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송(춘추시대) 군주)] |||||| '''{{{#ece5b6 송(宋)나라 16대 국군[br]{{{+1 장공}}}[br]莊公}}}''' |||||||||| |||| '''[[성씨|{{{#ece5b6 성}}}]]''' |||| 자(子) || |||| '''[[본관|{{{#ece5b6 씨}}}]]''' |||| 송(宋) || |||| '''[[휘|{{{#ece5b6 휘}}}]]''' || 빙(馮) || |||| '''{{{#ece5b6 아버지}}}''' |||| [[송목공]](宋穆公) 자화(子和)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750년 ~ 기원전 692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09년 ~ 기원전 692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송(춘추전국시대)|송(宋)나라]]의 제15대 [[군주]]. [[송목공]](宋穆公)의 아들. [[송민공]], [[송공유]], [[송환공]]의 아버지. [[송양지인]](宋襄之仁)으로 유명한 [[송양공]](宋襄公)의 할아버지. 그는 아버지 송 목공의 유언으로 [[정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 생애 == === 탈법적인 즉위 === 송 상공 10년(기원전 710년), 송나라의 [[태재]](太宰) [[화독]](華督)이 [[송상공]]을 시해하고 그를 맞아들이니 그가 바로 송 장공이다. === 즉위 후 === 송 장공 원년(기원전 709년), 화독은 고(郜)나라에서 보낸 큰 솥을 [[노환공]]에게 주고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 [[정나라]]에 예물을 보내고 화독은 송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특히 정나라에서는 신세진 것에 대한 화답을 위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 정나라와의 갈등 === 송 장공 9년(기원전 701년) 봄에 송장공은 제나라,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 정나라와 회맹했다. 여름에 [[정장공]]이 죽자 [[채중(춘추시대)|제중]]은 세자 홀을 정백으로 모시니 그가 바로 [[정소공]]이다. 정소공의 아우 공자 돌이 송나라 여자 옹씨가 어머니였기 때문에, 송 장공은 정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신으로 온 제족[* 채중과 동일 인물]을 협박해 공자 돌을 세우라고 했다. 제족은 어쩔 수 없어서 공자 돌을 세워줬다. 그가 바로 [[정여공]]이다. 정 여공은 자신이 정나라의 [[백작]]이 되면 송장공에게 성과 예물을 주기로 약속했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즉위하고 나서는 입을 쓱 닦았다. 송 장공 10년(기원전 700년) 여름, [[노환공]]이 송나라와 정나라의 강화를 돕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가을에 그것을 실행했으나 송 장공은 그것을 역정을 내며 씹었다. 겨울에 구 땅에서 회맹했으나 송 장공은 약속한 물건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화 제의를 거절했다. 노 환공은 정 여공과 함께 송나라를 쳤다. 송 장공 11년(기원전 699년), 송 장공은 약속한 물건을 주지 않는 [[정나라]]와 [[노나라]] 연합군에 맞서고자 제나라, 위나라,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와 함께 정나라와 싸웠으나 탈탈 털렸다. 송 장공 12년(기원전 698년) 겨울, 송 장공은 그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제나라, [[채나라]], 위(衛)나라, 진(陳)나라 등 4개 국과 연합해 정나라를 쳐 정나라의 동문에 이르러 그 문을 불사르고 신정성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쪽 교외를 쳐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정나라 궁전의 서까래를 약탈하는 굴욕~~[[관광]] 플레이~~을 안겨주었다.[* 그 서까래는 송나라의 노문이라는 성문을 장식하는데 썼다고 전해진다.] 정나라는 한번의 거한 패배로 말 그대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 것이다. 송 장공 13년(기원전 697년) 겨울, 송 장공, 노 환공, [[위혜공]], [[진장공(규성)|진장공]](陳莊公)이 이 땅에서 정나라를 치려 했다. 그러나 실패하여 각기 회군했다. 송 장공 14년(기원전 696년) 정월, 송 장공은 노 환공, 채 환후, 위 혜공과 조나라에서 만나 회맹하여, 함께 정나라를 칠 것을 맹세했다. 4월에 송나라, 노나라, 위나라, 진(陳)나라, 채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쳤다. 송 장공 15년(기원전 695년), 송장공이 위나라와 함께 주(邾)나라를 쳤다. 송 장공 19년(기원전 692년) 12월 을유일, 송장공이 죽고 그 아들 자첩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송 민공이다.[* 송 후민공이라고도 한다.] [각주] [[분류:송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750년 출생]][[분류:기원전 69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