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사)] [목차] == 개요 == 邵成章 [[북송]] 시기의 환관. == 생애 == 소성장은 [[흠종]]이 재위할 때 환관이었는데, [[정강의 변]]으로 수도인 개봉부가 함락당하고 흠종이 [[금나라]]에게 사로잡혀 청성(靑城)으로 끌려들어가자, 소성장은 흠종의 황태자 [[조심(송)|조심]]을 호위하여 선덕문으로 나아가 대리청정을 주관하라는 명을 받았다. 하지만 태자 조심마저 금나라에게 붙잡히자 소성장은 개봉부에 남았다. [[휘종(송)|휘종]]의 서자인 강왕(康王) 조구(趙構)가 장차 남경에서 즉위하려고 할 때 [[소자성헌황후]]는 소성장을 남경으로 보냈고, 뒤에 소성장은 고종을 따라 양주(揚州)에 당도하였다. 강왕 조구는 황제로 즉위하여 [[남송|송나라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나간다]]. 하지만 당시 정강의 변 이후 금나라는 섬서로와 경동로를 약탈하고 있었고 산동에서는 도적들이 봉기하였지만 고종의 권신인 [[황잠선]](黃潛善)과 왕백언(汪伯彦)은 이를 은폐하였다. 소성장은 상소를 올려 황잠선과 왕백언의 죄에 대해 극론하였다가 [[고종(송)|고종]]의 분노를 사서 제명을 당하고 남웅주(南雄州)로 귀양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시어사(侍御史) 마신(馬伸)은 “소성장이 글을 올려서 죄를 얻었다니, 지금이 무슨 때인데 상소로 꺼리는 것인가?”라고 한탄하였다. 고종은 소성장의 충직함을 생각하여 소성장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했지만 다른 환관들에게 가로막혀, 소성장은 홍주(洪州)에 머물렀다. 금나라에서는 소성장의 이름을 듣고 소성장을 찾아가 그를 등용하고자 “공의 충정을 알고 있으니, 능히 우리 주군을 섬길 수 있다면 앉아서 부귀를 누릴 수 있소.”라고 말하였지만, 소성장은 제의를 거부하였다. 소성장이 제의를 거부하자 금나라 군대에서는 “소성장은 충신이로구나, 우리는 차마 소성장을 죽이지 못하겠다.”라는 말만 하고 금과 비단을 주고 떠났다. [[분류:송나라/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