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분류:김해 김씨]][[분류:1814년 출생]][[분류:1895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ffd400 '''숙의 김씨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대한제국의 후궁(태조 ~ 고종))]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73679, #403F95 20%, #403F95 80%, #373679); color: #FFD400" '''대한제국 헌종의 후궁[br]{{{+1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조선 헌종의 후궁[br]{{{+1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서삼릉숙의묘역.jpg|width=100%]]}}} || ||<-2> {{{#ffd400 {{{-2 서삼릉 후궁 묘역 전경}}} }}} || || '''출생''' ||[[1814년]] [[1월]] || || '''사망''' ||[[1895년]] [[11월 12일]] (향년 82세) || ||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 ||<|4> '''재위기간''' ||'''{{{#ffd400 조선 궁인}}}''' || ||[[1848년]] 이전 ~ [[1895년]] [[1월 12일]] || ||'''{{{#ffd400 대조선국 궁인}}}''' || ||[[1895년]] [[1월 12일]] ~ [[1895년]] [[11월 12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김해 김씨]] || || '''부모''' ||부친 김학성(金鶴聲) || || '''배우자''' ||[[헌종(조선)|헌종 성황제]] || || '''자녀''' ||'''슬하 1녀''' 장녀 - 옹주(翁主, {{{-3 1848}}}) || || '''봉작''' ||궁인(宮人) → '''숙의(淑儀)''' || || '''당호''' ||'''화락당(和樂堂)'''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헌종(조선)|헌종]]의 [[후궁]]. 아버지는 김학성(金鶴聲)이며 어머니는 알 수 없다. 본래 [[궁녀]] 출신으로 슬하에 딸 하나가 있었으나 옹주로 봉작받기 전에 일찍 죽었고, 이 딸이 헌종의 유일한 자식이다.[* 헌종실록 1권, 총서. [[http://sillok.history.go.kr/id/kxa_000|#]] ] 현재 [[서삼릉]] 묘역에 숙의 김씨와 그녀가 낳은 딸의 묘소가 있다. == 생애 == 1848년(헌종 14) 헌종의 유일한 딸을 낳았지만, 생후 일 년도 되지 못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정식 후궁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듬해 헌종이 승하하면서 그대로 궁인의 처지로 남은 듯. 사후, [[고종(대한제국)|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2품 숙의(淑儀)로 봉작되었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헌종조(憲宗朝)에 승은(承恩)을 입은 궁인(宮人) 김씨(金氏)에 대해서 지난날 이해를 생각하니 특별히 은전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숙의(淑儀)로 봉작(封爵)하라." 하였다. >---- >《[[고종실록]]》 고종 43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