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송(춘추시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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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e5b6 송(宋)나라 33대 국군[br]{{{+1 후환공}}}[br]後桓公}}}''' ||||||||||
|||| '''[[성씨|{{{#ece5b6 성}}}]]''' |||| 자(子) ||
|||| '''[[본관|{{{#ece5b6 씨}}}]]''' |||| 송(宋) ||
|||| '''[[휘|{{{#ece5b6 휘}}}]]''' || 벽병(辟兵) ||
|||| '''{{{#ece5b6 아버지}}}''' |||| [[송휴공]](宋休公) 자전(子田)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62년 ~ 기원전 356년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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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송(춘추전국시대)|송(宋)나라]]의 제33대 [[군주]]. [[송휴공]]의 아들. 송씨 송나라의 마지막 군주. 그는 [[송대공]]의 자손인 대씨의 우두머리 [[척성군]]의 공격을 받아 폐위되어 서민으로 강등당한다. 사기에는 시호가 벽공(辟公)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고, [[척성군]]과 [[송강왕]]이 송 후환공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 생애 ==
=== 사기의 기록 ===
사기에는 송휴공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벽공(후환공)이 즉위하고, 벽공이 재위 3년만에 사망하자, 그 아들인 척성군(剔成君)이 그 뒤를 이었다고 기록되었다. 그 기록의 원문은 이렇다.
>休公田二十三年卒, 子辟公辟兵立. 辟公三年卒, 子剔成立.
>휴공 전이 재위 23년 만에 죽고, 아들 벽공(후환공) 벽병이 즉위했다. 벽공이 재위 3년 만에 죽고, 그 아들인 척성군이 즉위하였다.
=== [[죽서기년]]의 기록 ===
송 후환공 7년(기원전 356년), 척성군은 송 대공의 후손이자 송 후환공의 신하로 송 후환공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씨가 송나라의 공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렇게 송씨 송나라는 종언을 고한다.[* [[위평후]] 이후의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도 같은 처지다. 위씨에서 자남씨로 공족이 갈려나갔다. 그러나 그 쪽은 [[전국칠웅]]인 [[위(전국시대)|위(魏)나라]]의 왕인 [[양혜왕]]이 [[위성후]]를 죽이고 아들이 없어 자남씨를 대신 세워버려서 처지가 다르다.]
[각주]
[[분류:송나라의 군주]][[분류:폐위된 군주]][[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