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행정구역]] [Include(틀:조선의 행정구역)] ||<-4> '''[[파일:조선 어기.svg|height=15]] [[조선|{{{#000000,#dddddd 조선}}}]]의 [[목(행정구역)|{{{#000000,#dddddd 목}}}]]'''[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1 안주목}}}'''[br]安州牧[br]{{{-1 Anju-mok}}}}}} ||}}} || ||<-4> [[파일:대동여지도 안주목.jpg|width=100%]] || ||<-4> [[파일:1872년 지방지도- 평안도 안주목.jpg|width=100%]] || ||<-2> '''관아 소재지''' ||<-2> 평안도 안주목 안주읍 || ||<-2> '''하위 행정구역''' ||<-2> 13방 17면 || ||<-2> '''인구''' ||<-2> 4만 9,582명[* 1789년 『호구총수(戶口摠數)』의 기록을 기준으로 함.] || ||<-2> '''마지막 안주목사''' ||<-2> 김규승(金奎升)[* [[1894년]] [[12월 7일]]에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한 마지막 안주목사.] || [목차] [clearfix] || [[파일:안주성 남문.jpg|width=100%]] || [[파일:안주 백상루-3.jpg|width=100%]] || || 안주읍성 남문의 모습 || 안주 백상루와 성곽 전경 || || [[파일:안주 외삼문.jpg|width=100%]] || [[파일:안주향교.jpg|width=100%]] || || 안주목 객사 외삼문의 모습 || 안주[[향교]] 대성전의 모습 || == 개요 == >'''[[청천강|살수]]가 출렁출렁 푸른 하늘에 잠겼는데 / 薩水湯湯漾碧虛''' >'''[[살수대첩|수병 백만이 고기가 되었구나]] / 隋兵百萬化爲魚''' >'''지금도 아직 어초부의 이야기로 남아 있으나 / 至今留得漁樵話''' >'''한갓 나그네의 웃음거리도 되지 못하네 / 不滿征夫一笑餘''' >---- >[[세종실록]] 154권, [[세종실록지리지|지리지]] [[평안도]] 안주목 中 [[조선시대]] [[평안남도]] [[안주]] 지역을 다스리던 행정구역. 평안도 지역의 계수관이자 평안도 북부지역의 3대 고을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평안도 병영이 위치하기도 하였던 중심고을이다. == 역사 및 문화 == 안주목은 읍의 북쪽과 서쪽에 [[청천강]]을 끼면서도 서해까지 포함하고 있어, 평안도 서부지역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으로서의 막중한 역할이 있었던 고을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성과 관리를 파견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3중으로 지어진 성곽이 안주읍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요새화된 고을로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였다. 그러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후금]]의 군대에게 격파당하며 함락되었고, [[홍경래의 난]]으로 [[홍경래]]군이 점령하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고조선]]의 영향권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한사군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후에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이곳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대파한 [[살수대첩]]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팽원군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으나, [[평양|서경]]과 고려 국방의 요충지에 해당하였기에, 곧이어 안북부로 승격되었다. 이후로도 안북대도호부로 개칭하고, [[공민왕]] 때에는 안주만호부를 설치하였다가 목으로 승격시켜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곳 안주목은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요긴하게 활용된 지리적 요충지였으며, 고려시대 당시 안주목에 방어군 25개, 진 12개, 현 6개가 위치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러한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는데, 조선시대 당시 안주목에서 관할한 지역은 [[성천군|성천부]]와 [[숙천군|숙천부]] 등 [[도호부]] 2군데와 자산군, [[평안남도 순천군|순천군]], [[개천군]], [[덕천군]]과 같은 군이 4군데, 영유현, [[맹산군|맹산현]], [[은산군|은산현]], [[양덕군|양덕현]]까지 4군데를 포함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1413년에 각 지역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평양부]]와 안주목에서 앞에 한 글자씩 따온 뒤, 고려시대 당시 서북면을 [[평안도]]라는 명칭으로 개편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1670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죄인의 출생지인 안주목을 강등하여 부로 삼고 판관을 파직시켰다. 그렇게 강등되었다가 [[숙종(조선)|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명칭이 회복되었다. 1895년에 [[고종(조선)|고종]]의 지시로 부군제가 실시되면서 [[평양부]] 안주군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고, 1896년에 다시 한번 개편되어 [[평안남도]] 안주군이 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거치며 [[안주시]]로 명칭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