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군]] [목차] [clearfix] == 개요 == 守禦廳 [[조선]]의 [[오군영]]을 구성하던 [[군영]]. [[남한산성]]을 방비했다. 1626년 인조 때 수어청을 설치하여 남한산성을 수비하였다. == 역사 == [[광해군]] 때 [[경기]][[병마절도사|병사]] 겸 [[총융청|총융사]]였던 [[이서(1581)|이서]]의 관할 하에서 남한산성의 축조를 담당했으나 [[병자호란]] 이후 독립적인 군영으로 분리되어 수하에 수어청을 설치하게 된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정묘호란]] 때 독립적인 군영이 됐으며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 방어를 전담하게 된다.] [[남한산성#s-3.3]]의 가장 높은 곳에 수어장대(守禦將臺)가 있다. 수어청의 대장은 수어사(守禦使)였다. 수어청은 약 1만 6,500명의 병력을 보유하였으며, 이들의 주요목표는 남한산성의 방위였다. 초기에는 본부가 도성 북부에 설치되고, 한성부윤이 수어청의 업무도 겸하되, 주요 방어거점인 남한산성은 [[광주시|광주]][[부윤]](종2품)이 운영하였다. 이런 지휘계통의 이원화는 당연히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덧붙여 정조가 자신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에 힘을 몰아주기 위한 정치적 포석도 수어청의 개혁에 한 몫 했다.] 거기다 [[붕당]]이 극심화되면서 특정 당파의 군사력 독점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정조(조선)|정조]]는 1795년 본부를 아예 남한산성으로 옮기고 광주[[유수]](정2품)가 수어사를 겸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한성]]에 있던 수어청은 [[호조(조선)|호조]]로 편입되었다. 수어청은 1795년 정조가 [[장용영]]을 만들면서 통째로 흡수되었다가, 정조 사후 [[장용영]]이 공중 분해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물론 예하 병력 대다수가 각 고을 소속이나 [[속오군]]화되어 ~~군기가 빠져~~ 없는 것이나 다름 없던 수어청이었으나, 정조 이후에는 아예 수어사가 광주유수 겸임으로 바뀌어 독자적인 지휘체계를 갖지 못하게 되고, [[군영]]으로서의 성격을 잃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지못미하게도 '''최초로 철폐된 [[오군영]]의 [[군영]]'''이 되기에 이르렀다. == 복식 == [[파일:청전복.png]] 수어청의 군사들은 당시 조선군의 표준 복장이였던 전립과 청전복[* 마병의 경우 홍색 소매]을 착용하였으며 갑옷은 입지 못했던것으로 보인다.(기록에 없음)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오군영, version=211, paragraph=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