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모자)] [include(틀:헝가리 관련 문서)] [[파일:성 이슈트반 왕관.jpg|width=100%]] [목차] == 개요 == || [[헝가리어]] || Szent Korona || || [[독일어]] || Stephanskrone || || [[영어]] || Holy Crown of Hungary/Crown of Saint Stephen ||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의 [[왕관]]으로, [[헝가리/역사|헝가리 역사]]상 최초의 왕가인 [[아르파드 왕조]]의 개국군주 [[이슈트반 1세]]의 것으로 전해지며 비단 헝가리의 [[왕권]]뿐만 아니라 헝가리의 국권 더 나아가 주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유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헝가리 왕국]], 그리고 현재 헝가리의 [[헝가리#s-2.3|국장]]에도 그려져 있다. 성 이슈트반 왕관은 현재 헝가리가 왕정이 폐지됐기 때문에 더 이상 왕관으로 쓰이진 않고 수도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원본이 소장 전시되어 있다. 성 이슈트반 왕관이 상징하는 것이 헝가리의 [[주권]]임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 내용 == === 역사 === [[아르파드]] 공작으로부터 세습된 [[헝가리 대공국]]의 [[대공(작위)|대공]] 작위가 [[이슈트반 1세]](István I, 975~1038, 재위 997-1038) 때인 1000년에 [[가톨릭|로마 교회]]와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아 헝가리의 왕으로 격상되면서 11세기 [[헝가리 왕국]]이 건국되었다. 이 이슈트반 1세가 [[1000년]] [[12월 25일]] 혹은 [[1001년]] [[1월 1일]]에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본 왕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의 왕관은 이후 대대로 헝가리 왕국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이슈트반과 그의 아들 임레(에메리코, 1006~1031)를 [[성인(기독교)|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왕관도 성 이슈트반[* 여담으로 이슈트반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스테판|스테파노]]의 [[헝가리어]] 명칭이다.] 왕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 여러 부침을 겪어 온 [[헝가리/역사|헝가리의 역사]]에서 어떤 세력의 왕이건 헝가리를 차지한 왕의 대관식이 있을 때마다 본 왕관은 항상 등장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헝가리 [[레갈리아|왕권의 상징물]]로 그 입지가 격상되었다. 마치 고대 [[중국]]의 [[전국옥새]]처럼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 왕위 즉위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상징이 되었다.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헝가리 왕이 됨으로써 성 이슈트반 왕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 이슈트반 왕관을 씀으로써 헝가리 국왕이 되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가 [[1526년]]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을 상속받으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이 출범한 이래 [[오스만 제국]]과의 패권 다툼 끝에 헝가리 전 지역을 차지했을 때도 이 왕관은 꾸준히 전해져 왔다. [[1867년]]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중 제국 체제로 전환됐을 때 헝가리 왕국이 [[성 이슈트반 왕관령]]이라는 명칭으로 지칭됐을 정도로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의 국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신물(神物)이었다. ||[[파일:external/www.almanachdegotha.org/karl_I_zita_otto_1916.jpg|align=center]]|| ||[[파일:external/www.recuperanti.it/katl-otto-zita.jpg|align=center]]||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두 번째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가 성 이슈트반 왕관을 착용한 모습.[br]좌측: 카를 1세 / 가운데: [[오토 폰 합스부르크]] / 우측: 황후인 [[부르봉파르마의 지타 공녀]] || 그러다가 격동의 [[20세기]]에 들어서 본 왕관은 상당히 수난을 겪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망하면서 [[헝가리 왕국(1920~1946)|근대 헝가리 왕국]]이 독립하였으나 왕국이 존속한 기간(1920~1945년) 내내 '''왕이 없는 왕국'''이라는 기괴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이 기간 동안 [[호르티 미클로시]]가 [[섭정]]의 자격으로 독재를 했다.] 이로 인해 성 이슈트반 왕관 및 여타 레갈리아들은 정당한 주인 없이 모처에 그냥 엄중하게 보관되었다.[* 오로지 성 이슈트반 왕관과 여타 레갈리아들을 지키는 임무만을 맡은 근위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반공]]을 모토로 내세운 독재자 호르티 미클로시가 이끄는 헝가리 왕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여했으나 [[1944년]] 10월 [[나치 독일]]이 망조에 들었다고 판단하고는 [[소련]]과 단독으로 강화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강화 시도를 눈치챈 독일이 [[오토 스코르체니]] SS 중령의 주도 하에 [[판처파우스트 작전]]을 개시하여 미클로시를 끌어내려 압송하고 [[극우]] 정당인 [[화살십자당]] 당수 [[살러시 페렌츠]]를 헝가리의 지도자로 세우는 한편 기세가 오른 [[소련군]]은 [[독일 국방군]]을 각지에서 격파해 가면서 점차 헝가리에 가까워지는 대혼란이 펼쳐졌다. 이에 성 이슈트반 왕관을 차라리 [[미국]]에 넘기면 넘겼지 절대 소련 [[빨갱이]]들에게는 넘겨줄 순 없다는 판단에 따라 당시 헝가리의 총리였던 게저 러커토스(Géza Lakatos) 등 왕관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1944년]] 10월에서 [[1945년]]까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거쳐 본 왕관을 [[서유럽]]으로 반출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이 성 이슈트반 왕관을 인수했다. 왕관은 헝가리의 [[쾨세그]](Kőszeg)에서 시작해서 헝가리의 벨렘(Velem), [[오스트리아]]의 마리아첼(Mariazell), 오스트리아의 마트제(Mattsee), 다시 헝가리의 쾨세그, [[서독]]의 [[아우크스부르크]] 등을 거쳤다. 이 여정 동안 왕관은 보호를 위해 수차례 땅에 묻히고 파내지고를 반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헝가리 영토에는 소련군이 승전군으로 진주하였고 [[소련]]의 [[위성국]]인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인 신생 헝가리 인민 공화국에 헝가리 국권의 상징인 본 왕관을 그대로 반환한다면 직접적으로는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정당성 및 역사적 정통성과 공산정권이 합법정부임을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소련이 헝가리에 행사하는 영향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격이 된다. [[냉전]]이 막 시작된 시기였던지라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은 본 왕관을 헝가리에 돌려주지 않고 [[켄터키]]의 [[포트 녹스]]에 약 25년가량([[1953년]]에서 [[1978년]]까지) 보관했다.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박물관에 전시한 것이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가 보유하는 금을 보관하는 곳으로 유명한 포트 녹스에 엄중하게 보관했다는 점에서 미국도 성 이슈트반 왕관의 역사적 중요성과 상징성을 충분히 인식했던 듯하다. 냉전 기간 동안 [[헝가리인]]들은 소련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고 중립화와 개방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반발했다. 이를테면 [[1956년 헝가리 혁명]] 등의 직접적인 반발이 있었으며 혁명이 소련군에 의해 좌절됐음에도 조심스럽게 개혁개방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계속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와는 별개로 헝가리를 방문한 [[미국인]]을 억류하여 볼모로 잡아 미국에게서 성 이슈트반 왕관을 돌려받기 위한 꼬장을 부리기도 했다.]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이러한 행보가 유효했는지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헝가리와의 관계 개선 및 [[동구권]]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대표단을 파견했고 [[헝가리 국민의회]]에서 미국 대표단이 성 이슈트반 왕관을 전달함으로써 [[1978년]] [[1월 6일]]을 기해 본 왕관은 헝가리에 공식적으로 반환됐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성 이슈트반 왕관 진품을 헝가리 시민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전시하고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상징으로 왕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반환을 승인했다. 성 이슈트반 왕관은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로 수립된 헝가리 제3공화국에서 상징으로 채택되었다.] 이에 헝가리 본토 국민들은 당연하게도 왕관의 반환을 대단히 기뻐했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반공 성향의 [[헝가리계 미국인]]들은 크게 반발했다고 하며 반환을 추진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국에서 '빨갱이' 소리를 듣고 반공 성향 [[민주당(미국)|민주당]] 지지층들까지 이탈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성 이슈트반 왕관 반환은 카터가 재선에 실패한 한 가지 원인으로 꼽힌다. [[1978년]] 헝가리로 반환된 왕관은 약 20년간 헝가리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2000년]] [[1월 1일]] 헝가리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졌으며 이후에는 계속 헝가리 국회의사당에서 헝가리 국권을 상징하는 유물로서 보관, 전시된다. === 제원과 특징 === 성 이슈트반 왕관은 약 2kg에 달하는 [[금]]과 [[은]]의 [[합금]]으로 이루어졌고 그 너비는 20.39cm이며 길이는 21.59cm이다. 사실 본 왕관의 구체적인 기원은 불명확하다. 다만 왕관의 부분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양식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왕관은 여러가지 부속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 크게 나눠 [[그리스]] 양식과 [[라틴]] 양식의 부속이 결합되었으며 그 외에도 출처가 서로 다른 여러 부속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덧붙여졌다고 추정한다. 왕관의 링 부분은 명백히 후기 [[동로마 제국]] 양식이다. 정확히는 동로마 제국 양식 중에서도 초기에 주로 쓰인 링 형태의 제관 양식이다. 여기에 그려진 [[이콘]](성화)들은 대부분이 (혹은 전부) 동로마 황제 [[미하일 7세]]가 헝가리 왕 [[게저 1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이는 왕관의 뒤쪽에 미하일 7세, 당시의 동로마 공동황제였던 미하일 7세의 형제 혹은 미하일 7세의 황자로 추정되는 인물, 그리고 게저 1세가 그려졌으므로 확실시된다. 다른 동로마산 부속으로는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말 헝가리 국왕 [[벨러 3세]]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왕관 하단의 금 체인으로 보석 장식이 매달려 있는 것도 전형적인 동로마 제관/왕관 양식이다. 반면 라틴 양식의 부속들은 출처를 전혀 알 수 없다. 이 부속들의 유래에 대한 여러 전설이 있지만 교차검증이 전혀 되지 않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왕관을 보냈다는 당사자들의 기록이 없다. 유명한 전설로 [[칼만]] 왕의 요청으로 주교 하트빅이 기록한 자서전에 [[에스테르곰]] 대주교가 [[교황]]에게 요청하여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1세의 왕관을 선물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왕관을 만들고 보니 이미 [[폴란드]] 사절이 폴란드 국왕을 위한 왕관을 수여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와서 폴란드 왕관이 먼저 만들어졌는데 교황의 꿈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또 다른 나라에서 왕관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다음 날 교황이 왕관을 하나 더 만들 것을 명령하여 그것이 헝가리의 왕관이 되었다는 것이 있다. 하트빅이 남긴 기록 속 전설에는 교황이 누구였는지 나오지 않으나 [[13세기]] 헝가리 전례서들에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999-1003 재위)였다고 언급된다. 이 전설은 서유럽 [[가톨릭]] 교회들에서 자주 회자되었는데 정작 [[바티칸]]에는 관련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다. 이외에 유명한 전설은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3세]]가 왕관을 선물했다는 것인데 당사자 쪽에 왕관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물론, 당대 서유럽 기록에 왕관에 대한 것이 전혀 회자되지 않아 이 전설은 확실한 위작으로 여겨진다. 그리스 양식으로 만들어진 링 부분의 성화들은 전면에는 [[예수]]와 [[미카엘]], [[가브리엘]] [[천사]]로 구성된다. 뒷면에는 [[미하일 7세]], 미하일 7세의 형제 혹은 황자, 그리고 게저 1세[* 왕 게저 1세가 아니라 성 이슈트반 1세의 아버지 게저를 그린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가 그려졌다. 예수의 성화와 미하일 7세의 그림은 서로 다른 모양을 한 부속에 그렸기 때문에 미하일 7세의 그림은 원본에는 없었으나 아마도 원본이 파손되어 수리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에서 부속을 교체한 듯하다.] 교체된 모양이다. 전면과 후면 사이의 성화들은 성 데메트리오, 성 제오르지오, 성 고스마, 성 다미아노를 표현하였다. 라틴 양식으로 구성된 십자 밴드의 유래는 불명확하지만 여기에 그려진 [[이콘]](성화)의 양식으로, 최소한 부속들의 기원을 추정할 수는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11세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십자 밴드 자체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밴드의 정 중앙에는 예수의 성화가 있고 밴드의 다른 부분에는 [[12사도]] 중 8명의 성화로 장식하였다. ==== 기울어진 십자가 ==== [[파일:헝가리 국장.svg|align=center]] 성 이슈트반 왕관은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헝가리의 [[국보]] 중 국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왕관 꼭대기의 [[십자가]]가 정방향이 아니라 심히 기울어졌다. 심지어 헝가리의 국장에도 반영되었다. 본래 [[성십자가]] 조각 3개가 들어간 이중 십자가 장식이었다가 대체된 듯하다. 십자가가 이렇게 기울어진 이유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교황청]]에서 이슈트반 1세의 즉위를 기념하여 왕관을 보냈으나 왕관을 담을 때 상자의 높이가 왕관보다 낮아서(혹은 잘못 넣은 상태에서 보관함을 닫을 때 실수로 너무 세게 눌러서) 약간 찌그러진 채로 온 것을 '교황 성하께서 뜻이 있으셨겠거니'하고 그냥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보관상 실수로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상자에 잘못 넣었다가 그만…'이라는 내용은 같은데 정수리 부분까지 찌그러진 걸 보면 의도치 않은 파손인 건 확실해 보인다. [[15세기]] 초 [[알브레히트 2세|얼베르트]]가 죽고 [[폴란드 왕국]]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가 헝가리 국왕 울라슬로 1세로 선출되자 이를 막으려던 얼베르트의 왕비 [[룩셈부르크 가문|룩셈부르크]]의 엘리자베트[* 전 헝가리 국왕이자 [[독일왕]] [[지기스문트]]의 딸.]가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라슬로]]의 안전한 왕위 계승을 위해 궁녀에게 왕관을 훔쳐 [[빈(오스트리아)|빈]]으로 도주하게 했다가 왕관이 헝가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손상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여담 == * [[대항해시대 3]]에 [[대항해시대 3/발견물#s-5|중동 지방의 발견물]]로 등장한다. 게임 내 명칭은 '성 스테판의 관'. * [[파일:헝가리피눈물.gif]] 이슈트반 왕관처럼 관 위에 달린 십자가 장식이 휘어지는 것을 우려했는지 [[러시아 정교회]] 주교관에 붙은 십자가에는 [[경첩]]이 달려 십자가를 접을 수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성_이슈트반_왕관|한국어 위키백과: 성 이슈트반 왕관]] * [[https://en.wikipedia.org/wiki/Holy_Crown_of_Hungary|영어 위키백과: Holy Crown of Hungary]] * [[https://hu.wikipedia.org/wiki/Szent_Korona|헝가리어 위키백과: Szent Korona]] * [[https://hu.wikipedia.org/wiki/A_Szent_Korona_visszaszolg%C3%A1ltat%C3%A1sa_az_Egyes%C3%BClt_%C3%81llamokb%C3%B3l_Magyarorsz%C3%A1gra|헝가리어 위키백과: A Szent Korona visszaszolgáltatása az Egyesült Államokból Magyarországra]] * [[https://de.wikipedia.org/wiki/Stephanskrone|독일어 위키백과: Stephanskrone]]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헝가리, version=929, paragraph=2.3)]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왕관, version=106)] [[분류:왕관]][[분류:아르파드 가문]][[분류:헝가리 국왕]][[분류:헝가리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