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공산주의)] [include(틀:스탈린주의)] ||<-2>
{{{#ffd700 {{{+1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br]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br]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 ||<-2> [[파일:소련 공산당 당기.svg|width=250]] || || {{{#ffd700 '''약칭'''}}} ||소련 공산당 ([[한국어|한]])[br]КПСС ([[러시아어|러]])[br]CPSU ([[영어|영]]) || || {{{#ffd700 '''창당자'''}}} ||[[블라디미르 레닌]] || || {{{#ffd700 '''표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br]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 || {{{#ffd700 '''당가'''}}} ||[[볼셰비키 당가]] ,,(1939년~1952년),, → [[인터내셔널가]] ,,(1952년~1991년),, || || {{{#ffd700 '''당보'''}}} ||[[프라우다]] || || {{{#ffd700 '''창당'''}}} ||[[1912년]] [[1월 1일]] || || {{{#ffd700 '''해산'''}}} ||[[1991년]] [[8월 29일]][* 또는 11월 6일.] || || {{{#ffd700 '''당원'''}}} ||약 1,900만 명 {{{-2 (1986년 기준)}}} || || {{{#ffd700 '''이념'''}}} ||[[공산주의]][br][[레닌주의]] ,,(1917년~1929년),,[br][[스탈린주의]] ,,(1929년~1956년),,[br][[마르크스-레닌주의]] ,,(1924년~1991년),,[* 스탈린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서로 다른 표현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스탈린주의의 원래 표현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이며 같은 용어다.'''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을 격하하면서 스탈린주의의 [[전체주의]] 물을 빼 수정하여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그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활용하거나 [[현실사회주의]]로 포장되었다.] || || {{{#ffd700 '''스펙트럼'''}}} ||[[극좌]] || || {{{#ffd700 '''군사조직'''}}} ||[[소련군]] || || {{{#ffd700 '''선행조직'''}}}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 || || {{{#ffd700 '''승계정당'''}}} ||[[러시아 연방 공산당]][*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공산당]], [[벨라루스 공산당]] 등 여러 구 소련 공화국 공산당들과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 등 당명만 공산당이 아닐 뿐 소련 공산당의 조직을 승계한 정당이 여럿 있지만, 적통이라 할 수 있는 당은 소련 공산당의 당중앙과 [[러시아 SFSR]] 공산당 조직을 물려받은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다.] || [목차] [clearfix] == 개요 == >'''당은 우리 시대의 이성이고 명예이며, 또 양심이라!''' >'''партия — ум, честь и совесть нашей эпохи!''' >---- >[[블라디미르 레닌]] [[1912년]] [[1월 1일]] 창당된 [[사회민주노동당#s-3|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의 한 분파였던 [[볼셰비키]]를 계승하는 [[정당]]이며, 이 정당은 '''[[일당제]] 구 [[소련]]의 유일정당'''[* [[동유럽]] [[위성국가]]였던 [[동독]]이나 [[중국]], [[북한]]이 [[구색정당]]을 만들어서 명목상 [[다당제]]를 하는데 비해서 [[소비에트 연방]]은 그런거 없이 '''진짜 [[일당제]]'''였다. 그러나 말기에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를 시행하면서 [[다당제]]가 승인되었다.]이란 한 문장로 정리할 수 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여 [[10월 혁명]] 이후에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적백내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할 때까지 [[소련]] 전체를 아우르는 집권당이었다. 정치 성향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다. 당의 창설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이후에는 [[스탈린]]이 [[서기장]] 직책으로 당을 장악하면서, 이후 서기장이 사실상의 당수로 인식되었다. 레닌 시기에 당의 구조는 [[전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를 선출하고, 중앙위원회에서 정치국을 선출하며, 이 정치국원들이 당을 지도하는 구조였다. 즉 정치국이 당의 핵심적인 결정을 내리며, 서기국에서 이 정치국의 결정을 집행하는 구조로 서기장은 서기국의 대표자 정도의 위치였다. 사실 중앙위원회를 최고위원회의, 정치국을 정책위원회, 서기장을 [[사무총장]], 서기국을 사무처로 불러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현대]] [[대한민국]]의 정당과 유사한 구조였다. 레닌 생전에 스탈린은 서기장이었지만, 엄연히 정치국 보다는 하위레벨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당조직을 관리하는 서기장의 직책을 이용해서 소련 공산당을 움켜쥐고, 당연하게도 [[일당제]]라 자연스럽게 소련을 [[통치]]하면서 사실상 서기장이 [[당수]] 겸 소련의 [[실권자]]로 변질되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레닌 시기에는 공식적인 [[당대표]]는 없었고 레닌은 [[내각제]] 국가처럼 [[정부수반|행정수반]](인민위원장)으로 취임해 [[행정부]](인민위원회의)를 통해 소련을 통치했지 결코 당권으로 국권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레닌은 당내에서 중앙위원이었고 정치국원이었으며 경제계획을 마련하는 자리에는 있었지만 절대권력을 가지진 못했고 라데크나 [[트로츠키]] 등이 공개적으로 레닌을 [[비판]]하는 일도 잦았다. [[현대]]에도 [[스리랑카]] 등지의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은 이 구조를 승계해 특별한 당대표가 없고 [[선거]]를 통해 원내에 입성하면 [[원내대표]]가 명목상 당대표 역할을 한다. == 명칭의 변화 == * 1917년 8월 16일~1918년 3월 8일: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러시아어|러]]: Российская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рабочая партия (большевиков); РСДРП(б)) * 1918년 3월 8일~1925년 12월 31일: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러시아어|러]]: Российская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большевиков); РКП(б)) * 1925년 12월 31일~1952년 10월 14일: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러시아어|러]]: Всесоюзная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большевиков); ВКП(б)) * 1952년 10월 14일~1991년 11월 6일: '''[[소련 공산당]]'''([[러시아어|러]]: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КПСС) == 역사 == === 창당 ===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은 외적으로는 [[러시아령 폴란드|폴란드]]와 [[핀란드 대공국|핀란드]]에서부터 [[캅카스]], [[중앙아시아]], [[연해주]], [[러시아령 아메리카|알래스카]]까지 거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제국]]이자 [[강대국]]이었다. 하지만 내적으로 들여다보면 러시아의 부를 독점한 소수의 [[귀족]] 계층과 절대 다수의 [[농민]]들로 이루어진 후진적인 [[사회]]였다. [[서유럽]]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 불어닥친 [[민주주의]] 바람과 [[산업혁명]]을 통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봉건제]]를 철폐하고 (제한적이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근대적인 시민국가로 바뀌어 가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1861년]] 계몽군주였던 [[알렉산드르 2세]]의 [[노력]]으로 '''겨우 [[농노제]]가 철폐되는 수준이었다.''' 당시 [[서유럽]] 국가들이 [[헌법]]에 근거해서 (불완전하나마) [[선거]]를 하고 [[법치주의]]에 입각한 [[통치]][* 물론 그 수혜 대상은 철저히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은 [[선거권]]은커녕 [[노동삼권]]조차 금지된 상태였다가 [[러다이트 운동]], [[차티스트 운동]] 등으로 스스로 [[권리]]를 쟁취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조치들조차 [[의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에 입각해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의회가 없었다.]를 할 때, [[러시아 제국]]은 [[헌법]]조차 없었다.[* [[러시아 제국]]의 헌법 제정과 의회 설립은 [[1906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일본 제국]]보다도 늦었다.] 즉 러시아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신분제도]]와 봉건적 경제질서에 의해서 유지되는 전근대적인 [[전제군주제]] 국가였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러시아 제국은 [[근대]] 시민국가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이러한 사회상에 불만을 품었고, 수 차례나 [[차르]]로 대표되는 전제군주정을 전복시키려고 시도했다. 러시아 제국은 [[18세기]] 말인 [[1773년]] [[에멜리얀 푸가초프|푸가쵸프의 난]]부터 시작해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난|데카브리스트 반란]], 인민주의자(나로드니키)의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등 사회적 변혁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전복 시도를 극복한 전제군주정은 어떠한 [[개혁]]이나 변화 없이 더욱 더 반대파들을 권위적으로 탄압했고, 이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체제를 완전히 뒤엎는 [[혁명]]을 통해 [[국가]]를 변혁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런 가운데 [[19세기]] 서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등장하면서 [[카를 마르크스|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과학적 사회주의]]" [[이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자 러시아 지식인들도 사회주의를 전제군주정으로 낙후된 러시아를 변화시킬 혁명이념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지식인들도 점차 사회주의 흐름에 동참하기 시작해 [[1898년]], 러시아 제국 [[민스크]]에서 첫 마르크스주의 정당이었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창설되었다. 당연히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던 정당을 달갑게 보지 않았던 러시아는 이들 정당의 활동을 금지시켰고, 이들은 곧 서유럽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민주노동당원들은 곧 러시아 내 사회주의 실현을 두고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민주노동당 내 율리 마르토프를 비롯한 온건파는 러시아가 아직 사회주의를 실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며, 마르크스가 역사는 [[봉건제]] → [[자본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 → 사회주의 순으로 발전한다고 설파한 대로 일단 봉건제적 질서에 머물러 있는 러시아에서 당면의 목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며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와 공업생산력을 발전시킨 뒤에 사회주의 체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은 공업화가 진행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초창기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마르크스는 말년에는 공업화가 진전되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같은 [[후진국]]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러시아는 아직 노동자가 얼마 안되며 사실상 봉건적 질서가 잔존하는 농촌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멘셰비키]]로 불리게 된다.[* 이들 멘셰비키가 [[1917년]] [[2월 혁명]] 뒤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성격의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협력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반면 러시아의 낡은 사회상을 급격히 바꾸길 원했던 [[블라디미르 레닌]]은 굳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으며 곧바로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해서 일거에 봉건제적 잔재를 쓸어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설사 [[프롤레타리아|노동자]]의 [[숫자]]와 공업화의 정도가 영/프/독 등의 국가에 비하면 낮다고 하더라도 이미 러시아 경제의 핵심은 [[공업]]이며, 숫자가 적더라도 도시 노동자를 조직해서 혁명을 일으킨다면 충분히 구 체제를 뒤흔들고 러시아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사회주의라는 이름만 같지 내용은 전혀 다른 노선이었고, 당내에서의 격렬한 투쟁끝에 [[1903년]] 2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제갈길을 가기 시작한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라는 간판은 여전히 같이 쓰고 있었지만, 그 뒤로 이 두 분파는 사실상 다른 당으로 경쟁자의 [[관계]]가 되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러시아에 대한 인식과 [[목표]]가 달랐기에 행동방식도 전혀 달랐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차르]]가 [[러시아 제국군|군대]]와 봉건제적 신분질서를 가지고 폭압적으로 통치하는 전근대적인 러시아의 상황에서 헌법 제정, 선거, 의회 개설, [[언론]]의 자유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요구 대신 곧바로 차르체제 타도와 사회주의 혁명으로 달려가길 원했고 '''강철같은 규율을 가진 혁명가들로 구성된 비합법적인 [[전위대|전위조직]]이 지도하는 폭력혁명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것의 실현을 위해서 레닌은 볼셰비키를 서유럽과 같은 선거로 집권하는 대중정당이 아닌,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혁명을 지도하는 조직체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을 지향하였다. 즉 당시 러시아는 선거와 의회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없으니 [[인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할 합법적인 공간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 멘셰비키와 카데트([[입헌군주제]] 지지자들)는 그럼 일단 합법공간을 만들자는 쪽이고, 볼셰비키와 나드로니키(사회혁명당)은 궁극적인 [[목표]]는 차르체제의 타도와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이니 합법공간은 건너뛰고 바로 혁명을 외친 것이다. 다마 볼셰비키는 도시노동자들의 민중봉기로, 나드로니키는 농민과 테러전술을 채택한 것이 달랐을 뿐이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멘셰비키가 주도권을 잡고 있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과 정식으로 결별하고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로 당명을 변경했다. 이후 [[10월 혁명]]이 성공한 뒤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집권당이 되면서 [[1918년]] 당명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변경했다. 당시 공산당이라는 명칭은 멘셰비키, 나로드니키, 무정부주의자 등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구별하여 러시아의 레닌 추종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 [[레닌]]에서부터 [[스탈린]]까지 === 볼셰비키가 [[10월 혁명]]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자신들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던 의회를 해산하자[* 10월 혁명 직후 치러진 [[1917년]] 선거에서 볼셰비키는 제2당이 되었고, 이들이 [[소비에트 공화국]]을 거부하자 레닌은 [[붉은 군대]]를 동원해서 의회를 강제로 해산해버렸다.] [[적백내전]]이 폭발하였지만 공산당은 [[백군]]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였다. 내전 승리 이후 [[1924년]] 레닌이 사망할 때까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서 제한된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수립된 후 [[1925년]]부터 전연방 공산당(Всесою́зная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으로 개칭하였다. 레닌 사후 권력투쟁 끝에 정권을 장악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1934~[[1938년]] [[대숙청]]을 통해서 당 내부에 남아 있는 반대세력을 모두 제거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정적과 혐의자들이 [[반역죄]]로 처형되었고, 수백만 명이 투옥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51년]]에 소련 공산당으로 개칭하였다. === 해빙기와 정체기 ===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소련의 권력자로 급부상한 [[니키타 흐루쇼프]]는 [[1954년]] 비밀리에 열린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을 비판했다. 이는 그동안 [[독재자]]를 숭배하다시피 했던 소련에 큰 변혁을 예고하는 사건이었고, 이후 대숙청 당시 [[굴라그]](수용소)에 보내진 [[사람]]을 석방시키고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본격적인 '''해빙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흐루쇼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농업정책이 실패하고,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당 내 보수파들의 불만을 샀다. 이에 당내부의 보수파와 [[군부]]는 [[1964년]] [[여름]] 휴가기간 동안 전격적으로 당 중앙위원회 [[투표]]를 통해서 흐루쇼프를 실각시키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제1서기로 선출했다. 브레즈네프는 이후 체제를 현상유지시키는 선에서 어떠한 개혁이나 변화 없이 [[1982년]]까지 사실상 '''정체기'''라 불리는 시기를 이끌게 되었다. [[1982년]]에는 [[유리 안드로포프]]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직을 승계하였다. 하지만 안드로포프는 15개월 만에, 그 뒤를 이은 [[콘스탄틴 체르넨코]]는 13개월 만에 사망하면서 소련 공산당은 지도력의 부재를 맞게 되었다. 이에 공산당 정치국은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1985년]] 당시 최연소 정치국원이었던 50대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서기장]]에 선출하였다. === [[페레스트로이카]]와 [[8월 쿠데타|쿠데타]] === 1985년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고르바초프는 80년대를 겪으면서 침체된 소련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사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지정하게 하는 한편, 그동안 금지되었던 표현, 출판의 자유를 허용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곧 지속되는 경기침체에 지쳐있던 [[민중]]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소련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혁 조치로 인해 타격을 입은 공산당 간부들이 고르바초프에게 반발하면서 고르바초프의 지도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1989년]] [[동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동유럽 혁명|민주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권에서 이탈하면서 동유럽에서 소련의 영향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1989년]] 인민대표회의 창설, [[1990년]] [[다당제]] 허용 등으로 소련을 민주적으로 바꾸며 [[서방]] [[국가]]들과 비슷한 국가로 탈바꿈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노력은 [[1991년]] [[8월]], 보수파들이 [[8월 쿠데타|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보수파들은 옛 체제로 회귀하는 방향으로 소련을 복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TV로 쿠데타가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쿠데타군에 등을 돌렸고, 결국 쿠데타는 4일 만에 실패했다. === 해산 === [[1991년]] [[8월 23일]] 보수파들이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소련 공산당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확정받았다. 이후 [[옐친]]은 [[러시아 대통령|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소련 공산당의 활동을 완전히 금지하고 공산당이 소유한 [[재산]]을 전부 각 공화국 [[정부]]에게 환원했다. 이로써 소련 공산당은 [[정부]]와 소련 내 보안기구 및 [[소련군]]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사라졌다. 후신 정당으로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있는데 옐친 정부 중후반기때 제1야당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기는 했고, [[1996년]] [[대선]]에서 옐친에게 석패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옐친이 삽질을 반복한데다가 [[모라토리엄]]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렀기에 차기 집권정당으로 유력시되었기까지 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푸틴]]이 [[러시아 총리|총리]]로 등극하고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한 뒤로는 세가 약화되어 그냥 일개 [[야당]]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래도 명색은 제1[[야당]]이기는 하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우크라이나 공산당]]과 [[우크라이나 사회당]]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시 우크라이나 경제 정책의 실패로 인해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일면서 공산당이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세력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반 쿠치마 야당 역할을 하였고, 이 시기에는 친 서방 정당들과 연합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대선을 기점으로 해서 서부가 [[친서방]] 자유주의 정당이, 동부에서는 [[친러]] 중도파 정당인 [[지역당]]이 세를 갈라먹으면서 중견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에는 연립정당으로 장차관직을 몇개 얻기도 했으나, 유로마이단 이후로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해버렸고, 2015년 탈공산화법이 발효되면서 활동이 금지되었다. 이외에도 구 소련권 각국에서 소련시절에 대한 향수나 공산당 이름을 내건 정당은 있지만 이 중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서 집권에 성공한 정당은 몰도바 공산당 정도 하나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경제성장의 성공으로 꽤 오랜기간 집권했으나 2010년대에는 타 정당에게 지지세를 빼았겨서 군소정당에 머물고 있으며, 나머지는 집권한다해도 연립정당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수준에 그치며, 발트3국과 우크라이나처럼 금지된 나라도 있다. [[2001년]]에는 구 소련 [[구성국]] 공산당의 연합체인 소련 공산당(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이 결성되었다. 소련 공산당의 이름과 정확히 같지만 [[이름]]만 같고 [[성격]]은 다르다. 재밌게도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여기의 회원이 아니고, 대신 다른 러시아 내 군소 공산당들이 여기의 회원으로 있다. 현재 구소련권의 나라 중 [[블라디미르 푸틴|독]][[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재]][[알략산드르 루카셴카|자]][[이슬롬 카리모프|들]]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적이 있다. 사실 구 소련권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라해도 젊은 시절에는 공산당에 가입해서 활동을 한 [[정치인]]은 많다. 이 당시 공산당이 [[엘리트]]들의 집합소였기 때문에, [[출세]]를 하려면 공산당에 입당하는것이 유리했다. 거기에다가 야당들이 결성된것이 1989~1990년이었고, 그 이전에 활동했던 재야활동가들이 아닌 이상 정치활동을 하려면 공산당에서 하기 마련이었다. 당장 [[소련 해체]]를 주도하던 보리스 옐친과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가 소련 공산당 출신이었고, 반소련/반러 감정이 심한 발트 3국도 마찬가지로 에스토니아의 초대 총리인 에드가 사비자르, 리투아니아 초대 대통령인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 라트비아 2대 총리인 발디스 비르카브스 등이 공산당 출신 인물이었다. == 역대 [[서기장|최고지도자]] == [include(틀:역대 소련 최고지도자)] 레닌은 [[서기장]]이라는 직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집권하였으며, 스탈린 집권 이후 서기장직이 신설되었다. 스탈린은 퇴임하며 서기장직을 폐지하였고, [[말렌코프]][* 말렌코프는 [[트로이카]] 성립을 위해 제1서기직을 집권 일주일 정도만에 흐루쇼프에게 양도하였는데, 이는 훗날 [[흐루쇼프]]에게 정권을 도전받는 계기가 된다.]와 흐루쇼프는 '''제1서기'''라는 이름으로 서기장직을 대신하였다. 브레즈네프 집권 후 1966년에 다시 서기장으로 환원되어 [[소련 붕괴]]시까지 유지된다. 2022년 8월 30일, 소련 최후의 최고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망함으로써 소련의 최고지도자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당 [[조직]] == 소련 공산당은 [[혁명]]을 준비하던 시기 때부터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대숙청]], [[제2차 세계대전]]과 [[페레스트로이카]], [[소련 해체]]까지 굴곡진 [[역사]]를 겪어온 만큼 워낙 구조가 많이 변했다. 다음은 소련 중, 후반기에 정리된 대략적인 구조다.[* 이후 등장한 [[공산권]] 국가들도 대부분 조직구조를 그대로 따라했다. [[북한]], [[중국]], [[베트남]]과 같은 현존 공산권 국가들의 구조도 당대회-중앙위원회-정치국으로 내려가는 중앙당 구조와, [[지방자치]]를 담당하는 지방당이 중앙당에 지배를 받는 구조, 감사위원회나 서기처 등 거의 비슷하다.] * '''[[소련 공산당대회]] (Съезд КПСС)''' 소련 공산당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 [[1898년]]부터 [[1991년]]까지 총 28번 개최되었으며, 위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명실 상부한 '''소련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다. [[스탈린]] 시기까지는 [[정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었으나, 스탈린 사후 5년을 두고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 대회에서는 전반적인 당의 운영노선과 중앙위원회를 선출했다.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Центральный Комитет КПСС)''' 소련 공산당 [[전당대회]]에 선출되어, 전당대회가 없는 평상시 당의 운영을 책임졌던 기관. 소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뽑힌 당의 지도부... 이기는 했지만 사실 정치국에 가려 빛을 많이 못봤다. 물론 그래도 당의 실무를 담당하고 조율한다는 점에서 나름 영향력있는 기관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당이나 국가 내 중요한 직책은 전부 '''정치국''' 출신이 독점하다보니 사실상 당의 실무를 조율하는 기관에 가까웠다. 그래도 정치국이 소속된 기관이라는 점에서 나름 최고 권력이라면 [[권력]]이었다. [[흐루쇼프]]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치국 기반의 [[정변]](?)을 중앙위원회에서 뒤집기도 했다. 중앙위원회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드러내는 [[인물]]이 모인 [[부서]]는 '''정치국(Политбюро)''', 당의 [[행정]]이나 [[재정]], 기타 실무 쪽을 주로 맡는 부서는 '''사무국(또는 서기국, Секретариат)'''으로 분류했다. 이 서기국의 수장이었던 [[서기장]]이 수장 격이긴 해도 [[UN 사무총장]]보다도 못한 권력으로 일반적인 사무업무만 맡다가,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도 하에 서기국의 수장이 정치국에서 점점 영향력을 높이더니 중앙위원회의 수장이 되고, 나아가 소련 공산당의 수장이 되며 [[권력]]이 급성장한 것이다.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Политбюро ЦК КПСС)''' 말그대로 '''소련 [[권력]]의 핵심.''' [[1952년]]부터 [[1966년]]까지는 '''상무회(Президиу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옛날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 누군가가 정치국원이었다는 것은 [[권력]]의 최종 핵심부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소련에서 '''[[서기장]]'''을 포함해, [[소련 장관회의|장관회의]] [[주석]]이나 [[소련 최고회의|최고회의]] 주석, 심지어 나름 이름을 알린 [[정치인]] 중 정치국 출신이 아닌 인사는 매우 드물었다. 심지어 '''정치국원 후보(Кандидат члена Полибюро)'''까지 따로 선출해서 둘 만큼 정치국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누구보다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즉, '''차기 [[서기장]] 후보'''이거나 '''[[서기장]]의 최측근들'''이 포진한 권력의 핵심부가 '''정치국'''이었다. [[파일:Politburo_CPSU_1989.jpg]] ▲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들의 사진(1989년) * '''소련 공산당 중앙감찰위원회 (Центральная контрольная комиссия КПСС)''' 중앙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당 대회에서 선출되어, 당 내에서 당원들의 당규 위반, 혹은 도덕적 타락, [[사기]], 권력 남용과 같은 [[범죄]]들을 감시하고 심판하였던 기구. [[현대]]의 정당으로 따지면 당기위, 윤리위원회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중앙감찰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은 중앙위원회 대의원이 될 수 없었고, 이러한 [[감찰]] 구조로 인해 소련의 경영체계 품질 향상을 꾀했다. * '''소련 공산당 중앙감사위원회 (Центральная ревизионная комиссия КПСС)''' 소련 공산당 내부의 [[감사]]를 위한 기구. 중앙감찰위원회와는 다르게 중앙감사위는 [[예산]]과 같은 당 내 [[재정]] 문제에 목적을 맞췄고, 당 대회에서 재무보고를 담당하였다. 제 3대 중앙감사위원장 미하일 블라디미르스키는 중앙감사위의 목적을 '중앙위원회 사무국의 재무 관리를 확인, 사건의 적시성이나 정확성을 기준으로 하여 중앙위원회 사무국의 업무를 감사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총 37명의 위원이 당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되었다. * 당내 [[교육기관]] 이렇게 소련 공산당은 소련 내에서도 워낙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보니, 독자적인 [[학교]]와 [[연구소]]를 소유할 만큼 세가 강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Институт Марксизма-Ленинизма)라던지 당상급학교(Высшая партийная школа)를 [[운영]]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다듬고 차기 당을 이끌어갈 엘리트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켰다. * 당 상급학교(Высшая партийная школа) 당 상급학교는 당 운영을 위한 인물 양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입당한 지 3년이 넘은 당원이 지역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입학]]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중앙위원회 산하 당 상급학교를 비롯, 15개 국가 내의 당 중앙위원회가 직속으로 설립한 당 상급학교, 그리고 각 지역당마다 설립한 당 상급학교가 존재하였다. 커리큘럼은 2년제와 4년제로 분류되었고, [[경제]]나 [[역사]] 위주의 커리큘럼이었으나, 이외에도 마르크스 [[철학]]이나 조직사업, [[외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위주.]등을 공부하였다. * [[아동]] 및 청년기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 역시 [[유아]], [[청소년]]들의 이념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옥타브랴타]], [[피오네르]], [[콤소몰]]로 이어지는 공산당 내 청년기관이었다. 보통 공산당에 가입한 [[소련인]]은 7세부터 9세까지는 옥탸브랴타, 9세부터 14세까지는 피오네르, 14부터 28세까지는 콤소몰, 그 이후부터는 정규 당조직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 지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를 제외한 소련의 14개 [[공화국]]들은 소련공산당 지부를 두고 있었으며, '''공화국 국명+공산당''' 명칭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소련공산당 우크라이나 지부'''는 '''우크라이나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각 공화국 공산당들은 소련 공산당과는 별도의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14개 공화국 출신의 소련 정치인들은 우선 공화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능력]]을 인정받아 소련공산당으로 진출하는 방식의 테크트리를 탔다. 소련의 대부분을 차지해 사실상 소련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러시아 SFSR|러시아]]는 소련 공산당의 직할통치를 받다가 [[1990년]]에 '''[[러시아 SFSR]] 공산당''' 창당이 허용되었으나, 1년뒤에 소련 공산당 보수파가 [[8월 쿠데타]]라는 [[자폭]]을 저지르는 바람에 소련 공산당이 해산당하자, 러시아 SFSR 공산당을 비롯한 개별 공화국 공산당들도 해산당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공산당 시절과 다른 당명으로 재창당한 경우도 있고, 다시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당한 경우도 있다. * [[러시아 SFSR]] 공산당 -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계승[* 사실상 소련 공산당 전체의 적통 후계자나 다름 없다.] *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 - [[우크라이나 사회당]][* 소련 공산당이 해산되자 [[올렉산드르 모로즈]]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원들이 [[1989년 동유럽 혁명|먼저 공산정권이 무너진 동구권 국가들]]의 옛 공산당들이 [[사회당]]으로 재창당한 것을 [[벤치마킹]]하여 창당했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합법정당으로 활동했으나, 외교적으로 [[친러]]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다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법화되었다.]과 [[우크라이나 공산당]][* [[1993년]]에 우크라이나에서 공산당 창당이 재합법화되자,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원들과 일부 사회당 탈당파가 함께 창당했다. [[199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199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페트로 시모넨코 [[서기장]]이 [[결선투표]]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에게 패하여 낙선했고, 이후에는 친러 [[빅 텐트]] 정당인 [[지역당]]에게 지지 기반을 빼앗겨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1년 후인 [[2015년]]에 불법화되었다.]이 계승 * [[벨라루스 SSR]] 공산당 - [[벨라루스 공산당]]이 계승[* 현재 [[루카셴코]] 대통령을 지지하며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 [[몰도바 SSR]] 공산당 - [[몰도바 공화국 공산당]][* [[2000년대]]에 블라디미르 보로닌 대통령을 당선시키면서 '''단독 집권'''까지 성공했지만, [[2010년대]]부터는 [[몰도바 공화국 사회주의당]]에게 지지 기반을 빼앗겨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상태다.] * [[카자흐 SSR]] 공산당 - [[카자흐스탄 공산당]]이 계승 * [[투르크멘 SSR]] 공산당 -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이 계승[*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당명만 민주당으로 바꼈을 뿐 독재정당인 건 공산당 시절과 마찬가지인데다]], [[1989년]] 이전의 소련처럼 [[일당제]]로 회귀하여 [[반동(정치)|오히려 소련 말기보다도 민주주의가 퇴보했다.]] 그러다가 [[2008년]]에 [[야당]] 창당을 합법화하여, [[투르크메니스탄 농민당]]과 [[투르크메니스탄 상공업자기업가당]]이라는 야당이 생겼지만 [[구색정당]]에 불과해서 [[일당우위제|실질적으론 일당제 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최근에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대통령]]의 아들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가 후임 대통령에 당선되어 '''[[독재자/세습|부자 세습까지 성공]]'''함으로써, 그냥 소련 시절보다도 후퇴한 정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까지 전락했다.] == 관련 [[문서]] == * [[소련]] * [[소련군]] * [[러시아 연방 공산당]] * [[러시아 혁명]] * [[사회주의]] * [[공산주의]] *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 [[소련 공산당(동음이의어)]] * [[https://en.wikipedia.org/wiki/Template:Communist_Party_of_the_Soviet_Union|소련 공산당 조직 구성]] == 둘러보기 == [include(틀:소련 관련 문서)] [[분류:소련 공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