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미국 항공기)] [[파일:P-35.jpg]] [목차] == 개요 == [[리퍼블릭]] 사의 전신에 해당되는 세버스키(Seversky) 사가 전간기에 개발, 생산하여 [[미 육군]]에 납품한 단발 [[전투기]]. == 신기술의 결정체? ==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일반화되지 않은 전금속제 구조에다 인입식 [[랜딩기어]], 단엽 날개와 밀폐식 조종석을 갖춘 이 단좌 전투기는 미 육군항공대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가진 기종이었다. 1935년, 육군은 보잉 [[P-26]]의 후계 기종으로 차기 추격기에 관한 요구 제안을 각 항공기 제작사에 타진했다. 육군의 차세대 추격기라는 엄청난 호재인 이 프로젝트에는 [[커티스]]와 [[시콜스키]], [[콘솔리데이티드]] 사가 도전했지만, 그 틈바구니에는 1931년에 설립된 신흥 업체인 세버스키 사도 끼어 있었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비행사이자 엔지니어 알렉산더 세버스키가 설립한 이 회사에는 역시 러시아 출신이지만 뛰어난 공학자인 알렉산더 카트벨리가 수석 설계기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 발주는 따냈지만 == 카트벨리가 처음 보여준 사내 명칭 SEV-2XP는 고정식 착륙장치에 복좌기여서 세버스키는 이런건 추격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단좌형으로 바꾸고 당시 막 도입되던 신기술들을 적극 채용하여 신선해보이는 설계안으로 바꿔나갔다. 그렇게 다듬어진 설계안 SEV-1XP는 시제기가 완성되었으나 엔진 파워가 딸려 원래 예상했던 성능에서 크게 미치지 못했다. 엔진을 850마력짜리 라이트 R-1820-G5 사이클론에서 트윈 와스프로 교체하고 안정성을 보강하기 위해 수직 미익을 넓히며 형태도 수정했다. 이것이 SEV-7이었는데, 육군의 눈에 들어와 1936년 6월 16일자로 제식 채용되었다. P-35로 명명된 이 추격기는 일단 초기 물량으로 77대의 주문을 받았지만, 너무나 적은 기대에 못미치는 물량이었다. == 엔진 강화 == 이 때, 커티스의 경쟁 후보였던 [[P-36 호크]]도 P-35와 마찬가지로 라이트 엔진의 결함으로 고생했는데, 이런 상황을 지켜 본 세버스키 개발진들은 P-35를 개량할 때 트윈 와스프 엔진으로 교체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파워업된 P-35는 1937년 7월부터 육군항공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 추격기의 무장은 기관총 2정과 중기관총 2정으로 모두 기수에 설치되었는데 그 때문에 기총 4정 전부가 동조기어가 필요했다. 파일런은 1개로, 최대 300 lb(136.5 kg) 폭탄을 매달 수 있었다. 이 추격기의 랜딩기어는 제대로 된 인입식은 아니어서, 뒤에 접어넣되 [[타이어]]와 착륙장치 일부가 날개 아래로 드러나는 반매입식이었다. [[캐노피]]의 형상도 몹시 투박해 방풍창 뒤로 여러 장의 유리를 끼운 새장형이어서 조잡해 보이고 구식기의 형태나 특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말하자면 P-35야말로 미 육군 추격기 진화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 기종이었다. 경쟁기인 P-36은 나중에 액랭식 엔진을 장착하여 [[P-40]]으로 발전해 갔지만, P-35 계열은 일관되게 공랭식 엔진을 고집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1차 대전에서 전투기를 몰아본 경험이 있는 알렉산더 세버스키의 철학이 스며든 결과였다. == 수출의 물꼬 == P-35는 미 육군항공대 외에도 스웨덴에 EP-1-6(EP는 수출 전투기 Export Pursuit)이란 명칭으로 수출되었다. [[스웨덴]] 구매단 앞에서 회사의 대표 세버스키가 직접 P-35의 조종간을 잡고 데모 비행을 펼쳐 보였는데, 그 비행이 좋은 인상을 보였던 것이다. 세버스키는 스웨덴에 전투기 120대나 팔 수 있었다. P-35는 스웨덴 공군에서 운용될 때는 J9으로 불렸다. 하지만 1940년 6월부로 의회의 결의에 따라 [[영국]] 외에 국가에는 비단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항공기의 수출을 금지하는 법률이 발동했던 탓에 나머지 물량은 육군에서 구입하게 된다. 이 국내형이 P-35A인데, J9과 P-35A는 원형기인 P-35 보다 성능이 향상되었고 엔진도 이륙 출력 1050마력으로 파워업했다. 기수에 너저분하게 몰린 기총도 2정을 빼서 날개로 옮겼다. == 전쟁에서 == P-35A 중에서 12대는 [[에콰도르]]에 팔려나갔고, 48대는 [[일본]]과 대치하고 있던 [[필리핀]]에 지원 물자로 보내졌다. 이때 필리핀에 보내진 48대의 전투기는 1941년에 일본군이 침공했을 때 거의 전부가 지상에 앉은 채로 파괴되었고, 실제로 요격에 나선 것은 극소수였다. 또한 8대는 [[중화민국]] 정부에 대한 지원 무기로 보내졌다. [[태평양 전쟁]]이 터졌을 때, 이 전투기는 완전히 시대에 뒤처진 구식기가 되어 있었다. 그렇더라도, 스웨덴과 에콰도르에 팔려나간 기체들은 별다른 실전을 치르지 않은 채 1947년까지도 계속 운용되었다고 한다. 스웨덴 같은 경우는 47년 이후로는 무장을 제거하고 항공카메라를 탑재하여 [[정찰기]]로 개조된 다음 1953년까지 10대가 현역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 파생형 == * 세버스키 2PA : SEV-2XP로 돌아간 듯한 사양에 후방 총좌를 추가한 복좌형 전투기였다. 총좌에 달린 무장은 7.62 mm 기관총 또는 7.7 mm 기관총 1정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기체에 흥미를 느낀 일본 해군이 1937년에 2PA-B3 형식을 20대 수입하여 '''세버스키 육상 복좌전투기''' A8V1이라는 명칭으로 일선 부대에 배치했는데, 나중에 이 기체들은 [[중일 전쟁]]에서 사용했다. 스웨덴도 B6라는 명칭으로 52대를 주문했으나, EP-1-06와 같은 이유로 2대 밖에 수령할 수 없었다. 나머지 50대는 육군에 돌려져 총좌를 제거한 다음 고등[[훈련기]] AT-12 Guardsman으로 사용되었다. * XP-41 : P-35에 이륙 출력 1,200마력에 2단 과급기를 추가한 R-1830-19 엔진을 장비한 형식으로 1대만 제작되었다. 엔진을 강화하면서 캐노피도 저항을 줄이게끔 재설계되었으며, 랜딩기어도 완전히 수납되도록 개량되었다. 1939년 3월 첫 시험 비행에서 확연히 개선된 성능을 보여주어 최대 속도는 520 km/h까지 빨라졌다. 그러나 거의 같은 세버스키 개발진들이 육군의 차기 추격기 후보로 만들어낸 [[P-43 랜서]]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양산은 취소되었다. 이 시기에는 세버스키 사가 리퍼블릭 사로 재편되어서, 이 기체는 세버스키 이름을 지닌 마지막 기체가 되었다. * 세버스키 NF-1 : [[미 해군]]의 함상 전투기 후보로 1대만 제작된 형식으로, [[항공모함]]에 이착함할 때 시야 확보에 유리하도록 방풍창을 크게 부풀렸고 착함 훅을 갖추었으나 접이식 날개는 심사를 통과하면 생산 단계에서 채용할 예정이었다. 함께 경쟁한 후보들이 [[F2A]], [[F4F]]여서 채용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 기본 제원(P-35A) == 승무원 : 1명 전장 : 8.2 m / 전폭 : 11.0 m / 전고 : 3.0 m / 익면적 : 20.4m² / 익면하중 : 135.8kg/m² 공허중량 : 2,070 kg / 임무중량 : 2,770 kg / 최대이륙중량 : 3,490 kg 동력 : [[프랫&휘트니]] R-1830-45 트윈 와스프 공랭식 14기통 엔진 (1,050마력) 최대속도 : 467 km/h, 252 kn 순항속도 : 418 km/h, 226 kn 항속거리 : 1,530 km 실용 상승한도 : 9,570 m 상승률 : 585 m/min. 무장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12.7mm 중기관총]] 2정 / [[M1919 브라우닝|7.62mm 기관총]] 2정 / 폭장 350파운드 == 대중매체 ==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미군 1티어 무료 전투기로 등장한다. [[파일:P35.jpg]] [[분류:미군/항공기]][[분류:항공 병기/세계 대전]][[분류: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