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2> '''{{{#fff 북위의 추존 황후[br]{{{+1 神元皇后 | 신원황후}}}}}}''' || || '''[[시호|{{{#fff 시호}}}]]''' ||<(> 신원황후(神元皇后) || || '''[[성씨|{{{#fff 성}}}]]''' ||<(> 흘두릉(紇豆陵) → 두(竇) || || '''{{{#fff 출생}}}''' ||<(> 미상 || || '''{{{#fff 사망}}}''' ||<(> 248년 || || '''{{{#fff 능묘}}}''' ||<(> 불명 || || '''{{{#fff 부친}}}''' ||<(> 부친 [[두빈|흘두릉빈]](紇豆陵賓) || || '''{{{#fff 부군}}}''' ||<(> 시조 [[탁발역미|신원황제]] (始祖 神元皇帝)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위의 시조 [[탁발역미]]의 추존 황후. 몰록회부(沒鹿回部)의 대인 [[두빈|흘두릉빈]]의 딸. 본래 흘두릉씨였으나 북위 시기 한화 정책으로 두씨로 고쳐졌다. == 생애 == 황초 원년(220년), 탁발힐분이 죽고 색두부(索頭部)의 대인에 오른 탁발역미는 서부 선비족의 내분으로 인해 세력을 상실하고, 몰록회부의 대인인 [[두빈]]에게 의탁하였다. 두빈은 탁발역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딸 두씨를 그에게 시집보내 사위로 삼았다. 탁발역미는 두빈에게 청하여 남은 색두부를 무리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 장천(長川)에 거주하였고, 수십 년 동안 그곳에서 흩어진 부족원들을 재결합하면서 다시 세력을 회복하였다. 정시 9년(248년), 두빈은 임종 직전에 자신의 두 아들, 두속후(竇速侯), 두회제(竇回題)를 불러 사위인 탁발역미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긴 뒤 사망하였다. 그러나 두속후 등은 탁발역미가 장례식에 참가한 틈을 타 그를 제거할 계획을 꾸몄는데, 도중에 계획이 누설되어 탁발역미의 귀에도 들어갔다. 탁발역미는 어떻게 해도 그들이 순종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먼저 도모해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탁발역미는 우선 궁중에 용사들을 매복시킨 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칼로 아내 두씨를 죽였다. 그리고는 두속후 등에게 사자를 파견해 두씨가 급사했다고 알리자, 두속후 등은 놀라서 궁으로 달려갔다가 매복해있던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이리하여 탁발역미는 몰록회부를 전부 장악하였고, 색두부 소속의 궁기병은 20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천흥 원년(398년) 12월, 도무제 [[탁발규]]가 황제를 칭할 때, 탁발역미가 신원황제로 추존되면서 두씨도 함께 신원황후로 추봉되었다. [[분류:선비족]][[분류:남북조시대/황후]][[분류:248년 사망]][[분류:날붙이에 죽은 인물]][[분류:중국의 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