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수 황제)] ||<-2> ''' {{{#fecd21 수 추존 황제}}}[br]{{{#fecd21 {{{+1 世宗 孝成皇帝 | 세종 효성황제}}} }}}''' || || '''[[묘호|{{{#fecd21 묘호}}}]]''' ||<(> '''[[세종]](世宗)''' || || '''[[시호|{{{#fecd21 시호}}}]]''' ||<(> 효성황제(孝成皇帝) || || '''[[성씨|{{{#fecd21 성}}}]]''' ||<(> 양(楊) || || '''[[휘|{{{#fecd21 휘}}}]]''' ||<(> 소(昭) || || '''{{{#fecd21 생몰 기간}}}''' ||<(> 584년 ~ 606년 || || '''{{{#fecd21 부모}}}''' ||<(> 부왕 [[양제(수)|양광]](楊廣), 모후 소씨(蕭氏) || [목차] [clearfix] == 개요 == [[수나라]]의 인물로 [[수양제]]와 양민황후(煬愍皇后) 소씨(蕭氏)[* [[후량(남북조시대)|후량]] [[양명제]]의 딸이었다.]의 [[장남]]이었다. == 생애 == 양소는 584년에 진왕 양광과 진왕비 소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590년에 하남왕이 되었고 600년에 아버지 양광이 백부인 [[양용]]을 내쫓고 [[황태자]]가 되자 [[황태손]]에 책봉되었으며 601년 봄 1월 13일에 진왕이 되면서 내사령에 임명되었다. 604년 아버지 양광이 할아버지인 [[문제(수)|문제]] 양견을 인수궁에서 시해하고 황제가 되자 양소는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606년 태자 양소가 서도 [[시안(도시)|장안]]에서부터 수양제가 있는 동도 [[낙양]]으로 조현하러 왔다가 수개월이 지나서 돌아가게 되자 조금 더 머무를 것을 요청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이때 절을 하며 여러 번 요청했는데, 양소의 몸은 평소에 비대해서 이로 인해 피로로 병을 얻게 되었다가 7월 22일에 사망했다. [[수양제]]가 그를 위해 울면서 곡을 했는데 몇 번 소리를 내고서 중지했다가 얼마 안돼서 여가에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평일과 다를 바 없었다. 양소는 죽으면서 태위공, 홍농 등 10군의 태수로 추증되었고, 장사지내는 것을 성대하게 했다. 훙서한 뒤 원덕태자(元德太子)로 추존되었으며 훗날 막내아들인 [[공제(수)|양유]]가 황제에 즉위하자,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를 효성황제(孝成皇帝)로 추존했다. == 가족관계 == 태자 양소의 첫 아내는 황태자비 최씨였으나 최씨는 [[수양제]] 즉위 중에 추폐되었다. 최씨를 추폐하고 새로 맞이한 아내가 바로 위씨였다. [[후궁]]으로는 '대양제 유씨'와 '소양제 유씨'가 있었다. * [[장남]] 연왕(燕王) [[양담]](楊倓, 603 ~ 618) - 양제 유씨(大)[* '대양제 유씨'라고도 한다.] 소생 * [[차남]] 월왕(越王) [[양동(수)|양동]](楊侗, 604 ~ 619) - 양제 유씨(小)[* '소양제 유씨'라고도 한다.] 소생 * [[삼남]] 대왕(代王) [[공제(수)|양유]](楊侑, 605 ~ 618) - 태자비 위씨 소생 == 대중매체에서 == [[한국 사극]]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에서는 <[[야인시대]]>에서 [[김삼수]] 역을 맡은 배우 [[성우진]]이 연기했다. 첫 등장은 아버지 양광의 황제 즉위식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따르는 모습으로 나오며, 첫 번째 아내인 황태자비 최씨가 추폐된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33화에서는 나오자마자 연회에서 자기랑 이름이 같은 좌복야 양소가 먹기로 되어 있었던 독주를 대신 마시고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수서)] [include(틀:북사)]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양소(수나라), version=52, paragraph=1)] [[분류:수나라의 황태자]] [[분류:수나라의 추존 황제]][[분류:584년 출생]][[분류:606년 사망]]