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이탈리아 함선)] ||
[[파일:MS_Augustus.jpg|width=100%]] || [[파일:RN_Sparviero_affondato_a_Genova.jpg|width=90%]] || || 항공모함 개조 이전 여객선 아우구스투스 || 1944년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제노바 항 입구에서 자침한 항공모함 스파르비에로. || ||<-2> {{{#f1f2f1 '''RN Sparviero'''}}} || [목차] == 개요 ==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개조 항공모함 설계안 '''스파르비에로(Sparviero)'''.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여객선을 바탕으로 제작을 시도한 개조 항공모함으로, 실제로 개조가 일부 진행되었으나 끝내 제대로 완공되지 못하고 1951년 폐기되었다. 이름인 스파르비에로는 이탈리아어로 [[새매]]를 뜻한다.[* 같이 건조되었던 항공모함 [[아퀼라(항공모함)|아퀼라]]의 이름이 [[검독수리]]를 뜻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항모 이름에 조류 이름을 붙은 것으로 보인다.] == 제원 == || 기준 배수량 ||30,418톤 || || 만재 배수량 ||불명 || || 전장 ||232.5m[* 아퀼라보다 1m가 조금 안 되게 더 길다.] || || 비행갑판 ||불명[* 스파르비에로는 개조작업이 느리게 진행되어 비행갑판이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갑판 길이는 알 길이 없다.] || || 전폭 ||29.4m[* 자료에 따라서는 약 30m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 || || 흘수선 ||7.4m[* 자료에 따라서는 약 7.3m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 || 보일러 ||불명 || || 출력 ||28,000마력[* 140,000 마력이었던 아퀼라보다 훨씬 출력이 약함을 알 수 있다.] || || 최고속도 ||20노트 || || 장갑 ||70 ~ 80mm || ||<|3> 무장 ||135mm 45구경장 대공포 8문 || ||65mm 64구경장 대공포 12문 || ||20mm 65구경장 4연장 대공포 22문[* 자료에 따라서는 2연장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 || 함재기 ||전투기 34기 예정. 뇌격기 탑재시 전투기 16기, 뇌격기 9기 비율로 탑재 가능. || 전반적으로 [[아퀼라(항공모함)|아퀼라]]보다 스펙이 딸리는 경향을 보인다. 배수량과 크기는 스파르비에로 쪽이 더 우세하지만 그것뿐. 다른 건 몰라도 특히 기관 출력이 아퀼라보다 훨씬 떨어지는 데다가 최고속도 역시 약 10노트 정도 더 느리다.[* 이 때문에 최대한 무게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스파르비에로는 설계단계에서 아일랜드를 제거하였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항공모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함재기 탑재 대수도 아퀼라가 51기를 탑재하기로 예정된 데 반해 스파르비에로는 34기로, 17기 정도 밀린다. 장갑이나 방어무장 등에서는 아퀼라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정리하자면 아퀼라보다는 한 체급 작은 항모로 설계된 것을 알 수 있다. == 상세 == 스파르비에로의 건조 계획은 [[1936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훗날 [[아퀼라(항공모함)|아퀼라]]가 되는 여객선 SS 로마(Roma)[* [[로마(전함)|이 전함]]과는 다른 배이다.]와 자매함 SS 아우구스투스 (SS Augustus)를 개조하여 항공모함으로 사용하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으로 인한 군의 과도한 예산 지출, 그리고 공군사령관이었던 [[이탈로 발보]]의 강력한 반대로[* 이탈로 발보는 매우 유능한 장성이었고 이탈리아 왕립 공군의 기틀을 제대로 잡았으나, 해군, 특히 해군 항공대에게는 매우 강경해서 해군이 정찰기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항공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헤르만 괴링]]이 연상되는 부분.] 얼마 못 가 계획이 폐기되었다. 그렇게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항모 보유는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았으나... 1942년, 제2 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이 계획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시점에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항공모함이 한 척도 없었는데, 이때는 항공모함을 결사 반대하던 발보도 1940년에 이미 사고로 사망한 후였고[* 정찰비행 중 오인사격으로 인해 아군 순양함의 대공포에 맞아서 격추되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해군과 사이가 매우 나쁘던 발보를 해군과 무솔리니가 손잡고 암살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온다.] 이탈리아 왕립 해군 역시 [[타란토 공습|여러]] [[마타판곶 해전|전투를 통하여]] 항공모함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특히 마타판에서의 패배가 너무 컸다. 이때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제대로 된 항공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돌입하였고 그 결과는 영국이 뇌격기 4기를 잃는 동안 이탈리아는 중순양함 3척 손실과 전함 1척 손상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돌아왔다.] 항모 보유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이 외에도 [[볼차노급 중순양함]] 볼차노를 항공 순양함으로 개조한다던가, 건조중이던 [[리토리오급 전함]] 임페로를 정규항공모함으로 용도전환하여 사용한다던가 하는 등 여러가지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등장했지만,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실행된 것은 [[아퀼라(항공모함)|아퀼라]]와 스파르비에로 뿐이었다. ||
[[파일:RN_sparviero_re-formation-ever_1.jpg|width=100%]] || || 1942년 후반(?) 개조 중인 항공모함 스파르비에로.[* 사진상으로는 1942년 후반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동일 사진에는 1943년에 찍혔다고 나와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불명.] || 1942년 9월, [[제노바]]에서 아우구스투스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팔코([[송골매]]) 라는 이름으로 건조되다가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개조는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어 정확히 1년 후였던 1943년 9월 경에는 상부구조물이 모두 제거되고 비행갑판을 깔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 때 이탈리아 왕국이 항복해 버렸다. == 독일 해군의 노획 항공모함 == 1943년 9월 [[이탈리아 왕국]]이 전적으로 연합군에 항복하자 국가의 뜻에 따라 연합군에 항복하자는 세력과 계속해서 독일에 충성하자는 세력의 대립으로 인해 큰 언쟁이 오고갔으며 군을 앞세운 독일의 전면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이탈리아 왕국군 전체에 상당한 혼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왕립 해군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었으니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탈리아 왕립 해군]] 문서의 "항복 이후"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그리하여 1943년 9월, 스파르비에로는 자매함 [[아퀼라(항공모함)|아퀼라]]와 함께 [[추축국]]인 나치 독일 해군 [[독일 해군(나치 독일)|크릭스마리네]]에게 노획되었으며 새로운 주인으로의 개조작업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물자의 부족이나 건조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등 각종 이유로 인하여 개조 작업은 매우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크게 기울어 기존 항공모함은 커녕 새로운 군함인 항공모함을 건조시켜 운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나마 남은 자재마저도 개조 진척도가 좀 더 높았던 아퀼라에게 몰아주자는 주장으로 인해 스파르비에로는 건조 계획이 중단된다. 결국 1944년 10월 5일, 스파르비에로는 미완성 상태로 [[제노바]] 항구 봉쇄를 위해 항구 입구에서 독일군에 의해 자침되었다. 잔해는 전쟁이 끝난 이후 그대로 방치되다가 1946년에 인양된 직후 해체되었다. 남은 잔해들은 1951년 모두 최종적으로 수거되어 해체되었다. == 여담 == 같은 왕립 해군의 항공모함 [[아퀼라(항공모함)|아퀼라]]와는 여객선 시절 자매함이었고 실제로 비슷한 시기 같이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완공되었을 때를 가정한 생김새는 상당히 다르다. 외형적으로 아퀼라가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그라프 체펠린]]을 닮았다면, 스파르비에로는 [[랭글리]]나 [[치토세]]를 닮았다. 이탈리아 항공모함 보유의 꿈은 이탈리아 왕립 해군 해체 한참 뒤이자 [[이탈리아 해군]]이 제 위치를 찾게 된 [[1981년]]의 [[주세페 가리발디급 항공모함]]에 와서야 이루어진다. [[분류:항공모함]] [[분류: 해상 병기/세계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