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장단군 출신 인물]][[분류:1879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심용식}}}'''[br]'''沈用植, 沈容植'''}}}}}} || ||<|2> '''출생''' ||[[1879년]] [[10월]] || ||[[경기도]] [[장단군]] 소남면 수탄리 || ||<|2>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심용식은 1879년 10월 경기도 장단군 소남면 수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음력 11월 [[연기우]] 의병진의 참모로 활동하던 현학인(玄學仁) 의병장의 휘하에 참여하여 경기도·황해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07년 음력 11월 말 현학인 의병장 외 20여명과 함께 경기도 풍덕군 망포(望浦)에 들어가 이장 이모(李某)로부터 군자금 12원을 거두고, 풍덕군 덕물산(德物山)에서도 주민 이모(李某)로부터 군자금 10원을 거두었다. 또 1910년 음력 2월 23일에는 경기도 개성군 팔자동리(八字洞里)·대원동리(大院洞里)에서 이장 이종수(李宗洙)로부터 군자금 10원을 모금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심용식은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1910년 5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심용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