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조선 연산군의 후궁[br]{{{+1 숙의 이씨 | 淑儀 李氏}}}'''}}} || || '''휘''' ||정이(貞伊) || || '''출생''' ||[[1480년]]대 초반 || || '''사망''' ||[[1507년]] 이후 ~ [[1520년]] 이전 || ||<|4> '''재위기간''' ||'''{{{#gold 조선 숙원}}}''' || ||미상 || ||'''{{{#ffd400 조선 숙의}}}''' || ||미상 ~ [[1507년]] 이후 ~ [[1520년]] 이전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양성 이씨]][* 일시중파 11세] || || '''부모''' ||부친 - 이공(李拱) 적모 - [[봉화 금씨]] 금이간(琴以間)의 장녀 생모 - 미상 || || '''형제자매''' ||{{{#!folding 5남 3녀 중 서장녀 [ 펼치기 · 접기 ] 이복 오빠 - 이원수(李元守, {{{-3 1456 ~ 1521}}}) 이복 오빠 - 이인수(李仁守) 이복 오빠 - 이흠수(李欽守) 이복 자매 - 남의원(南義元)의 처 친오빠 - 이형수(李亨壽) 친오빠 - 이칭수(李稱壽 또는 李稱守) 친여동생 - 고안정(高安正)의 측실 }}} || || '''배우자''' ||[[연산군]] || || '''자녀''' ||'''슬하 1남'''[br]아들 - [[양평군(조선)|양평군]](陽平君, {{{-3 1498 ~ 1506}}}) || || '''봉작''' ||숙원(淑媛) → '''숙의(淑儀)'''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연산군]]의 [[후궁]].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이공(李拱)이고, 적모는 [[봉화 금씨]] 금이간(琴以間)의 딸이나 생모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중종실록]]》에서 이공의 정실 부인인 금씨가 숙의 이씨를 가리켜 '가옹(家翁)의 첩 딸'이라고 말하고 있고, 《[[연산군일기]]》에서 숙의 이씨의 [[동복형제|동복오빠]]들을 '첩자(妾子)'라고 썼기 때문에 숙의 이씨는 서녀로 추측된다. 참고로 그녀의 조부는 [[세종(조선)|세종]] 대에 천문학자로 활동한 [[이순지]](李純之)이다. 이름은 정이(貞伊)로 나이 11세에 [[인수대비]]를 모시는 [[궁녀]]가 되었다가 당시 [[왕세자]]였던 연산군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 중종실록 16권, 중종 7년 8월 7일 무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708007_001|#]] ] 슬하에 연산군의 서장자 [[양평군(조선)|양평군]]을 낳았으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과 함께 몰락하였다.[* 1506년(중종 1) 9월 24일 양평군은 [[폐세자 이황]]과 함께 사사되었다. ] == 생애 == 1498년(연산군 4) 양평군을 낳았다. 비록 [[서자]]이지만, 중종반정때 까지 연산군의 자식들 중 영아 때 사망하지 않은 4남 3녀[* 폐세자 이황, 폐창녕대군, 폐양평군, 이돈수와 폐휘신공주, 이영수, 이함금]중 한 명으로 상당히 총애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1506년(연산군 12) 숙원으로 봉작되었고 나중에 숙의가 되었는데, 언제 숙의로 품계가 올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중종실록]]》에서 숙의(淑儀)로 표기하고 있다. 그녀는 후궁이 되면서 많은 혜택을 누렸다. 고관대작과 종친의 집을 하사받고, 이씨의 [[동복형제|동복오빠]] 칭수(稱壽)는 첩의 자식인데도 의과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 받았고, 종친인 고안정 이정(李精)[* 《만가보》에 따르면, [[효령대군|효령대군 이보]]→(효령대군의 3남) 보성군 이합(寶城君 李㝓)→(보성군의 5남) 물거군 이철(勿巨君 李徹)→(물거군의 1남) 고안정 이정(高安正 李精)이다. ]은 숙의 이씨의 아우가 용모가 추한데도 첩으로 삼아 그 세력을 믿고 횡포를 부리기도 하였다.[* 중종실록 18권, 중종 8년 4월 13일 신해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804013_001|#]] ] [[중종반정]] 직후 연산군의 후궁들을 두고 논죄할 때, "숙의는 사제(私第)로 돌아가게 하고, 숙용·숙원은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숙의 이씨 또한 친정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5일 신사 1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109005_012|#]]] [[분류:조선의 후궁]][[분류:양성 이씨]][[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