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적강하)] 島津貴子, [[1939년]] [[3월 2일]]~ ([age(1939-03-02)]세) [목차] == 개요 ==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고준 황후]](나가코)의 2남 5녀 중 [[막내]]. [[아키히토]] 덴노의 [[여동생]]. 결혼 전의 이름은 스가노미야 타카코(淸宮貴子) 내친왕.[* [[천황]]의 딸, 손녀까지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한다. 단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 5대손부터를 여왕이라 했다. 남자는 친왕/왕.] 오시루시(お印)[*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는 [[귤]]이었다. '스타'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데, [[칭호#s-3]][* 천황과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개인 이름.]인 '스가노미야'와 이름인 '타카코'에서 첫 글자를 따와서 지은 것이라고.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딸들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타카코의 [[언니]]들은 [[데루노미야 시게코|일찍]] [[히사노미야 사치코|죽거나]], [[다카쓰카사 가즈코|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과부가 되거나]], [[이케다 아츠코|건강이 나쁘거나, 자녀를 낳지 못하는]] 등등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 어린 시절 == [[일본 황실]]의 전통에 따라, 부모와 떨어져 언니들과 함께 구레타케(吳竹) 기숙사에서 신하들의 손에 양육되었다. 어머니 [[고준 황후]]가 이미 두 아들 [[아키히토]]와 [[마사히토]]를 낳은 후라 마음이 비교적 편안할 때[* [[고준 황후]]는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아 비난을 당하다가, 다섯째([[아키히토]])와 여섯째([[마사히토]])로 아들을 낳았다.]였고, 바로 위의 언니인 [[이케다 아츠코|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보다도 8살이나 어려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는지, 매우 발랄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라났다고 한다. 기록된 사진들을 봐도 매우 밝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느 [[일본]] 황족들과 마찬가지로 [[가쿠슈인]]에서 공부했다. 가쿠슈인 [[여고|여자고등과]]를 졸업한 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진학했으나, [[결혼]]으로 인해 중퇴하였다. [[파일:89461B09-D6C4-4815-8C98-A337D561D22C.jpg]] 1940년 [[히나마츠리]], 어머니 [[고준 황후]]의 품에 안겨 있는 타카코 공주. 오른쪽은 맏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 왼쪽은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이다. [[공주]]들의 [[히나마츠리]]답게 뒤쪽에 마련된 히나인형 제단의 규모와 크기가 상당하다.[* 본디 [[히나마츠리]]에서 사용되는 인형인 히나인형은 크기와 정교함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인형 제단을 보면 집안 형편을 알수있다는 말이 있을정도.] [[파일:attachment/시마즈 타카코/suga1.jpg]] [[가쿠슈인]] 초등과 1학년 시절,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 넷째 언니 [[이케다 아츠코|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와 함께. [[파일:0CC03A96-2CA8-4B0A-88C5-68F0A84A07D0.jpg]] [[파일:8C976280-A1A6-4BF9-A5EF-0BB32B7C2AA0.jpg]] 당시 [[황태자]]였던 큰오빠 [[아키히토]] 덴노와 함께. === 황실 가계도 === [include(틀:일본 황실 가계도)] == 결혼 == [[1960년]] 초, [[일본 황실]]에는 겹경사가 일어났다. [[2월 23일]]에 장손 [[나루히토]]가 태어나더니, 그 여운이 채 가기도 전인 [[3월 10일]]에는 타카코 공주가 시집을 가게 된 것이었다. 신랑은 5살 연상의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로, 타카코 공주는 결혼 후 황적에서 이탈하고 평민 신분이 되었다. 히사나가는 당시 일본수출입은행 직원이었으며, 타카코 공주의 큰오빠 [[아키히토]] 황태자의 [[가쿠슈인]] 동창이자 어머니 [[고준 황후]]의 외사촌 동생이다.[* 큰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처럼, 친족인 5촌 당숙과 결혼하였다.] 가쿠슈인 출신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재계의 거물급 집안의 재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일:attachment/시마즈 타카코/suga2.jpg]] [[약혼]] 발표 기자회견 당시 타카코 공주가 보여주었던 밝은 모습은, 새로운 시대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제가 고른 신랑을 좀 보세요!!(私の選んだ人を見て下さって)'''"라는 타카코 공주의 발언도 화제가 되었다. 물론 타카코 공주와 히사나가가 이 말 그대로 연애결혼한 것은 아니었고, [[일본 황실]]과 [[궁내청]]에서 정한 혼사였다. 하지만 점점 중매결혼에서 연애결혼으로 풍속이 바뀌어 가고 있던 당시 [[일본]]의 풍속을 반영한 발언. 이 발언은 당시 [[유행어]]가 되었으며, 또한 이 발언을 계기로 연애결혼이 늘었다고도 한다. [[결혼]] 직후,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마련된 신혼집 근처에는 한동안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1963년 [[10월 26일]]에는 시마즈 타카코를 유괴하여 몸값 5천만 엔을 요구하려던 남자가 체포되는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범인은 같은 해 [[11월 21일]] 체포되었다.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 또한 강도를 당한 적이 있었다. 카즈코와 타카코의 사고로 인해, 이후로는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들도 경찰의 경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명랑하고 활동적인 성격 ==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취득하여, [[1969년]]에는 [[프린스 호텔]] 내의 쇼핑몰인 피사(ピサ)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황족 출신으로서 민간 기업에 취업한 최초의 사례라 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후로 타카코는 프린스 호텔 명예임원까지도 맡았다. [[1970 오사카 엑스포]]에서는 개회식과 폐회식의 사회를 맡았다. 2005년 조카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평민 구로다 요시키(黑田慶樹)에게 시집갈 때도[* 천황의 딸이 시집가는 것은 무려 45년 만이었다.] 건재했던 타카코는, 각종 TV 특집 방송이며 매체에 게스트 등으로 활발하게 출연하며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타카코의 이러한 화려하며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은, 특히 바로 위의 언니 [[이케다 아츠코]]와 대비되는 면모이다. 아츠코는 타카코와 대조적으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고, 수수하며,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등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 자녀 == [[1962년]] [[4월 5일]],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禎久, [age(1962-04-05)]세)라는 아들을 낳았다. 요시히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한 [[사진작가]]이며, 1994년 [[캐나다]] [[퀘벡]]에서 캐나다 여성과 결혼했다.[[http://web.archive.org/web/20180510072539/http://nakatani-photohaiku.com/ryushi/z27.html|#]]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 [[아키히토]] 덴노의 작은며느리인 [[키코 비]]의 친정아버지. 즉, 키코 비는 시마즈 타카코에게는 조카며느리라고 볼 수 있다.]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분류:일본의 내친왕]][[분류:일본의 황적이탈 인물]][[분류:1939년 출생]][[분류:치요다구 출신 인물]][[분류: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출신]] [[분류:가쿠슈인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