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델리 술탄)] [[파일:알라웃딘 할지.jpg|width=370]] [목차] == 개요 == [[우르두어]]: {{{+1 علاءالدین خِلجی }}} [[힌디어]]: अलाउद्दीन खिलजी [[영어]] Alauddin Khalji 재위 1296년 7월 19일 ~ 1316년 1월 4일 생몰 1266년? ~ 1316년 1월 4일 [[델리 술탄국]]의 13대 술탄. [[할지 왕조]]의 개창자인 [[잘랄 웃 딘 할지]]의 조카로,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힌두스탄]]을 자주 원정하였다. 그렇게 쌓은 명성과 부를 바탕으로 1296년 반란을 일으켜 잘랄 웃딘을 죽이고 술탄에 올랐다. 이를 틈타 [[차가타이 칸국]]이 무려 4차례의 원정을 감행하였으나 모두 격퇴하였고, 1306년 라비 강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후에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아프간까지 진격하는 위엄을 보였다. 동시에 그는 힌두 세력과도 싸워 [[라자스탄]], [[구자라트]], 말와, 데카 고원 주요부를 정복하며 델리 술탄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군사적 재능 뿐만 아니라 알라 웃딘은 내치에도 능하였고, 경제적 중앙집권화를 통해 (50만에 달하는) 비대해진 군대의 유지에 힘썼다. 우선 [[노예 왕조]] 시절 귀족과 호족들이 누리던 조세권과 영지를 박탈하여 국유화하였고, 군대가 직접 토지세를 징수하게 하였다. 시장 경제에 있어서도 식품과 의류 등 주요 물품에 대한 가격 통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안정된 세수를 확보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샤리아]]에 따라 음주, 도박, 마약, 매춘 등을 금하여였다. 말년에 와병하게 된 알라 웃 딘은 내정을 신임하는 장군 말리크 카푸르에 맡겼고, 1316년 향년 50세로 병사하였다. == 생애 == 숙부 잘랄 웃딘이 술탄에 오른 후 아미르-이-투주크 (예조판서)에 임명되었고, 반란을 진압한 후 1291년 카라 총독에 봉해졌다. 1296년에는 빌사 및 데바기리 원정의 수행 후 아와드 총독에 봉해졌다. 다만 원정들로 인해 축적한 재물을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켜 잘랄 웃딘을 시해, [[물탄]]에 있던 그의 아들들을 제압하고 술탄에 올랐다. === 대몽골 전쟁 === 자란 만주르 전투 (1297-98년) 시비스탄 전투 (1298년) 킬리 전투 (1299년) 델리 전투 (1303년) 암로하 전투 (1305년) 라비 강 전투 (1306년) 알라 웃딘은 자파르 칸, 울루그 칸, (노예 출신의) 말리크 카푸르 등의 유능한 지휘관들의 활약과 함께 차가타이 칸국의 침공을 모두 격퇴하였다. 10여년간 이어진 전쟁은 1307년 차가타이 칸국의 군주 두와가 사망하며 일단락되었다. === 영토 확장 === 알라 웃딘은 1299년 라자스탄의 자이살메르를 함락한 것을 시작으로 1301년 란탐보르, 1303년 치토르, 1305년 말와를 점령하였다. 1299년부터 공세에 나선 구자라트 왕국은 1304년 병합되었고, 그외에도 1308년 시와나와 1311년 잘로어를 점령하였다. 파라마라, 바겔라, 라나스탐바푸라 및 잘로어의 차하마나, 라왈계 구힐라, 야즈바팔라 왕조 등을 멸하였다. 말리크 카푸르는 빈드야 남쪽을 원정하여 1308년 데바기리, 1310년 와랑갈, 1311년 다와라사무다라 및 판드야를 원정하였다. 이로써 그는 보물과 코끼리, 군마를 비롯한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이에 야다바의 라마찬드라와 카타키아의 프라타파루드라, 호이살라의 발랄라 3세가 알라 웃딘의 봉신이 되었다. === 치세 후반 === 40대 후반부터 병마에 시달리게 된 알라 웃딘은 말리크 카푸르에게 내정을 맡겼고, 1316년 사망하였다. 사후 말리크 카푸르는 알라 웃딘과 힌두 왕빕 자탸팔리 사이의 어린 아들 쉬하붓딘 오마르를 옹립한 후 실권을 행사하였다. 다만 얼마 안가 말리크 카푸르는 친위대에 의해 살해되었고, 알라 웃딘의 장성한 아들 [[쿠트브 웃 딘 무바라크 샤]]가 어린 동생을 살해한 후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분류:델리 술탄]][[분류:131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