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공주]][[분류:1642년 출생]][[분류:1696년 사망]]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드라마 마의의 등장인물, rd1=숙휘공주(마의))] [include(틀:조선의 왕녀/중종 ~ 철종)]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51232, #94153e 20%, #94153e 80%, #751232); color: #FFD400" '''조선 효종의 왕녀[br]{{{+1 숙휘공주 | 淑徽公主}}}'''}}}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정제현숙휘공주묘.jpg|width=100%]]}}} || ||<-2> {{{#ffd400 {{{-2 숙휘공주·정제현 합장묘 전경}}}}}} || || '''출생''' ||[[1642년]]^^([[인조]] 20년)^^ [[3월 17일]] || ||<|2> '''사망''' ||[[1696년]]^^([[숙종(조선)|숙종]] 22년)^^ [[11월 21일]][br](향년 55세) || ||[[조선]] [[한성부]] 북부 순화방 [[창의궁]] || ||<|2> '''능묘''' ||숙휘공주·정제현 합장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1-39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전주 이씨]] || || '''부왕''' ||[[효종(조선)|효종]] || || '''모후''' ||[[인선왕후|인선왕후 장씨]] || || '''부군''' ||인평위 [[연일 정씨|정제현]] (寅平尉 鄭齊賢) || || '''자녀''' ||'''슬하 2남 1녀''' 장남 - 정인상(鄭獜祥)[* 국조인물고에 따르면, 효종이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 차남 - 정태일(鄭台一) 장녀 - 조졸 || || '''봉호''' ||'''숙휘공주(淑徽公主)'''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효종(조선)|효종]]과 [[인선왕후]]의 4녀. [[현종(조선)|현종]]의 여동생이고, [[숙종(조선)|숙종]]의 [[고모]]가 된다. == 생애 == === 혼인 === 1653년(효종 4) 12세의 나이로 우참찬 정유성[* 정유성은 [[정몽주|포은 정몽주]]의 9대손이다. ]의 손자이자 정창징의 아들인 정제현과 혼인하였는데, 숙휘공주의 가례 날은 하필 [[인조]]의 왕비 [[인열왕후]]의 기신(忌晨)이었다.[* 기신은 다른 말로 기일이라고 한다. 기신에는 술도 마시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 등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날이다. ] === 논란 === 이때에 나라 살림이 썩 좋은 형편도 아니었지만, 왕실에서는 여러 공주들을 위해 재화를 아끼지 않았다. 효종 대에 공주가 나가서 살 집을 크게 지으니, 시할아버지 정유성이 집을 크게 짓지 말기를 간청하여 효종이 70여 간으로 줄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법에 명시된 것보다 크게 지었다. 현종은 여동생 숙휘공주를 위해 군사 500명을 투입해서 집 수리를 시켰는데, 무더위에 군대를 동원해 일을 시키는게 말이 되냐는 비판을 받자 "이렇게 일할 곳이 많은데 5백명을 이틀만 일 시키는 것도 내가 생각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종실록]] 2권, 현종 1년 5월 24일 무인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ra_10105024_001|#]] ] 또 흉년이 극심하여 백성들이 죽었다는 보고가 잇달아 올라오는 와중에, 숙휘공주의 집을 짓겠다고 큰 공사를 벌여서 비판 받았다. 또한 [[평안남도]] [[용강군|용강현]]에 적통지라고 하는 둑이 있었는데, 이 둑은 백성의 논 수천 두락에 물을 댈 수 있었다. 공주가 이 둑을 무너뜨리고 전답을 만드려고 하는 바람에 놀란 관찰사가 "백성들 위해 둑이 있으니 못하게 하라"고 왕에게 아뢴 일도 있었다. === 과부가 되다 === 1662년(현종 3) 남편 정제현이 세상을 떠났고, 1685년(숙종 11) 아들 정태일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숙휘공주는 과부가 되어 살았다. 그런데, 정제현이 죽기 전에 인평위 일가가 [[저주]]에 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공주의 시할아버지 정유성이 호남을 순찰할 때, [[전주시|전주]] [[기생]] 설매에게 빠져 첩으로 들였다. 설매가 들어온 뒤, 정제현이 갑자기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니 [[인선왕후]]가 저주를 의심한 것이다. 사람을 시켜 집을 파헤치게 했더니 땅에서 온갖 더럽고 요사스러운 물건들이 나왔다. 그래서 나인 예금 등을 고문했는데, 중간에 말이 바뀌는 등 증언이 오락가락 하였고, 15세의 어린 나이로 13차례나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기생 설매는 일이 발각되자 진작 독약을 먹고 죽은 상황이었으므로 더이상 얻어낼 것도 없었고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현종실록 2권, 현종 1년 3월 17일 임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ra_10103017_001|#]] ] == 여담 == * 《공사견문록》에 따르면, 숙휘공주는 당시 유행이었던 수 놓은 치마 한 벌을 갖기를 소원했다. --지금으로 치면 명품-- 그래서 아버지 효종에게 간청했는데, 효종은 "임금은 검소함을 실천해야 한다"며 공주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너의 모친([[인선왕후]])이 대비가 되면 수 놓은 치마를 입더라도 허물이 되지 않을 테니,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 == 가족 관계 == * 부 : [[효종(조선)|효종]](孝宗, 1619 ~ 1659) * 모 :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1618 ~ 1674) * 언니 : [[숙신공주]](淑愼公主, 1634 ~ 1645) * 언니 : [[숙안공주]](淑安公主, 1636 ~ 1697) * 언니 : [[숙명공주]](淑明公主, 1640 ~ 1699) * 오빠 : [[현종(조선)|현종]](顯宗, 1641 ~ 1674) * 동생 : [[숙정공주]](淑靜公主, 1646 ~ 1668) * 동생 : [[숙경공주]](淑敬公主, 1648 ~ 1671) * 시부 : 공조정랑 정창징(鄭昌徵, 1615 ~ 1664) * 시모 : [[남양 홍씨]](南陽 洪氏) - 홍익한(洪翼漢)의 딸 * 남편 : 인평위 [[연일 정씨|정제현]](寅平尉 鄭齊賢, 1642 ~ 1662) * 장남 : 정인상(鄭獜祥, 조졸) * 차남 : 정태일(鄭台一, 1661 ~ 1685) * 며느리 : [[덕수 이씨]](德水 李氏) - 한성부판윤 증 영의정 이광하(漢城府判尹 贈 領議政 李光夏)의 딸, [[심지원]]의 외손녀, 즉 [[숙명공주]]의 시질녀 * 장녀 : 조졸 [[분류:조선의 공주]][[분류:1642년 출생]][[분류:169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