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분류:1506년 사망]][[분류:참수된 인물]] [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조선 연산군의 후궁[br]{{{+1 숙원 김씨 | 淑媛 金氏}}}'''}}} || || '''출생''' ||미상 || ||<|2> '''사망''' ||[[1506년]] [[9월 22일]]^^([[음력]] [[9월 2일]])^^ || ||[[조선]] [[한성부]] 군기시 앞 || || '''휘''' ||귀비(貴非) || || '''부모''' ||부친 - 생불(生佛) || || '''부군''' ||[[연산군]] || || '''자녀''' ||없음 || || '''봉작''' ||'''숙원(淑媛)'''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연산군]]의 [[후궁]]. 이름은 김귀비(金貴非)이다. 아버지는 생불(生佛)이라는 사람으로 가계에 대해 더이상 알려진 바 없다. 언제 어떻게 연산군의 후궁이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전까지 연산군의 총애를 받으며 전횡을 휘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 생애 == 《[[중종실록]]》에서는 신하들이 김씨의 종 말응삭(末應朔)이 남의 집 재산을 빼앗고, 사람을 다치게 하였으며, 의롭지 못한 행동을 많이 하였으니 치죄하라고 주청한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3일 기묘 1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109003_012|#]] ] 또한, 시간이 많이 흐른 1544년(중종 39)에도 '연산군의 후궁 김숙원의 아비 생불(生佛)이 세력을 믿고서 전답과 노비를 빼앗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연산군의 총애를 믿고 상당한 악행을 저지른 모양이다.[* 중종실록 102권, 중종 39년 4월 17일 을유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3904017_002|#]] ] >대신 등이 모두 아뢰기를, >"숙용(淑容) [[장녹수]](張綠水)·숙용(淑容) [[숙용 전씨|전전비]](田田非)·숙원(淑媛) 김귀비(金貴非) 등 세 사람은 모두 화근의 장본인이니, 마땅히 속히 제거하여야 합니다." 하니, 그리하라고 전교하였다. 모두 참형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하였다. >---- >《중종실록》 중종 1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그의 후궁들도 마찬가지로 지은 죄에 맞는 처분을 받았다. 이때 장녹수, 전전비와 함께 처형되었으며 가산은 적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