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항공기 격추]][[분류:2001년 항공사고]][[분류:러시아의 항공사고]][[분류: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분류:Tu-154/사건 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Катастрофа Ту-154 над Чёрным морем''' '''Катастрофа Ту-154 над Чорним морем''' '''Siberia Airlines Flight 1812''' ||<-2> '''{{{#fff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2001년]] [[10월 4일]]|| || '''유형''' ||민항기 격추|| ||<-2>{{{#!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42.183333 37.616667 &zoom=5, 너비=100%, 높이=240px)]}}}|| || '''발생 위치''' ||[[흑해]] 해상|| ||<|2> '''탑승인원''' ||승객: 66명|| ||승무원: 12명|| || '''사망자''' ||'''탑승객 78명 전원 사망'''|| || '''기종''' ||[[Tu-154|Tu-154M]]|| || '''항공사''' ||[[시베리아 항공]]|| || '''기체 등록 번호''' ||RA-85693 || || '''출발지''' ||[[텔아비브]] [[벤 구리온 국제공항]] || || '''도착지''' ||[[노보시비르스크]] 톨마초보 국제공항||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2362345324.png|width=100%]]}}} || || 사고 2개월 전, [[하노버 공항]]에서 촬영된 사진 || [목차] == 사건 개요 == 2001년 10월 4일 [[우크라이나군]]이 [[S-200]] [[미사일]]로 [[러시아]]의 [[Tu-154]] 민간 여객기를 실수로 격추해 탑승 인원 78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 사건 상세 == [[파일:2014072100939_0.jpg]] 시베리아 항공 1812편은 현재까지 군에서 격추한 민항기 중 가장 높은 고도에서 격추된 민항기이다. 2001년 10월 4일, [[S7 항공]]으로 사명을 변경하기 전인[* 사명은 2005년에 변경되었다.] 시베리아 항공 시절 1812편이 훈련 중이던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S-200]] 미사일에 격추, [[흑해]]에 추락해 탑승자 78명이 모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본국인 러시아는 물론이고 출발지이자 러시아인 외에 제일 많은 탑승자가 있었던 이스라엘에서는 테러가 난 게 아니냐며 난리가 났었다. 당시 흑해에서 훈련 중이던 우크라이나군이 훈련용 표적을 향해 S-200 실탄을 발사했는데 S-200 미사일이 빗나가면서 표적을 재탐색하는 과정에서 근처 11,000m 상공에서 순항중이던 시베리아 항공 1812편을 공격해 격추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처음에는 격추가 아닌 여객기가 혼자 추락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비난과 압박에 결국 9일 만에 격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해당 항공편이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출발해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항공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도 다수가 사망했고 이스라엘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맹렬히 비난했다. == 사건 이후 == 사건 직후 우크라이나는 국방부 장관 올렉산드르 쿠즈무크 (Олекса́ндр Кузьму́к) 장군과 방공군 사령관 볼로디미르 챠코우(Volodymyr Tkachov) 상장을 해임했다. 이후 2003년 우크라이나는 유가족들에게 1인당 2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상 협상을 러시아, 이스라엘과 체결했다. 그런데 이후 배상금 협상이 끝나자 마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1812편의 격추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 라며 발뺌했다. 이에 일부 유가족은 보상금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소송을 걸었으나 기각당했다. 러시아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도 이에 항의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무시했다. 이에 분노한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군에게 신형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가령 [[Kh-35]] 대함미사일은 원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시험발사 하며 개발 중이던 체계인데 이 사건 이후 신형무기 개발은 모두 러시아 자국내에서 테스트되었다.] S7 항공은 격추당한 Tu-154에 대한 보상으로 1,330만달러를 요구하는 소송을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국무부에 제기했으나, 2011년 9월 키예프 지방법원은 보상청구를 기각했다. 2012년 5월 키예프 고등법원도 S7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다가 2012년 12월에서야 우크라이나 최고 법원은 S7 측의 항공기 보상금 소송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3년]]에 일어난 [[유로마이단]]으로 인해 재판이 중단되어 [[S7 항공]]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고 이후 [[소치]], [[노보시비르스크]], [[이스라엘]]에서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방공군은 육해공에서 분리된 별도 군종으로, 1992년 소련 방공군에서 우크라이나 방공군으로 창설될 당시 병력이 6만7천명에 달하는 어지간한 나라의 공군, 해군보다 규모가 큰 군대였다. 그러나 2004년 해체되어 공군에 편입되었는데, 이 사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 여담 == 이후 우크라이나의 친 러시아 반군세력이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S-200]]은 시리아군이 이스라엘 [[F-16]]을 조준하고 쐈다가 [[ECM]]에 의해 빗나가자 '''또''' 근처의 러시아군 소속 IL-20을 격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