프로이센 주(Provinz Westpreußen) === [[프리드리히 대왕]]은 1772년의 1차 [[폴란드 분할]]을 통하여 [[그단스크]]를 제외한 서프로이센 영토를 점령하고 프로이센의 오랜 숙원이던 동프로이센과 브란덴부르크의 연결에 성공했다.[* 국토가 연결되면서 같은 시기 [[예카테리나 2세]]의 지도 하에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러시아를 유사시 손쉽게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프로이센에게 1차 폴란드 분할은 하나의 쾌거였다. 또한, 이때부터 프로이센의 군주가 국제사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받아 프로이센 영역 밖에서도 '프로이센 왕'으로 지칭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발트해]]로 나가는 통로가 차단된 폴란드에게는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이후 2차 폴란드 분할에서 [[그단스크]]도 획득했다. 서프로이센을 수복한 계몽군주를 자처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지금 관점에서도 꽤나 온건한 통치를 이 지역에서 펼쳤다. 물론 각종 통치 시스템은 프로이센적인 색채로 뒤덮였지만, 폴란드의 국교였던 [[가톨릭]]을 프로이센의 [[프로테스탄티즘]]과 평등하게 대우해줬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폴란드어]] 역시 여전히 학교에서 교육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다만 제1언어는 물론 [[독일어]]였다.] 심지어 프리드리히 대왕은 본인이 폴란드어를 배웠거니와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폴란드어를 배울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프로이센 국왕들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시절부터 외교 문제로 인해 폴란드어를 말할 수 있어야 했다. 프로이센의 국왕 중에서 폴란드어를 구사할 줄 몰랐던 유일한 인물은 [[빌헬름 2세]].] 다만 프리드리히 대왕이 정말 폴란드인들을 존중해서 온건책을 펼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최근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폴란드 정부를 '[[오스만 제국|오스만]] 빼고는 [[세임|유럽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정부'라고 혹평]][* 귀족 공화제의 성격이 짙었던 세임의 존재가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약화와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하고 폴란드인들을 '더러운 유인원'으로 씹은 것(...)이 밝혀지면서 그냥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차원에서 펼친 정책이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프랑스에게 패하면서 일시적으로 서프로이센 지역은 [[바르샤바 공국]]의 일부로 편입되기도 했지만,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로는 당연히 도로아미타불. 참고로 1824년부터 1878년까지는 [[동프로이센]]과 통합되어 프로이센 주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에 불어닥친 [[민족주의]] 광풍에 발맞추어 프로이센 왕국 역시 이 일대의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독일의 다른 지역들처럼 만들기로 결심했고, 그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독일인들이 이 곳으로 이주해오는 한편 독일화가 거세졌다. 특히 1871년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독일 제국]]이 수립된 이후로는 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각종 세제 혜택이나 국책사업을 독일인들에게 수주해줬다. 그 외에도 독일인들에게 서프로이센에서의 각종 사업 권유 및 허가를 집중적으로 주었다.] 이런 독일의 노력 때문인지 20세기 초반이 되면 상당히 동화가 진척되어서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독일인이었으며, 독일어를 [[제1언어]]로 구사하는 사람은 인구의 70% 정도였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협상국이 [[민족자결주의]]와 더불어 신생 폴란드에게 해양 접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대부분은 폴란드에 넘어가며 주도 단치히는 [[단치히 자유시]]라는 특별 자치 형태로 분리된다. 그에 따라 123년만에 다시 [[동프로이센]]은 독일 본토와 분리된 월경지가 되었고, 이는 독일인들을 가장 격분케 한 전후조치 중 하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 이후로도 독일은 공공연히 폴란드와의 국경 승인을 거부했고[* 영토 반환을 이유로 폴란드산 석탄 수입을 막거나 항구 사용을 거부하는 등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무역 분쟁]]을 여러번 일으켰다.], 아예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에는 대놓고 폴란드를 향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물론 독일 군부도 '폴란드는 언젠가 손 한 번 봐줘야 한다'는 식으로 벼르고 있었다.] === 후신(?) : 포젠-서프로이센 변경주와 서프로이센 관구 ===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폴란드 제2공화국]]은 [[발트해]]로 나가는 통로('폴란드 회랑')을 얻을 수 있었다. 상술했듯 서프로이센 주의 주도였던 [[그단스크|단치히]]와 그 주변은 [[단치히 자유시]]라는 이름의 [[국제연맹]] 관할구역이 되었으나, 특히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일부 지역(플라토, 슐로샤우, 도이치 크로네)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잔류할 수 있었다. 역시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해 바이마르 공화국에 잔류한 포젠 주 일부 지역들(슈나이더뮐 시, 네체크라이스, 봄스트, 프라우슈타트, 슈베린, 메세리츠)을 합쳐, 바이마르 공화국은 1922년 7월 1일에 '포젠-서프로이센 변경주(Grenzmark Posen-Westpreußen)'를 출범시킨다. 주청 소재지는 슈나이더뮐(Schneidemühl).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2px-Grenzmark_PW.png]] 포젠-서프로이센 변경주의 영역. 북쪽 덩어리 가운데 남쪽 끝 네체크라이스와 주도 슈나이더뮐을 제외한 곳이 구 서프로이센 주였던 지역이다. 비록 찌꺼기(...)만 남았지만, 동프로이센으로 가는 [[프로이센 동방철도]]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었기에 나름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1938년, 이 변경주를 [[포메른]]과 [[브란덴부르크]]에 분할 합병시켜버린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Landkreise_RB_Westpreussen.png]] 한편 [[동프로이센]]에 가까우면서 독일인들이 다수였던 서프로이센 지역(엘빙, 마리엔부르크, 슈툼, 마리엔베르더, 로젠베르크)은, 1922년 7월 1일부로 동프로이센 주가 관할하는 '서프로이센 관구(Regierungsbezirk[* 현 또는 관구로 번역되며, 주와 시·군 사이의 중간 계층의 행정 구역이다.] Westpreußen)'가 된다. 관구청 소재지는 마리엔베르더[* 현 폴란드 크비진(Kwidzyn).]였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 급기야 1938년 이후로 독일은 폴란드에게 [[단치히]]로 가는 철도에 대한 [[치외법권]]을 요구했고 폴란드가 이를 거부하면서 [[2차대전]]이 발발한다. 어찌보자면 서프로이센은 2차대전의 도화선이었던 셈. [[폴란드 침공]] 이후 이 일대는 다시 독일의 영토로 편입되지만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이 일대는 다시 폴란드의 영토로 돌아옴과 동시에 이 일대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은 모두[* 단순히 전쟁 기간 중에 이주해온 사람 말고도 전쟁 이전부터 살던 토박이들도 싹다 추방시켜 버렸다. [[뮌헨 협정]] 당시 [[주데텐란트]]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민족과 국경선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결국 또다시 문제가 생길 거라는 판단을 연합국들이 내렸기 때문. 여담이지만 그 덕분에 폴란드는 원래 [[폴란드 제2공화국|제2공화국]]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자국민을 포함해 독일인, 유대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등이 사는 [[다민족국가]]였지만 전쟁 후에는 99% 폴란드인만이 사는 [[단일민족국가]]가 된다.] 독일 본토로 추방된다. 폴란드는 획득한 서프로이센 지역에서 포메렐리아를 분리해 그단스크 주를 새로 설치했고 지금도 서프로이센 지역은 [[바르민스코마주르스키에 |바르미아마주리주]], 포메렐리아 지역은 [[포모르스키에|포모제주]]로 서로 다른 행정구역을 이룬다.[* 참고로 폴란드 제2공화국 시기에 서프로이센 지역은 포모제 주라는 이름의 하나의 주였다. 193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해당 주의 인구 비율은 폴란드인 88%, 독일인 10%, 유대인 2%였다.] == 출신 인물 == * [[발터 네른스트]] == 외부 링크 == * 서프로이센 주가(州歌) - [[https://www.youtube.com/watch?v=gHnTo8ctl_Y|Westpreussen mein lieb Heimatland]] * [[https://www.youtube.com/watch?v=z2bckDEkrow|서프로이센 출신 독일 실향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독일어)]] == 관련 문서 == * [[폴란드 회랑]] * [[단치히 자유시]] [[분류:유럽의 지명]][[분류:프로이센의 역사]][[분류:독일 제국]][[분류:바이마르 공화국]][[분류:나치 독일]][[분류:1945년 해체]][[분류:폐지된 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