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송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11년 사망]] [include(틀:역대 송(춘추시대) 군주)] |||||| '''{{{#ece5b6 송(宋)나라 23대 국군[br]{{{+1 소공}}}[br]昭公}}}''' || |||| '''[[성씨|{{{#ece5b6 성}}}]]''' |||| 자(子) || |||| '''[[본관|{{{#ece5b6 씨}}}]]''' |||| 송(宋) || |||| '''[[휘|{{{#ece5b6 휘}}}]]''' || 저구(杵臼) || |||| '''{{{#ece5b6 아버지}}}''' |||| [[송성공]](宋成公) 자왕신(子王臣)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11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19년 ~ 기원전 611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의 제23대 [[군주]]. [[송성공]]의 아들. [[송문공]]의 형. [[송성공]]이 죽은 뒤 그 아우 어가 송성공의 태자와 사마 공손 고를 죽이고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송 성공의 작은 아들 저구를 세우니 그가 바로 송 소공이다. 송 소공 9년(기원전 611년), 송 소공은 그 아우 공자 포가 그 할머니 왕희의 원조를 받아 그 공자 포의 무리에 의해 살해당했다. == 생애 == == 즉위 전 == 송 성공은 재위 17년 만에 죽자 4월 송성공의 아우인 공자 어는 송성공의 태자와 사마 공손 고를 제거했다. 그리고 송나라의 군주가 되었으나 곧 송나라 사람이 송공 어를 죽이고 태자의 동생인 공자 저구를 세우니 그가 바라 송 소공이다. == 즉위 후 == 송 소공 원년(기원전 619년), 송 소공은 송 양공의 부인 즉 송 소공의 할머니인 왕희[* 왕씨 성 쓰는 여자가 아니라 주나라의 [[왕녀]] 즉 [[공주]]라는 의미다.]에게 예우를 하지 않았다. 이에 왕희는 분노하여 대씨 일족의 힘을 등에 업고[* [[송대공]]의 자손들.] 송양공의 손자 공숙, 공손 종리와 대사마 공자 앙을 죽였다. 이들은 송 소공의 파벌이다.[* 즉 송 소공의 권력 기반이 왕희와 대씨 일가 때문에 날아간 셈이다.] 송 소공 2년(기원전 618년),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가 병사를 보내 [[정나라]]를 치자 정나라가 사신을 보내 [[노나라]]의 공자 수, [[진(춘추전국시대)|진(晉)나라]] 송나라,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 [[허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송 소공 3년(기원전 617년), 겨울 [[초목왕]]과 [[채장후]]는 군사를 거느리고 궐액에 주둔해 송나라를 치려했다. 송나라의 사구 화어사가 말했다. "초나라는 저희가 초나라를 따르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이 먼저 주도적으로 복종 의사를 표시했습니까? 그들이 하필 그 일을 들어 왜 저희들을 핍박하겠습니까? 저희들이 능히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그러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무슨 죄입니까?" 이에 송 소공은 친히 초 목왕을 맞이해 초나라 군대를 위로하며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초목왕은 망저 땅으로 데려가 사냥을 했다. 송 소공은 오른쪽, [[정목공]]은 왼쪽 진을 맡겼다. 그러나 송소공은 그것을 따르지 않자 초나라에서 송 소공에게 치욕을 주었다. 송 소공 4년(기원전 616년), 송나라 군대는 장구에서 장적을 물리쳤다. 그런데 사기에서는 이것이 송 무공 때의 일로 잘못 기록 되어있다. 송 소공 7년(기원전 613년), 6월 계유일 송 소공은 [[노문공]], [[진영공(규성)|진영공]](陳靈公), [[위성공]], 허나라 남작, [[조문공]], 진(晉)나라의 [[조돈]](趙盾)과 신성에서 회맹했다. 그 이유는 주(邾)나라를 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송나라의 고애가 소 땅을 지키는 장수인데 송 소공은 고애를 경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애는 송 소공이 불의하다는 것을 알고 사양하며 노나라로 달아났다. 송 소공 8년(기원전 612년), 3월 송소공은 사마 화우를 보내 노나라와 회맹했다. 11월 송 소공과 진 영공(陳靈公), 정 목공, [[허소공]], 조 문공과 호 땅에서 회맹했다. 그것은 소성의 회맹의 우호를 다지고,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를 치기 위해서였다. 제나라 사람이 진 영공에게 뇌물을 바치자 철군했다. 송 소공 9년(기원전 611년), 송 소공은 포악무도하여 송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다.[* 다만 송 소공 원년의 기사를 보면 그것보다는 권력 기반이 없어진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송 소공의 아우 공자 포가 인재를 아끼고, 능력과 야심이 뛰어났다. 공자 포가 외모가 준수해 왕희가 정을 통하려 했으나 공자 포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러나 애정은 남아서 그를 적극 후원했다.[* 단순히 개인의 후원으로 볼 수 없는 것이 그녀는 대씨 일족을 등에 업었으니 사실상 대씨 일족이 송 문공을 돕는 셈이다.] 그녀는 화원을 통해 공자 포와 위백과 함께 송 소공을 쳤다. 그리고 송 소공은 그들에게 죽었다. 그리고 아우인 공자 포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송 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