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파라오]][[분류:미라]] [include(틀:역대 이집트 파라오)]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A0522D '''고대 이집트 제21왕조 제4대 파라오[br]{{{+1 아메네모페}}}[br]Amenemope'''}}}}}}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mendes-d2e61be0-d6fd-423f-acb5-7731fdddea2-resize-750.jpg|width=100%]]}}} || ||<-3> {{{-2 아메네모페의 황금 마스크.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중이다.}}} || ||<-2> '''이름''' ||아메네모페[br]Amenemope || ||<-2> '''출생''' ||미상 || ||<-2> '''사망''' ||기원전 992년/984년 || ||<-2><|2>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 ||기원전 1001년/993년 ~ 기원전 992년/984년[br]'''(약 9년)''' || ||<-2> '''전임자''' ||[[프수센네스 1세]]|| ||<-2> '''후임자''' ||대 오소르콘 || ||<-2> '''부모''' ||[[아버지]] : [[프수센네스 1세]][br][[어머니]] : 무트네즈메트 || ||<-2> '''무덤'''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집트 제3중간기]] 제21왕조의 제4대 [[파라오]]. 그나마 아버지이자 선대 파라오 [[프수센네스 1세]]가 40년이 넘도록 왕좌를 지키면서 그럭저럭 나라를 이끌었던 것과는 달리 아메네모페는 기껏 10년도 재위하지 못했다. 그나마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서 그의 미라와 함께 황금마스크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존재감이 아예 없었을 파라오들 중 하나. 아메네모페는 아마 프수센네스 1세와 무트네즈메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추정된다. 젊었을 적 이미 후계자로 낙점받아 아버지와 함께 공동으로 이집트를 다스렸고, 아버지 프수센네스 1세가 죽자 제21왕조의 4대 파라오로 즉위했다. 다만 아메네모페의 즉위 후 업적이나 행적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수준이다. 안그래도 당시 고대 이집트가 무너지기 시작한 혼란기였을 뿐더러 나라는 반으로 두쪽나 파라오가 있는 하이집트와 [[룩소르|테베]]를 중심으로 한 상이집트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 그나마 아버지 프수센네스 1세가 테베의 [[아문]] 신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덕에 전이집트의 파라오로 인정은 받았던 걸로 보인다. 아메네모페는 딱히 색다른 업적은 남기지 못한 채 10년 동안 왕좌만 지키다가 세상을 떴다. 아메네모페가 아이를 남겼는지 아닌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왕위는 그와 혈연관계가 없는 대(大) 오소르콘이 물려받았다. == 무덤 == ||[[파일:44006068265_22685c4525_b.jpg|height=300]]||[[파일:inner_coffin_of_amenemopet.jpg|height=300]]||[[파일:Hildesheim,_Roemer-_und_Pelizaeus-Museum,_Sarg_des_Amenemope.jpg|height=300]]|| ||황금 마스크. ||아메네모페의 목제 관. ||옆에서 본 모습. || 아메네모페는 [[타니스]]의 왕실 공동묘지 NRT IV 무덤에 묻혔다. 무덤이라고 해봤자 방이 하나 밖에 없는, [[투탕카멘의 무덤]]보다도 못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무덤이었다. 하지만 아메네모페의 무덤은 [[청개구리|비가 올 때마다 침수가 되는]] 최악의 지형에 지어졌던 터라 결국 보다못한 후대 파라오 시아문이 미라를 꺼내 따로 그의 아버지였던 선대 파라오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는 아메네모페 말고도 후대 셋이 더 들어가있다.]에 재안장했다. 이후 1939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피에르 몽테가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아메네모페의 관과 미라를 발견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당시 유럽의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피에르 몽테는 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유럽으로 돌아갔고 아메네모페의 미라는 전쟁이 끝난 1946년에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피에르 몽테와 그 연구팀이 아메네모페의 무덤을 발견했을 당시, 아메네모페의 미라는 어머니인 무트네즈메트 왕비를 위해 만들어졌던 방에 들어있었다. 그의 미라는 아무 장식도 없는 회색 화강암 관에 들어있었고 주변에는 [[카노푸스]] 단지들과 400여 개에 달하는 [[샤브티]]들이 흩어져 있었다. 학자들은 아마 이 샤브티와 카노푸스 단지는 무트네즈메트 왕비의 것들이라 추측하는 중이다. 화강암 석관 안에는 황금 잎사귀로 장식된 금박 목제 관이 2겹으로 들어있었으며 그 안에 마침내 아메네모페의 미라가... 있어야 했지만 무덤에 잦은 침수 때문에 뼈만 남아 있었다. 아메네모페는 2개의 황금 마스크, 2개의 목걸이, 칠보 칼라, 팔찌, 반지 등 다양한 금제 장신구들과 함께 발견됐다. 하지만 이 장신구들마저 제 것이 아니어서 아버지 프수센네스 1세의 유물들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메네모페가 얼마나 초라한 파라오였는지 짐작 가능하다. 그나마 신왕국의 존재감 없던 파라오 [[투탕카멘]]과 비교해도 지나칠 정도로 초라할 정도다. 그나마 아버지 프수센네스 1세는 통째로 순은을 녹여만든 관에 묻혔지만 아메네모페는 파라오의 격에 한참 떨어지는 금박을 입힌 목재 관에 묻혔다. 게다가 그의 마스크도 나무에다가 금박을 입힌 것에 불과하다.[* 마스크가 잘 보면 대칭이 아닌 게 바로 이때문이다. 수 천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금박 아래 나무가 뒤틀리면서 비대칭이 되어버린 것.] 참고로 몽테의 연구팀원들 중 하나는 '아메네모페의 마스크를 발견했을 당시, 그의 마스크가 고통에 가득차있었는데 나중에 복원하자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라고 적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