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송 황태후)] [목차] == 개요 == ? ~ 1279년 중국 [[남송]]시대의 숙비. == 생애 == 궁에서 선발되어 미인으로 입궁했다가 함순 3년(1267년), [[도종(송)|도종]]의 숙비가 되었다. 당시 남송은 원나라와의 40여 년에 걸친 공방전으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남송과 몽골 제국 간에 벌어진 40여 년의 전투는 양양 공방전에서 양양이 함락되면서 원나라에게 승세가 기울었고 남송의 방어선이 줄줄이 무너지며 1276년에는 임안이 함락되어 [[공종(송)|공종]], 태황태후였던 [[황후 사씨(이종)|사태후]], 태후였던 [[황후 전씨(남송)|전 황후]], 남송 조정과 황실이 쿠빌라이에게 항복하고 뒤이어 대도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장세걸]]과 [[육수부]] 등 일부 군인과 관료들은 남송 부흥을 내걸고 [[도종(송)|도종]]의 남은 아들들인 조하와 조병, 숙비 양씨 등 을 데리고 남쪽으로 계속 도망치며 [[몽골 제국군]]에 항전 의지를 보인다. 장세걸과 육수부는 1276년에 숙비 양씨의 소생인 [[단종(송)|조하]]를 황제로 옹립하고 몽골군에 계속 항전하였다. 숙비 양씨는 이때 단종의 황태후가 되어 남송 부흥군과 함께 도망치면서 항쟁을 이어나갔다. 이후 남송 부흥군은 애산으로 가던 도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였고, 단종은 그 과정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1278년에 조하의 이복동생인 [[소제(송)|조병]]이 황제로 즉위하여 [[애산 전투|애산에서 마지막 항전을 계속하지만]], 남송의 패색은 짙어졌고 결국 1279년에 소제는 신하들과 함께 바다에 투신하였다. 애산 전투의 대패로 남송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같은 해에 단종의 태후였던 숙비 양씨는 애산 전투에서 남송이 패배하고, 소제가 바다로 투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여 스스로 바다로 뛰어내려 죽음을 맞았다. 다음은 투신하기 직전 양씨가 남긴 유언이다. >내가 온갖 고난과 위험을 겪으면서도 죽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조씨(趙氏)의 종사에 아직 희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거늘, 지금 천명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 둘러보기 == [include(틀:송사)] [[분류:송나라의 황후]][[분류:1279년 사망]][[분류:중국의 자살한 인물]][[분류:익사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