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이집트의 유적]][[분류:이집트의 세계유산]][[분류:고대 이집트]][[분류:이집트의 발명품]] [include(틀:서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환상종)] ||<-2><:> '''{{{#fff 이집트의 스핑크스 관련 틀}}}''' || ||<-2><:><#fff,#2d2f34><^|1>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include(틀:이집트의 세계유산)] ---- [include(틀:고대 이집트 관련 문서)] }}}}}}}}} || ||<-3><#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fff>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이름 || 한국어 ||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br]―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 || || 영어 || Memphis and its Necropolis[br]– the Pyramid Fields from Giza to Dahshur || || 아랍어 || ممفيس ومقبرتها منطقة الأهرام من الجيزة إلى دهشور || || 프랑스어 || Memphis et sa nécropole[br]– les zones des pyramides de Guizeh à Dahchour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2.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79년]] || |||| 등재기준 ||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vi)[*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 |||| 지정번호 || [[https://whc.unesco.org/en/list/86|86]] ||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피라미드 기자 이집트.jpg|width=390]] [[파일:U1S5HTX.jpg|width=390]] 스핑크스 하면 떠올릴 이집트의 스핑크스 조각은 <[[기자의 대스핑크스]]>로 불리는 것으로, [[카프레]] 왕의 [[카프레의 피라미드|피라미드]]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카프레의 얼굴로 추정되는 사람 머리와[* 그러나 최근의 이집트학 연구는 카프레의 얼굴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엎드린 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대스핑크스는 몸의 길이가 73m에 높이 22m, 얼굴 폭이 4m, 귀의 길이 1.4m, 입의 길이 2.3m, 코의 길이 1.7m이다. 머리 부분이 실물보다 10배, 동체는 22배가 크다. == 어형 == [[고전 이집트어]]로는 당연히 그리스식 표현인 스핑크스라고 칭하지 않았고 살아있는 (왕을) 닮은 형상이라는 뜻의 '''샤자프 [[앙크|아나흐]](szp anh)[* '셰세프 앙크'라는 이름은 당시 통용되던 실제 발음이 아니라 모음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던 고전 이집트어 특성상 이집트학계에서 편의상 주로 모음 e를 붙이는 식으로 임의로 만든 발음이다. 실제 당시 통용되던 발음은 후계 언어인 [[콥트어]]나 비슷한 시기 통용되던 주변 다른 언어와의 대조를 통해 추측하여 재구해야하며 흔히 실제 이집트어 발음이라 알려진 [[아누비스|인푸]], [[람세스 2세|라메수]] 등도 진짜 당시 발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임의로 붙여진 이름들이다.]'''라고 불렀다. '스핑크스'라고 부르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절 이집트와 거래하던 그리스 상인들이 그리스 전설의 [[스핑크스]]의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그리스 상인들 사이의 은어였으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마케도니아]]계가 이집트의 왕이 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스핑크스'라는 명칭이 통용되었다. 이후 그리스 문화를 향유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 제국]]이 약 천 년을 지배하면서 '스핑크스'라고 정착했고, [[이슬람]]이 지배한 지 천수백 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스핑크스라 불린다. == 형태 == 돌을 쌓아 만든 [[피라미드]]와 달리 스핑크스는 상체와 머리는 [[석회암]] 언덕을 깎아서 만들었으되 팔과 몸통 일부분은 돌을 쌓아 만들었다. 몸통은 평지를 파내서 제작했는데, 세월이 지나면 [[사막]]에 부는 모래바람 때문에 점점 모래가 차올라 몸통이 잠기므로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한다. 원래 표면은 붉은 황토색으로 채색했다고 한다. 머리는 마치 파라오처럼 관을 쓴 형상이었다. 얼굴 부분에서 코가 부서져서 사라졌다. 코 외에도 이마에는 파라오 왕권의 상징인 [[코브라]]가 있었고 턱에는 턱수염도 달렸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턱수염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누가 망가뜨렸는지를 두고 여러 가지 전설이 나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원정 왔을 때 병사들이 스핑크스의 얼굴에 대포를 쏘아서 망가졌다는 설[* 하지만 오히려 당시 사료에 따르면 나폴레옹이 왔을 땐 이미 코도 수염도 부러진 후였다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세 무렵 코가 없으면 부활할 수 없다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을 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망가뜨렸다는 설[* 이 설은 실제 사료가 존재하는데, 한 [[무슬림]]이 스핑크스를 훼손하려다 잡히자 [[술탄]]이 '''그를 목 매달아 스핑크스 앞에 걸어두었다.'''] 등이 있다. 이집트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믿게 된 이후에도 스핑크스는 딱히 지배층에게 테러를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상 파괴주의]]가 성행했을 무렵은 이미 동로마 황제 [[이라클리오스]]가 [[시리아]]와 [[이집트]]를 이슬람에게 빼앗긴 지 한참이 지난 뒤였고, '우상'이란 것에 훨씬 민감하게 여기는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지배한 이후에도 스핑크스는 무사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그냥 스핑크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를 지배하던 이슬람 군주들은 스핑크스나 피라미드와 같은 이집트의 거대 조형물을 '옛 이집트 임금의 좀 커다란 무덤' 정도로 생각해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일부 개방적인 군주들은 선조들이 세운 것이니 뭔가 배울 게 있는 유적이라고 여겼고, 따라서 대부분 군주들은 (현대의 문화재 보호와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대로 지켜주려고 하였다. 실제로 중, 근세의 극단주의자들이 이집트의 유적을 훼손하려다 발각되어 처벌을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창작물에서도 코가 부서진 이유에 대해 나름의 개그 같은 설명을 달아놓았다. [[알라딘(애니메이션)|알라딘]]에서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나는 [[알라딘(디즈니 캐릭터)|알라딘]]과 [[자스민(디즈니 캐릭터)|자스민]]을 본 석공이 놀라서 실수로 깨먹었으며, [[딱따구리(애니메이션)|딱따구리]]에서는 우디가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부츠발]]로 걷어 차여 날아가다가 부딪힌 곳이 스핑크스의 코였다거나, [[아스테릭스]]에서는 오벨릭스가 멋 모르고 스핑크스를 올라가다가 코를 부셔버리자 스핑크스 밑에 숨긴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코가 없어진 걸 뒤늦게 본 주변의 석공들은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한 스핑크스 피규어의 코를 망치로 부숴버린다. == 형태의 유래 == 당연히 본래는 '''그리스의 괴물 스핑크스와 상관 없는''' 거상으로 옛 이집트의 신을 묘사했다고 추정한다. 스핑크스를 언급한 현존하는 첫 기록은 투트모세 4세가 남겼는데, 여기서 그는 이 거대 석상이 [[호루스]]를 묘사한 것이라고 여겼다. [[미국인]] 역사 저술가 수전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는 2007년 출판한 저서 ≪고대세계사(The History of the Ancient World)≫에서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그리스의 스핑크스가 사실은 상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고대 이집트 시기에 거석상을 '산(生) 형상'이란 뜻으로 Shesepankh(셰세팡크)라고 불렀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이집트의 'Shesepankh'는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 알려지면서 발음이 변해서 '스핑크스'라는 외래어로 그리스어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발음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석상 스핑크스와 그리스의 괴물 스핑크스, 둘 다 사자 몸에 사람 얼굴을 한 거대한 존재라는 점도 바우어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는 부분.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고대 이집트의 석상 스핑크스가 고대 그리스 신화의 괴물 스핑크스의 원조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그러하듯 스핑크스에도 의문점이 많다. 하나는 '스핑크스상의 얼굴이 몸에 비해 너무 작다'는 점으로, 원래 사자상이나 [[아누비스]], [[호루스]] 등 다른 무엇의 상이었는데 후대에 파라오의 얼굴로 깎았다는 추측이 있다. 원래는 전통적으로 '파라오의 머리를 한 사자'라는 표현 때문에 당연히 사자의 머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론이 등장했는데, 이후 몸의 비율이나 뒷다리 모양 등을 볼 때 고양이과보다는 개과일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아누비스였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등장했다. == 건설자 관련 설 == 다른 하나는 스핑크스 건설 시기에 대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대형 공사가 가능했던 [[이집트 고왕국]]으로 추측해왔고,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서있었기 때문에 카프레 왕이 세웠고 카프레 왕의 얼굴을 본뜬 것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처럼 내려왔었다. 그러나 정작 스핑크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투트모세 4세]][* [[람세스 2세]]보다 더 이전의 사람으로 기원전 1400년에 즉위했다.]가 스핑크스 앞 다리 사이에 세운 꿈의 비문으로 비문에 의하면, 기자의 스핑크스상이 모래에 파묻혀서 마치 [[모아이]]처럼 머리만 드러난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머물던 투트모세 4세의 꿈에 나타나 모래에 파묻힌 자기 몸을 다시 드러내준다면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고, 투트모스가 다시 이를 파내자 약속한 대로 투트모세 4세는 파라오가 되었다. 이 때문에 스핑크스는 투트모세 시절보다 훨씬 이전에 지어졌다고 보는데, 일반적으로는 스핑크스가 투트모세 4세 시대보다 2천 년 앞선 기원전 3000년에 세웠다고 추정한다. 이는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500년 앞선 것이다. 하지만 지질학자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건설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스핑크스의 몸통과 둘러싼 벽을 보면 침식 흔적이 크게 남아있는데 조사결과 이는 물에 의한 침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핑크스가 위치한 사막은 기원전 3000년부터 현재까지 침식을 일으킬만큼의 비나 눈이 내린 적이 없다. 이를 근거로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기원전 7000년이나 그 이전에 스핑크스가 건설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기원전 7000년에 문명이 존재했다는 근거나 기록이 전혀 없기때문에 신빙성 있는 주장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한편으로 스핑크스를 카프레 왕이 세웠다는 그간의 정설과도 배치되는 근거들도 제시되었다. 근거는 바로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와 신전을 잇는 축이 스핑크스를 비껴간다는 데서 드러난다. 만약 카프레 왕이 스핑크스를 세웠다면, 당연히 피라미드와 신전 사이에 스핑크스를 배치하고 그 연결축도 일직선이 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와 신전을 잇는 축이 스핑크스를 비껴가기 때문에 이미 스핑크스는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를 짓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몇몇 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얼굴이 카프레보다는 오히려 [[쿠푸]]를 더 닮았다고 보고, 그래서 쿠푸의 얼굴을 본떠서 스핑크스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쿠푸의 아들인 [[카프레]]가 자신의 피라미드와 신전을 잇는 둑길을 만들면서 스핑크스를 우회하게 하였음은 아버지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다만 쿠푸가 직접 스핑크스를 건설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쿠푸는 [[기자의 대피라미드|대피라미드]] 건설에 매진했으므로 만만찮은 인력과 자원을 소모하는 스핑크스까지 건설하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핑크스는 쿠푸가 아니라 쿠푸의 아들인 [[제데프레]]가 건설했다고 보는 결론을 내리는 학자들이 있다. 제데프레가 아버지 쿠푸의 부활을 염원하면서 스핑크스를 지었고, 이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쿠푸의 아들이자 제데프레의 동생인 카프레도 자신의 피라미드와 신전을 연결하는 둑길을 스핑크스를 우회하는 식으로 지었다는 것. 제데프레의 피라미드가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아부 라와슈에서 발견된 조각들을 근거로 든다. 아부 라와즈에서 [[프랑스]] 고고학자 샤시나는 다수의 조각상을 발견했는데, 그 중에는 스핑크스의 얼굴에 사자 몸통을 한 조각상도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제데프레가 스핑크스를 건축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기존 정설처럼 카프레가 대스핑크스를 세웠다는 주장도 아직은 힘을 잃지 않았다. 이 주장에 따르면 대스핑크스를 만들 때 깎아낸 암석들을 잘라낸 벽돌들이 그대로 카프레의 장제전에 사용되었고, 심지어 일부 조사에서는 카프레의 장제전들 중 일부가 대스핑크스보다 더 일찍 지어졌다는 결과도 나왔으며, 이는 대스핑크스와 장제전이 동시대에 만들어지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므로 카프레가 대스핑크스의 주인이라는 기존 정설이 역시 옳다는 주장이다. == 사진 == [[파일:스핑크스 이집트.jpg]] 흔히 스핑크스 하면 연상되는 [[카프레#s-3|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의 [[카프레#s-3.2|대스핑크스]] [[파일:GDvgn.jpg]] 1864년 [[프랑스]]로 파견된 [[일본]] 외교 사절단들이 이집트에 들른 김에 관광하면서 찍은 사진. 역시 모래에 잠겨 머리만 나왔다. [[https://www.reddit.com/r/pics/comments/ygwcq/1864_samurai_photographed_in_front_of_egypts/|사진 출처]]. [[파일:룩소르 이집트 2.jpg|width=800]] [[룩소르]]의 스핑크스 거리 [[파일:카르낙 이집트 2.jpg|width=800]] [[카르나크 신전]] 서문 앞의 염소 머리 스핑크스 위에 서술된 기자의 대스핑크스 말고도 비슷한 스핑크스 조각은 상당히 많다. [[루브르|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436838&cid=46713&categoryId=46751|대형 스핑크스]]도 그 중의 하나이다. 로제타 석을 해독한 것으로 유명한 [[샹폴리옹]]이 직접 프랑스로 가져온 물건이다. [[파일:이집트 나폴레옹.jpg|width=800]] [[나폴레옹]]과 스핑크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스핑크스, version=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