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공자 가문 군주)] ||||<:><-3>
{{{#ffffff '''청 추존왕'''}}} [br] {{{+1 {{{#ffffff '''啓聖王 | 계성왕'''}}}}}}|| ||||<:>'''{{{#white 시호}}}'''||계성왕(啓聖王) || ||||<:>'''{{{#white 성}}}'''||자(子)|| ||||<:>'''{{{#white 씨}}}'''||공(孔)|| ||||<:>'''{{{#white 휘}}}'''||숙량흘(叔梁紇) / 추인흘(郰人紇) / 추숙흘(鄹叔紇) || ||||<:>'''{{{#white 생몰}}}'''||기원전622년 ~ [[기원전 549년]] || ||||<:>'''{{{#white 직업}}}'''||대부(大夫) || ||||<:>'''{{{#white 가족}}}'''||부왕: [[공백하|창성왕]](昌聖王)[br]아내: 시씨(施氏), 안징재(顔徵在)[br]아들: [[맹피]], [[공자]] || [목차] [clearfix] == 개요 == [[공자]]의 아버지다.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창성왕(昌聖王)으로 추봉된 공백하(孔伯夏)의 아들. 휘가 흘 자가 숙량이다. 다른 이름은 추인흘(郰人紇), 추숙흘(鄹叔紇). 시호는 계성왕(啓聖王).[* [[청나라]]의 [[옹정제]] 추봉(1724).] == 생애 == 숙량흘 자체의 기록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용감하고 무예를 갖췄으며 완력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노양공]]의 재위기간 때 추읍의 대부(大夫)의 관직을 얻었다. 양공 10년 [[진(춘추전국시대)|진]](晉)이 제후의 군사와 함께 노나라를 공격했을때 아래로 내려오는 성문을 팔로 받쳐 아군을 달아나게 했었고 양공 17년엔 [[제(춘추전국시대)|제]](齊)의 군사에 포위된 장흘을 자신 외의 2명과 함께 제군을 돌파하여 장흘을 호송했다. 아내는 시씨(施氏)와 안징재(顔徵在), 첩 하나로 시씨와의 사이에 딸 아홉, 첩한테 아들 [[맹피]]를 낳았으나 맹피는 절름발이라 대를 잇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숙량흘은 66살에 10살의 안징재(顔徵在)를 부인으로 들여 71살에 야합하여 72살에 [[공자]]를 낳는다. 이후 [[기원전 549년]] 사망했다. [[분류:춘추전국시대/인물]][[분류:기원전 622년 출생]][[분류:기원전 549년 사망]][[분류:추존된 왕]][[분류: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