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고려시대 점포음식인 쌍화, other2=대한민국의 영화, rd1=쌍화, rd2=쌍화점(영화))] ||[youtube(cJedPTMdvow)]|| || [[월금]]으로 연주한 쌍화점 || [목차] == 개요 == 雙花店 [[고려가요]] 중 하나. 기본적으로 작자 미상이나 [[고려사]] 충렬왕 25년 5월 기록에 '남장(男粧)에게 가르친 새로운 노래'라면서 삼장(三藏)이라는 글로 2절이 나온 것이 쌍화점과 내용이 같다. 이 때문에 삼장을 지었다는 오잠의 창작물로 보는 설, 당시 [[원나라]] 풍속에 익숙했던 [[충렬왕]]의 취향에 맞춰서 [[연극]] 형태로 만들어진 각본의 일부라는 설, 원래는 고려속요로 민간에 돌았던 것이고 오잠은 채록한 다음에 이를 약간 편곡만 했을 뿐이라는 설로 나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쌍화점 문서는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4180|마지막 설을 취하고 있다]]. 《대악후보》와 《시용향악보》에 악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선율은 어느 정도 복원해서 연주할 수 있으며 복원도 되어 있지만 고려가요 원곡은 시조창에 가까울 정도로 무척 느려서 현대인 취향에는 안 맞는지라 원곡을 재현해 연주한 음원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쌍화점(영화)]] OST에 실린 창작국악 버전만 뜨는 경우가 많다. 음원 사이트에 검색하면 복원본이 가끔 뜨기도 한다. '쌍화점'은 [[고려시대]] 당시 [[쌍화]]를 파는 가게를 가리키는 낱말. 만두의 모양이 쌍화(인동초)로 보여 쌍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쌍화가 무엇인지는 해당 항목 참조. == 전문 == || 원문 || 현대어역 || ||雙,,솽,,花,,화,,店,,뎜,,에 雙,,솽,,花,,화,, 사라 가고신ᄃᆡᆫ[br]回,,휘,,回,,휘,,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br]이 말ᄉᆞᆷ미 이 店,,뎜,, 밧긔 나명 들명[br]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br][br]三,,삼,,藏,,장,,寺,,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br]그 뎔 社,,샤,,主,,쥬,,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br]이 말ᄉᆞ미 이 뎔 밧긔 나명 들명[br]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上,,샹,,座,,좌,,ㅣ 네 마리라 호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br][br]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ᄃᆡᆫ[br]우믓 龍,,룡,,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br]이 말ᄉᆞ미 이 우물 밧ᄭᅴ 나명 들명[br]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드레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br][br]숨 ᄑᆞᆯ 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ᄃᆡᆫ[br]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br]이 말ᄉᆞ미 이 집 밧ᄭᅴ 나명 들명[br]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싀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br]회회인[* 이슬람교를 믿는 색목인을 뜻한다.]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br]이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고들면[br]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br][br]삼장사에 불 켜러 갔더니만[br]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br]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고들면[br]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br][br]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br]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br]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고들면[br]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br][br]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br]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br]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고들면[br]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바가지 네 말이라 하리라[br]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br]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br]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korea-gayo/ssang-hwa-jeom.htm|전문 보기, 해석]]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9817.html|<쌍화>에 대한 다른 해석을 다룬 기사, 아라비아 상인의 세공품]]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는 [[고려]] 여인이 간 곳, 손목을 잡은 남자, 소문을 퍼뜨린 대상 셋만 바뀌면서 변주되는 노래이다. 이 여인은 1절에서 [[만두]]가게 서역인부터 시작해서 [[절(불교)|절]]의 [[스님]], 술집 아저씨, 심지어 우물가에 갔다가 [[환상종]]인 [[용]]에게도 손목을 잡힌다. 이때 용은 [[왕족]]의 은유라는 설이 있다. == 당시 사회 배경 추측 == [[고려]] 역사를 웬만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쌍화점>을 보아도 당시 사회 배경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쌍화점은 국문학 작품성보다도 사회상을 담고 있는 것에 더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쌍화점의 묘사를 당대 사회상의 객관적인 반영이라고 생각하긴 또 힘들다. 풍자 문학은 사회의 단편을 투영할 순 있어도 사료로서의 객관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미래 후손들이 21세기 한국의 막장드라마가 곧 사회상이라고 여긴다고 생각해보자. 아니면 노벨피아 야설들이랄지....~~ * 첫 번째의 '회회 아비'는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족]]'이다. 위구르족은 [[색목인]]에 속하는 계층으로 보인다. 당시 위구르족은 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 2번째의 '삼장사의 주지'는 당시 타락한 [[불교]]를 상징한다. [[고려]]는 국교가 불교였고 그에 따라 엄청난 수의 [[절(불교)|절]]들이 창건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불교가 여러 세월을 거치며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절에서 [[술]]을 빚어 마시며 놀고 [[세금]]도 면제 받으며 [[노비]]까지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고려 초기부터 불교의 권력이 강해져 타락하여 갔지만 쌍화점에 청렴의 상징인 불교도까지 타락했다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타락함을 나타낸다. 참고로 삼장사는 [[개성시|개경]]에 실제로 있었던 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3번째의 '우물가의 용'은 당시 [[고려]]의 왕과 왕족을 뜻한다.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우물인가 할 수도 있으나 작제건 전설에서 우물이 용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묘사된 것을 보면 이상하지 않다. [[분류:고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